생각의 편린들

10원 짜리 동전이 지닌 가치, 그보다 못한 갑질

새 날 2015. 7. 1.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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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과자를 사먹고 싶은데 돈이 없어 주머니에 있는 돈을 탈탈 털어 동전들만 주섬주섬 모아 이를 사먹을 때면 가게 주인의 눈치를 보느라 엄청나게 가슴 졸였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 마음씨 좋은 주인을 만나게 되면 특별한 반응 없이 흔쾌히 동전을 받아들었지만, 약간 까칠한(?) 주인을 만나기라도 할 경우 특별히 언급은 않더라도 왠지 씁쓸해 보이는 특유의 표정이 스치는 순간을 난 결코 놓칠 수가 없었다.  동전, 특히 낮은 단위일수록 그 쓰임새가 이렇듯 점차 희미해져가는 와중이다.

 

밀린 임금을 주지 않아 고용노동부에 이를 진정한 아르바이트생에게 10만원에 해당하는, 10원짜리 동전을 무려 1만개의 형태로 지급한 울산의 한 식당 업주가 알려져 네티즌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물론 이번 사건은 양측의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이라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의견만으로는 가치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은 일임은 분명하다.  때문에 10원짜리 동전을 임금으로 받은 이 직원의 하소연만으로는 전후 사정이 어떠한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 노릇이기에 선뜻 업주를 향한 무조건적인 비난은 지극히 조심스럽다.

 

ⓒKBS 방송화면 캡쳐

 

그러나 해당 업주와 아르바이트생은 고용을 매개로 맺어진 관계다.  즉 이는 어느 한쪽이 상대방이 원하는 특정한 활동을 해주고 그에 따른 보수를 지급하는, 사회적 관계이자 교환관계에 해당한다.  물론 이러한 양측의 관계는 항상 원만하게 유지될 수만은 없으며, 갈등을 수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쨌거나 업주는 고용계약서에 의하든 구두계약에 의하든, 계약조건에 따른 아르바이트생의 노동용역에 대해선 마땅히 보수를 지급해야 한다.  

 

임금이 체불되었다는 건 업주가 이러한 고용관계에 대한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될 테고, 고용노동부를 통한 아르바이트생의 진정은 그에 따른 스스로의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한 정황으로 읽힌다.  물론 아르바이트생이 근로를 제공하는 동안 업주에게 비협조적인 자세로 일관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해당 업주가 비록 10원 짜리 동전으로 밀린 임금을 지급하긴 했어도 이를 지급할 수밖에 없었다는 건 결국 계약상 근로 제공에는 하등의 문제가 없었음을 자인하고 있는 셈이다.

 

네티즌들의 비난이 폭주하자 해당 업주는 있는 돈 없는 돈 싹싹 긁어 준 것이고,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뭐가 잘못인지 모르겠다고 하거나 10원 짜리 동전은 돈이 아니냐며 오히려 의아해하는 눈치다.  물론 모두가 옳은 말이다.  굳이 잘잘못을 따지자면 업주가 임금을 제때 주지 않아 진정까지 이어지게 만든 상황을 탓해야 할 테다.  그러나 10원 짜리 동전은 일상생활 속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그 쓰임새가 미약하기 짝이 없다.  지금은 찾아볼 수도 없는 데다 주화세트 기념 용도로만 발행되고 있는 나의 어린 시절 1원 짜리 동전이, 작금의 10원 짜리 동전의 쓰임새와 같았던 현상과 일맥상통한다.

 

결과적으로 10원 짜리 동전의 경우 일상에서 '통화'로서의 가치는 거의 사라진 셈이다.  그렇다면 업주의 행동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대충 짐작이 간다.  고용관계에 놓여있을 당시 아르바이트생의 근무 행태 때문에 둘 사이에 갈등 요소가 생겨 그에 따른 앙금이 여전히 남아있을 수도 있겠고, 그 때문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임금을 제때 주지 않은 채 체불한 상태인 데다, 이로 인한 진정으로 인해 분쟁을 겪으면서 아르바이트생에게 일종의 복수극으로 되갚은 결과물일 개연성이 높다.  10원짜리 동전 10만원의 가치에다, 받은 동전을 사용하려면 은행에 가서 쓸 만한 화폐로 교환해야 하는, 일종의 수고로움까지 덧붙인 셈이다.  복수치고는 참으로 치졸하기 짝이 없다.



해당 업주에겐 얼마 전에도 또 다른 직원에게 비슷한 방식으로 40만원을 지급했던 사례가 있단다.  이쯤되면 단순한 복수심에서 비롯된 치기어린 행위가 아닌, 인간성 자체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부분은 수습기간이라며 최저임금 5580원에도 못미치는 시급 5000원을 급여로 지급했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이 자체만으로도 해당 업주는 현행법을 위반하고 있는 셈이다.  수습기간이라는 명분 하에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의 급여를 지급하며 열정페이라는 그럴 듯한 이름으로 포장한 채 젊은이들을 착취하는, 전형적인 악덕업주의 행태가 아닐까 싶다.

 

사실 10원 짜리 동전에 의한 임금 지급 방식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발생하곤 하는 단골손님이다.  지난 4월 대전에서는 50대 여성이 임금 일부를 10원 짜리 동전으로 받았던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된 바 있으며, 지난해 12월에는 한 PC방 사장이 월급 20만원 전체를 10원 짜리 동전으로 지급했던 사례도 있다.  이들 악덕업주들의 갑질에 의해 가뜩이나 힘든 환경에서 희망마저 잃어가는 젊은이들의 고단함은 배가되고 있는 양상이다.  10원 짜리 동전 자루를 임금으로 내던지는 행위는 을을 향한 갑질에 다름아니다.

 

10원 짜리 동전, 그 쓰임새는 둘째치더라도 엄연히 화폐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탓에 해당 업주가 말하고 있듯 법적으로는 전혀 문제의 소지가 없다.  하지만 입장을 한 번 바꿔 생각해본다면 자신들의 행위가 얼마나 치졸한 짓인가를 금방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만약 손님이 해당 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 식사비를 몽땅 10원 짜리로 지불한다고 생각해 보자.  업주라면 이를 웃으며 반겨할 수 있겠는가? 

 

최악의 경우 평소 직원과의 사이가 좋지 않은 데다 체불 임금 건에 의해 완전히 틀어진 사이가 됐다 하더라도, 한때 자신의 업소에서 한솥밥을 먹어가며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인연이 깃든 사람이거늘, 굳이 이렇듯 치졸한 방식으로 대응해야 했을까 싶다.  이는 한 사람의 자존감을 완전히 짓뭉개는 행위이자 일종의 폭력 행위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가뜩이나 팍팍한 우리 사회에 몹쓸 기운만 잔뜩 불어넣는 꼴이다.  갑과 을의 관계를 떠나 상대방을 향한, 서로간의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가 너무도 아쉽게 다가오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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