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미일방위협력지침 개정이 주는 교훈

새 날 2015. 4. 28.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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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미일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이 발표됐다.  27일(현지시간) 뉴욕 미일 외교 국방장관 연석회의를 통해서다.  이번에 발표된 새 가이드라인은 현재 일본 주변으로 한정돼 있는 미일동맹 행동반경을 전 세계로 확대하는 방안과 대 중국 억지력 강화로 요약된다.  비록 이번 발표가 미일 동맹을 굳건히 다지는 남의 집 잔치로 간주되고 있지만, 우리 입장에서 볼 때 매우 민감한 사안들이 대거 포함돼 있어 결코 강건너 불구경할 처지가 못 된다.  

 

이번 발표에 앞서 지난 16, 17일 양일 간 개최됐던 한미일 세 나라의 사상 첫 3자 외교차관회의에서는, 미일방위협력지침 개정 내용에 우리나라 주권 존중에 대한 입장이 추가될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 바 있다.  우리나라의 동의가 없는 상황에서 자위대가 한반도 주변으로 진출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내용이 제대로 반영됐을까?  

 

미국과 일본은 우리의 우려를 의식한 듯 새 가이드라인에 '제3국의 주권에 대한 완전한 존중'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제3국의 주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새 가이드라인을 행사하겠다는 의미이다.  앞서 개최됐던 3자 외교차관회의를 통해 이미 예견됐던 대로 ‘한국’을 특정하지 않은 채 ‘제3국’이라는 포괄적이면서도 모호한 표현이 사용된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미일 양국은 자위대가 한반도 영역으로 진입할 때 한국의 동의를 명확히 한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3국'이란 표현은 결국 우리나라를 지칭한다는 아전인수격 해석이다.  아울러 정부가 전쟁 등 급박한 상황에서 선포하는 전쟁 수역에는 공해도 포함되기 때문에 우리가 허락하지 않는 한 자위대는 절대로 한반도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다고도 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정부의 논리엔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 걸까.  일단 긍정적인 시각은 어느모로 보나 바람직스러운 자세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국익 앞에서의 무조건적인 긍정 신호가 항상 옳은가의 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우리가 현재 가장 우려하는 바는 일본 자위대가 자신들 멋대로 한반도에 진출하는 최악의 상황 연출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에 대한 예방책으로 새 가이드라인에서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집단자위권 행사를 위한 몇가지 원칙을 내세우고 있긴 하다.  '제3국의 주권에 대한 완전한 존중'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의문점 하나가 생긴다.  일본 자위대가 파병될 정도의 '한반도 유사시'라면 분명 전쟁이나 비상사태 발발 등의 매우 급박한 상황을 의미할 테다.  알다시피 한반도 유사시 우리 군의 작전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인 전시작전통제권은 주한미군사령관에게 있다.  즉 한반도 유사시 우리나라를 통제할 수 있는 권리는 오롯이 미국에게 주어져 있는 상황이다.  안타깝게도 이번 정부는 얼마전 되찾아올 수 있었던 해당 권리를 스스로 걷어찬 바 있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가 애써 우리를 지칭한 표현이라 주장하고 있는 제3국의 주권에 대한 완전한 존중이 과연 전쟁이라는 급박한 상황 하에서, 더구나 미국이 한국 대신 권리 행사를 하는 비정상적인 상황 하에서 제대로 지켜지게 될지 심히 의심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제대로 지켜질 리가 만무하다.



아울러 독자적인 군사대국화의 야욕을 숨기지 않고 있는 일본이, 혹여 미국의 통제와 용인 하에 자위대 파병이 허락된다 하더라도 군사작전의 지리적 제한을 없애가며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군사 행동이 가능하게끔 만든 마당에 일단 그들에게 있어 보통 국가라는 최적의 명분이 실린 이상 거침없는 재무장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인 터라 우리를 비롯한 주변국가들에겐 위협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 중 지리적으로 가장 이웃한 우리에겐 더욱 치명적이다.

 

굳건해진 미일동맹은 그들의 바람처럼 중국 억지력을 더욱 키워갈 것이며, 중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이라는 열강 사이에 끼어 있는 우리의 입지는 그에 비례해 상대적으로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다는 데에 심각성이 있다.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껏해야 올 8월 미일 양국이 지침을 구체화할 법령을 완성하기에 앞서 정부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는 일뿐이다.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비단 국가가 됐든 아니면 개인이 됐든 관계없이, 스스로의 권리를 포기한 주체에게 미래를 열어갈 선택권이 부여되지 않는 이 참담한 현실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싶어 못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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