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치란 말야

윈도 태블릿의 진가는 바로 이것

새 날 2014. 8. 8.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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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째 사용해 오던 데스크탑께서 장렬히 사망하셨다.  아니 실은 장렬할 것까지도 없다.  아무런 전조 증상 없이 어느날 갑자기 조용하게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무려 펜티엄4다.  욘석이 나날이 발전하는 소프트웨어 환경을 제대로 쫓아가지 못해 버벅일 때마다 램 업그레이드 방식를 통해 가까스로 생명 연장을 시도하며 실컷 부려먹기만 했는데, 갑작스레 심장이 멎은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체였다면 정말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다.

 

전원 버튼을 눌러도 모니터 상에 부팅 초기의 흰 글씨마저도 뿌리지 못한 채 조용히 숨을 고르는 증상을 보아 하니 아무래도 메인보드 내지 그래픽카드가 나간 듯싶다.  물론 온전히 내 엉성한 촉에 의한 판단이니 전혀 아닐 수도 있다는 건 함정이다.

 

ⓒMBN

 

아직 쓸 만했다면 당연히 그랬을 테고, 혹여 그렇지 않았더라도 예전 같았으면 직접 뜯어 어디에 이상이 있는가를 일일이 점검해 보았을 법도 한데, 이젠 그럴 여력도 없거니와 마음도 별로 동하질 않는다.  당장의 업무 처리가 문제였다.  급한 대로 어쩔 수 없이 내 개인용 노트북을 우선 내줬다.

 

그런데 아뿔싸~ 악재는 한꺼번에 겹친다더니 어찌 이럴 수 있나 싶다.  그 노트북마저 이상 증상을 일으키며 더 이상의 동작을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데스크탑과 노트북이 함께한, 일종의 총 파업이었다.  이것들이 한꺼번에 더위를 먹었나?  아무리 자신들의 주인이 마뜩지않더라도 어찌하여 동시에 이럴 수 있는 걸까? 



노트북 역시 데탑과 마찬가지로 전원 버튼을 눌러도 검은 바탕의 액정엔 더 이상의 변화가 없다.  그 흔한 커서 하나 뜨질 않는다.  내 촉이 또 다시 스캔을 시작했다.  메인보드가 사망하신 것 같다.  이 녀석은 코어2듀오라 먼저 사망하신 데탑에 비해 아직은 쓸 만했기에 현역에서 은퇴할 시기는 분명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벌써부터 나자빠졌으니 이 노릇을 어찌해야 할꼬.

 

가장 급한 건 업무 처리였다.  이번엔 사무실용 노트북마저 내줬다.  이제 내게 남겨진 기기들 중 윈도를 OS로 탑재한 녀석은 태블릿이 유일하다.  8인치와 10인치 류를 몇 차례 구입했다가 용도가 불분명하여 모두 처분했었지만, 그 뒤로도 묘하게 끌리는 현상 때문에 베뉴 8 프로 64기가 짜리 하나를 입양해 놓고 아주 가끔 웹서핑 용으로만 사용해 왔던 터다.

 

하지만 윈도 태블릿은 여전히 그 쓰임새가 모호하여 갖고 있기엔 왠지 아깝고, 그렇다고 하여 손에서 떠나 보내면 무언가 허전한, 전형적인 계륵이었다.  그런데 그토록 계륵이라며 구박을 받고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한 채 허구헌날 구석에 처박혀 있던 녀석이 드디어 빛을 볼 수 있게 됐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기?  데탑과 노트북의 총파업 때문에 급한대로 녀석을 데탑 용도로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완전 고물이었지만 이미지에서처럼 블루투스 키보드와 마우스의 연결을 통해 기본적인 작업 환경을 갖췄다.  물론 8인치의 좁은 화면에서 무언가 생산적인 작업을 하려니 여간 갑갑한 게 아니다.  깨알 같은 글씨는 눈탱이를 자꾸만 튀어나오게 한다.  난 오른손으로는 마우스를 부여잡고 왼손으로는 연신 화면 확대 축소 제스처를 취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  모양새가 너무 웃기기도 하거니와 참 힘이 드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도 이제껏 계륵이었던 녀석의 진정한 쓰임새를 찾은 듯하여 내심 흐뭇하다.  그동안 널 구박하며 찬밥 대우했던 내가 미안해지려 한다.  결국 윈도 태블릿의 진가는 바로 이렇듯 윈도 시스템이 당장 필요한데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비로소 발휘되고 있었던 거다.  그래 넌 역시 테스크탑이나 노트북의 부재시 땜빵용으로는 제격이구나.  이제사 너의 제대로 된 역할을 찾은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로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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