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미국에서 발표된 통계자료 하나가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우리가 익히 알던 상식과는 조금 다른 내용이라 그런 듯싶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이가 들수록 행복해진단다. 이게 웬 개 풀 뜯어먹는 소리일까 싶어 내용을 차근차근 살펴봤다.
ⓒ서울신문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심리학자 캐시 모길너가 북미 대륙 전역에 사는 18세에서 80세에 이르는 시민 1700명을 조사한 결과 나이가 들수록 젊은 시절보다 더 행복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단다. 젊은이들의 경우 특별한 경험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경우가 많고, 노인들은 그동안 온갖 종류의 경험치 때문에 특별함보단 오히려 평범한 일상으로부터 얻는 행복감이 더 크게 와닿기 때문이란다.
뿐만 아니다.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 의대의 안젤리나 수틴 박사 연구팀 역시 비슷한 분석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노인들의 경우 행복에 대한 기대치가 젊은이들에 비해 낮기 때문이라는데, 이는 앞서의 캐시 모길너가 분석했던 결과와 결국 대동소이한 내용이다.
영국에도 비슷한 조사 결과가 있다. 자발적 공제조합 오드펠로우가 50대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0대보다 70대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난 것이다. 과거에 비해 노인들이 왕성한 사회활동을 통해 더 많이 학습하고 삶을 즐기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쯤되면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가 없다. 얼마전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통계조사를 벌인 적이 있는데, 앞서의 결과와는 정반대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분명 젊을수록 행복지수가 높고, 나이가 많을수록 떨어지는 모양새였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상반된 결과가 나오게 된 걸까? 해답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경향신문
위 이미지는 국제노인인권단체인 '헬프에이지 인터내셔널'이 1일 공개한 '2014 세계노인복지지표' 전체순위이다. 이미지엔 없지만 한국은 노인 소득보장 영역에서 전체 96개국 중 80위를 차지하고 있다. 참고로 노인 소득보장 점수는 각국의 연금소득보장, 노인빈곤율, 노인의 상대적 복지, 1인당 국내총생산 데이터를 바탕으로 매겨진다. 나이가 들수록 행복해진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던 미국과 영국의 전체순위는 각각 8위와 11위다. 전체 50위의 우리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위치이다. 그나마 우리의 전체순위가 50위였던 건 노인 소득보장 외 다른 영역에서 비교적 높게 나왔기 때문이다.
결국 나이가 들어 행복해지기 위해선 적어도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수준에선 벗어나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부와 행복감이 정비례 관계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지만, 적어도 일상생활에서 불편함을 느낄 수 없을 만큼의 경제적 안정성 정도는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이다.
그렇다면 위의 지표 외 우리나라의 현실을 한 번 살펴보자. 통계청이 발표한 '2014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2014년 현재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는 총인구의 12.7%를 차지하고 있으며, 2026년에는 전체 인구의 20%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우리의 노인빈곤율은 OECD 가입국 중 최고인 49%에 이르며, 자살률은 부동의 1위이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비율도 30%나 된다. 온통 암울한 수치뿐이다.
ⓒSBS
이런 와중에 정부가 내년 노인복지예산을 2조4482억원, 그러니까 올해 대비 38%나 늘렸다며 선심쓰듯 떠벌리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살펴보면 허술하기가 짝이 없다. 증액분의 대부분이 기초연금이었으며, 이를 제외한 복지 분야 예산은 대부분 제자리이거나 오히려 줄어든 수준이라 정부의 자랑이 민망해질 수밖에 없다.
고령화사회가 코앞이다. 정부의 노인정책이 더이상 뒷전으로 밀려나선 안 된다는 신호다. 근래 거리 위 폐지 줍는 노인이 갈수록 증가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결코 남의 일 같지 않은 데다, 한계 수준 이하로 내몰린 이들 노인들에게 있어 어쩌면 행복을 논한다는 자체가 사치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나이 들수록 행복해진다? 해가 갈수록 기대치가 줄어드니 분명 이론상 맞는 얘기일 테지만 이 또한 주어진 환경과 여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에 우리나라처럼 복지 인프라가 취약한 곳에선 그저 언감생심일 뿐이다. 위에서도 살펴봤듯 선진국의 경우 60세 이상에서 행복도가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지만, 한국은 열악한 복지 수준으로 인해 60세 이상의 행복도가 가장 낮게 나타나고 있다.
아이들의 행복이 성적순이 아니듯 어른들의 행복 역시 재산순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나 행복을 누리기 위해선 먹고사니즘 해결이 전제조건임엔 틀림없다. 누구든 노인이 되는 길을 막을 순 없다. 노인 개개인의 행복은 그동안의 노력과 스스로의 활동 여부에 따라 그 품질이 달라질 수 있다지만, 적어도 한계적 상황에 내몰리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하는 건 국가의 몫이 돼야 한다. 나이 들수록 행복해질 수 있다는 신화(?)를 이쯤에서 우리도 한 번 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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