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제보자> 가짜 애국심과 언론이 만들어낸 광기

새 날 2014. 10. 9.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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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기술이 조금은 남달랐던 한 수의학 박사가 있었다.  당시 우리의 기술력으로는 엄두조차 내지 못 했던 생명공학 분야에서 그가 몇 가지 성과를 이뤄내자 학계와 언론은 흥분하며 이내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국내 최초로 동물 복제에 성공하고 더 나아가 줄기세포를 통한 인간의 불치병 치료 단계에까지 기술력이 닿을 것이란 희망 섞인 전망마저 나오자 그에 대한 관심은 더욱 증폭돼 간다.  

 

언론이 본격 그를 띄우기 시작했다.  그가 보유한 기술 정도라면 미래 유망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는 생명공학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독보적인 존재로 우뚝설 수 있을 뿐 아니라 매번 후발주자에 불과했던 첨단 과학기술 분야 최초의 선도 산업이 될 것이란 희망도 함께 키울 수 있었다. 

 

 

박사는 박사 나름대로 언론에서 띄우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만들어내며 점차 국민적 영웅이 되어 갔다.  불치병을 앓고 있는 환자와 그들의 가족, 더 나아가 전 국민에게 있어 박사는 희망 그 자체였다.  정부 입장에선 무언가 국민을 한 곳으로 모으는 구심점이 필요했을 테고, 때문에 애국심 마케팅 용도로 이보다 더 좋은 재료가 없다고 판단했던 까닭인지 예산 등 전폭적인 지원을 아낌없이 쏟아부으며 그에게 사활을 걸었다.  

 

언론 역시 덩달아 그에 대해 대대적으로 부풀리고 나섰으니, 바야흐로 대한민국 전체가 무언가에 홀린 듯 일시에 그에게 빠져드는 모양새다.  결코 멈출 수 없는 폭주 기관차와 흡사하다.



거대한 허상은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된 그의 영향력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다.  정부 요직과 학계의 핵심 인물들 할 것 없이 모두 그의 영향력 아래 놓일 정도다.  저명한 세계적 학술지에 논문이 실리고, 절대로 만들 수 없을 거라던 복제줄기세포마저 만들어냈으니, 그에 대한 블랙홀과도 같은 쏠림현상이 결코 과장된 것만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결국 대한민국 전체가 그를 점차 괴물로 만들어 가고 있던 셈이다.

 

 

이미 만들어진 괴물에 대한 의심은 국가 이익에 반하는 행동이기에 절대 용납되지 않는 반역 행위이다.  진실조차 허황된 얼치기 국익 앞에선 그저 조용히 묻혀버리기 일쑤다.  애국심이란 정체불명의 대상 앞에선 합리적 의심 따위 꺼내들 여지마저 주어지지 않는다.  일종의 광기다.  한 번 만들어진 거대한 허상은 혹여 진실이 아니더라도 상관이 없다.  자신들의 눈에 보이며 믿고 싶은 현상만이 진실일 뿐 광기로 그득한 기관차는 절대로 멈출 줄을 모른다.  박사가 주변의 기대와 호응 때문에 더 이상의 거짓된 행동을 멈출 수 없었듯 말이다.

 

이들로부터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진실조차 감춘 채 언론 플레이를 통해 입막음하거나 각종 조작질로 본질을 흐리고, 또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여 없던 사실마저 만들어내는 교활함 따위는 지금도 횡행해오고 있는 모습 중 하나일 테다. 

 

집단 광기에 빠져드는 과정마저 흡사하다.  이른바 애국 보수를 자처하는 세력이 그 정체불명의 얼치기 애국이라는 미명 하에 테러와 흡사한 행위를 저지르고 다니거나 온오프라인 상에서의 각종 일탈 행위를 빚는 현상 역시 일부 언론과 자신들이 만들어낸 허상에 사로잡힌 채 집단 히스테리를 부리는 광기를 그대로 빼닮았다.  마치 대한민국 전체가 영화속 이장환 박사의 가짜 애국심 마케팅과 언론 플레이에 놀아났듯 말이다.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너무도 분명해 보인다.  가짜 논문과 줄기세포라는 희대의 사기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지만, 이를 통해 정작 우리 사회의 곪아터진 병폐를 들춰내고 이를 치유하고 싶었음에 틀림없다.  지금 한국 사회는 합리적인 의심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을 만큼 민의가 왜곡되고 있는 어려운 환경이다.  무언가 의심스러운 정황을 통해 의혹을 제기할 경우 이른바 이념 논쟁이 아니더라도 소위 애국을 부르짖는 이들에 의해 종북세력으로 낙인 찍힌 채 자칫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될 우려마저 상존한다.  

 

작금의 현실이 더욱 암울한 건 그래도 실제 해당 사건이 불거졌을 당시엔 직업적 사명감에서 비롯되었든 아니면 정의감에서 비롯되었든 간에 사회적 병리 현상에 대해 올바르게 진실을 전달하고 이를 바로 잡으려는 언론이 제법 존재하였으나 보수 세력 집권 수년만에 이젠 그 씨조차 찾아보기 힘들 만큼 척박한 환경이 된 채 진실을 깨닫는 일이 더욱 요원해졌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관람을 마치고 상영관을 나와 집으로 오는 내내 기분이 영 찜찜했던 이유이다.

 

 

감독  임순례

 

* 이미지 출처 : 다음(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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