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5월 단기방학, 누구를 위함인가

새 날 2015. 5. 1.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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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초중고가 '근로자의 날'인 5월 1일부터 '어버이날' 전후까지, 길게는 10일에서 짧게는 5일 정도의 단기방학에 돌입했다.  우리 아이 학교의 경우도 징검다리를 이루고 있는 휴일과 휴일 사이의 날짜를 학교장 재량 휴업일로 정해 놓은 터라 등교하지 않는단다.  아이들은 마냥 신이 났다. 

 

그렇다면 이제껏 볼 수 없었던 5월 '단기방학'은 어떠한 연유로 생긴 걸까?  그 속내를 살펴보니 이번 단기방학은 교육부만의 단독 정책으로 이뤄진 게 아닌 모양이다.  경제적인 논리가 반영된 탓이다.  5월 1일부터 14일까지는 정부가 정한 봄 관광주간이다.  현재 대대적인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결국 아이들의 단기방학도 이러한 캠페인의 연장선이었던 셈이다. 

 

 

관광 활성화를 노린 정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2015학년도 학사 운영 다양화 내실화 추진 계획'에 따라 관광주간에 단기방학을 끼워 맞춘 것이다.  이에 따라 전국 초중고의 90% 가량이 단기방학 시행을 결정했단다.  여기엔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해 준다는 명분과 함께 국내 관광 활성화를 통해 경제 살리기에 일조한다는, 두 마리 토끼 모두를 잡겠다는 복안이 깔려있다.

 

하지만 현실은 정부의 생각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듯싶다.  당장 근로자의 날만 해도 그렇다.  5월 1일 '근로자의 날'은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는 1인 이상의 근로자를 고용하는 모든 사업장에 적용되는 ‘법정휴일’이다.  일견 평등해 보이는 법이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이의 실제 적용은 직장의 규모 등에 따라 천차만별인 탓이다.  중소기업이나 영세 업체 근로자, 비정규직 등에게 있어 근로자의 날은 여느 근무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로 취업포털 '사람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날 쉬지 못하고 근무해야 한다는 응답이 전체 직장인의 34.2%에 달했다.  이들에겐 아이들의 방학이 오히려 부담으로 다가온다.  쉬지 못하는 처지와 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자괴감이 맞물리며 상대적 박탈감마저 부풀려지기 일쑤다.  



뿐만 아니다.  맞벌이 형태가 대세를 이루는 상황에서 어린 자녀를 둔 가정은 불만이 팽배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휴가를 내서라도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라며 부추기고 있지만, 엄마 아빠가 동시에 휴가를 낸다는 게 현실 속에선 그리 녹록지 않은 일이다.  이러한 처지를 감안하여 학교마다 초등 돌봄교실을 운영한다거나 학교 도서관을 개방하는 등의 대책이 별도로 마련돼 있긴 하나 이 또한 제대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머니투데이의 보도에 따르면 경남지역의 한 초등학교 돌봄교실의 경우 5일간의 단기방학 동안 단 하루만 여는 데다 저녁반은 열리지 않아 저학년생들이 꼼짝없이 집에 혼자 있어야 하는 상황이란다.  전북도교육청은 이러한 여건을 감안해 단기방학을 아예 실시하지 않기로 했단다.  결국 돌봄교실을 통해 맞벌이 가정의 보육 문제를 해소하도록 장려하고 나섰지만, 정작 퇴근시간이 늦은 한부모 가정이나 다문화 그리고 저소득층 가정에게는 아이를 방치하는 방법 외에 뾰족한 수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이 한계로 다가온다.

 

다행히 위의 상황들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혜택 받은 가정이라 해도 이번엔 경제적인 여건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가뜩이나 돈이 많이 들어가는 5월, 어쩌면 대다수의 가정에 있어 가족 여행이란 달콤한 유혹은 언감생심일지도 모른다.  정부가 여행을 가라며 아이들 방학까지 일부러 만들어주고 등떠미는 무척이나 고마운 형국이지만, 대부분의 가정에선 여행비 마련이 만만치 않은 일로 다가오는 게 보다 현실적일 테니 말이다.  

 

 

한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설문조사에서도 정부의 단기방학 정책에 대한 네티즌들의 부정적인 시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반대한다는 응답이 77%로, 찬성 의견 22%를 압도하고 있다.  앞서 든 이유들처럼 정부의 정책과 실제 현실 속 체감 상황과의 괴리가 제법 큰 탓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계절적으로 녹음이 보다 짙어지기 시작하는 멋진 시기인 만큼 이러한 표현은 달달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가장 현실적인 고려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5월은 그만큼 돈이 많이 들어가는 달이기도 하다.  어린이날을 맞아 아이들에게 요즘 가장 핫한 완구라도 하나 안겨주어야 할 테고, 어버이날엔 부모님께 다만 얼마라도 용돈을 드려야 하는 상황에서, 관광주간과 함께 아이들에게 찾아온 뜻하지 않은 방학은, 부모들의 심리적인 부담뿐 아니라 경제적인 부담마저 더욱 가중시키는 모양새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정부가 아무리 좋은 취지의 정책을 만들고 이를 시행한다 해도,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지 못하거나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 내지 소외감만 더욱 부추기게 된다면 되레 하지 않음만 못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다가오는 상황이다. 

 

어떤 정책이든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는 노릇일 테다.  그러나 이렇듯 정부의 정책에 의해 누리게 될 혜택이 보편적이지 못한 데다 문제점마저 극명하게 부각되는 상황이라면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의문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문체부 장관이 봄 관광주간을 맞아 관광 활성화에 솔선수범한다는 의미로 1박2일의 섬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이러한 본보기가 전시행정이 되지 않게 하려면, 지나치게 경제적인 논리만을 앞세우다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친 건 아닌지 꼼꼼하게 되짚어볼 필요성이 엿보이며, 특히 교육 주체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더욱 절실해지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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