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다이버전트> 인간 본성을 틀안에 가둘 순 없다

새 날 2014. 10. 26.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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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트리스'로 가기 위해 열차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의 이 포스터 이미지 한 장, 솔직히 너무 마음에 든다.  어느 분파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 '다이버전트'의 기질을 그대로 옮겨놓은 느낌이다.  갑갑한 현실 세상의 시름에 갇혀 살아가는 내게 영화속 주인공들은 손을 맞잡은 채 자유 속으로 함께 뛰어내리자며 갈구하고 있었다.

 

상영 당시 워낙 평들이 좋지 않아 기대를 접은 채 관람한 경우인데, 결과적으로 평과는 영 딴판이었다.  완전 대박이다.  보지 않았더라면 두고두고 후회할 뻔했다.  이토록 재밌는 영화가 왜 평이 그다지 좋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장르상 SF적인 근사한 볼거리를 기대했던 분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영상 탓에 대거 악평을 남겼으리라.  영상보다는 스토리에 포인트를 맞춰야 할 영화일 듯싶다.

 

 

먼 미래, 전쟁 후유증 탓에 퍠허가 된 도시 시카고, 극한의 생존 조건 하에서 인류가 살아가는 방식은 지금과는 확연히 다르다.  인간 사회를 총 다섯 종류의 분파로 나눠 성년이 되는 해에 그중 강제로 하나를 택해야 하고, 이후로는 그 분파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물론 무분파로 살아갈 수도 있으나, 그럴 경우 대게가 도심의 부랑자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분파의 분류 기준은 인간이 지닌 성향에 따라 나뉜다.  예로 다른 이들보다 이타적인 사람이 있을 수 있겠고, 또한 지적인 능력이 탁월한 사람, 혹은 자유분방한 사람 등등 이런 류의 방식에 의해 다섯 개로 분류된다.



하지만, 사람의 성향이 무 자르듯 한쪽으로 완벽하게 기운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다행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5개의 분파 중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비교적 강했지만, 일부 사람들의 경우 어느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자유로운 성향을 지닌 경우가 있다.  주인공 트리스(쉐일린 우들리)가 바로 후자에 속한다.  영화 속에선 이들을 다이버전트라 부른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을 벗어난, 인위적으로 분파에 속하게 만드는 행위가 일부 사람들에겐 의문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실은 이렇듯 분파를 강조하는 이유는 권력집단이 보다 통제하기 용이한 사회로 만들어가기 위함이다.  때문에 권력집단에게 있어 어느 분파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 다이버전트는 영 달갑지 않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트리스가 성년이 되며 스스로 택한 분파 '돈트리스'에서 만난 포(테오 제임스) 역시 트리스처럼 다이버전트의 성향을 지녔다.  트리스는 돈트리스에서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생존경쟁 속으로 내몰리게 되고, 더불어 다이버전트의 기질을 숨겨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 이러한 어려움을 포와 함께 헤쳐나가는데...

 

 

비단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순응형 인간을 좋아하는 건 모든 지배계층이 갖는 공통 속성일 테다.  완벽한 지배를 위해 피지배계층에게 어릴적부터 자신들의 입맛에 맞도록 주도면밀한 맞춤교육을 실시하고, 아울러 언론을 장악하여 올바른 진실에 대해 입과 귀를 틀어막은 채 순응형 사상만을 설파해 나가는 방식이 아마도 가장 보편적인 순응형 인간 만들기의 전형 아닐까 싶다.  아울러 권력 유지를 위한 온갖 조작 행위 역시 흔한 방식 중 하나일 테다.  안타깝게도 과학기술의 발달은 우리 생활에 편리함을 선사해주었지만, 어느덧 이를 넘어 피지배계층의 순응 도구로 전락하기 일쑤다.

 

다행히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금기에 도전하는 다이버전트와 흡사한 부류의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도 존재한다.  사회의 진보는 단순한 순응형 인간보다 바로 이러한 똘기 가득한 돌출형 반골기질의 다이버전트들이 이뤄온 경향이 짙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회적 금기라는 건 어쩌면 권력층의 지배를 보다 공고히 하기 위해 그들이 꾸며놓은 거짓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금기를 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던 이들이 사회 발전을 이뤄온 측면이 강하고, 이들 덕분에 과거의 금기들이 오늘날엔 보편적인 진실로 받아들여지게 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분파는 피보다 진하다"라는 이념을 강제 주입시켜가며 순응형 인간을 양성해왔던 영화 속 사회는 그릇된 통제를 거부하며 금기를 깨려는 다이버전트들에 의해 점차 진실에 접근해가는 모양새를 갖춘다.

 

 

흡사 폭주하는 열차인 양 앞이 아닌 뒤만 보며 역주행하는 대한민국의 권력층에도 마치 이 영화에서처럼 다이버전트들이 잔뜩 뛰어올라 역주행을 막고 정주행으로 되돌릴 필요성마저 엿보인다. 

 

하지만 우린 영화 속 달리는 열차를 향해 사뿐히 올라 타가나, 반대로 열차 아래로 가볍게 뛰어내리는 반골 기질의 다이버전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뻥 뚫리는 대리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감독  닐 버거

 

* 이미지 출처 : 다음(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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