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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테리 이야기> 로봇에 생명 불어넣으려는 부단한 노력

새 날 2014. 2. 24.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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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시에서 가장 인기있는 학과를 꼽으라면 의예과가 수위를 차지한다.  물론 이과쪽에서 말이다.  이는 의사라는 직업군이 갖는 프리미엄이 과거나 지금이나 여전히 유효하다는 의미일 테다.  하지만 다음 순위부터는 부침을 거듭한다.  직업의 인기에 따라, 아울러 사회나 기술의 발전 정도에 따라 학문의 인기 또한 수시로 바뀌기 마련이다.

 

우리 때만 해도 수학과는 비인기 학과였다.  졸업 후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고작 교사나 학원 강사 정도 외에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오해 마시라.  교사나 강사란 직업을 폄하하기 위함이 절대 아니다.  

 

얼마전 들은 바에 의하면 의예과 다음으로 인기있는 학과가 바로 수학과란다.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컴퓨팅 능력의 극대화가 수학과의 인기마저 덩달아 높여놓은 것이다.

 

수학이 쓰이지 않는 분야가 없단다.  영화에 없어선 안 될 요소가 된 CG부터 의약품의 임상실험 그리고 주식 및 보험 등의 금융업계까지 두루두루 활용돼오고 있다.  가히 약방의 감초 역할이 아닐 수 없으며, 인기를 누릴 만한 충분한 자격 요건을 갖췄다고 볼 수 있겠다.  오늘 소개할 '테리' 역시 이러한 수학적 기술이 탄생시킨 로봇 중 하나이다.

 

대벌레 ⓒ위키피디아

 

'테리'는 '대벌레'의 움직임과 다리 상호간의 제어방식 등을 연구하여 이를 시물레이션 소프트웨어로 재차 분석 후 하드웨어적인 형태로 구현해낸 로봇이다.  로봇이라고 하니 왠지 로봇공학 등 공학계열 연구자들이 만들어냈음직한데, 테리는 특이하게도 생물학자들이 제작한 로봇이다.  그렇기에 외려 가치가 있다.

 

6개의 다리와 다리마다 3개씩의 관절이 달린, 흡사 '대벌레'의 다리 모양새를 꼭 빼닮은 테리는 바로 '바이오사이버네틱스'라고 하는 다소 생소한 학문을 전공하는 이들에 의해 탄생했다.  학문 이름에서 대충 감이 잡힐 테지만, 요새 유행하고 있는 일종의 융합 학문이다.  즉 생물학과 공학이 결합된 형태라고 본다면 정답일 듯싶다.

 

이 부분에서 우린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공학계열에서 추구하는 로봇과 바이오사이버네틱스 계열에서 추구하는 로봇, 지향점이 다를 것이란 건 분명해 보이지만, 과연 그 차이점이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로봇은 사람의 일을 덜기 위해 제작된다.  가까운 미래, 로봇 때문에 사람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 않은가.  바로 공학계열이 추구하는 로봇이다.  오로지 합리성과 편의라는 개념만이 로봇 안에 탑재되면 그만일 테다.



하지만 '테리'의 탄생 목적은 엄연히 달랐다.  시물레이션과 로봇의 제작을 통해 생명체의 근원에 대해 좀 더 근접해보려는 시도이다.  즉 감정과 스스로의 판단능력을 지닌 생명체가 복잡다단하게 얽혀있는 각종 기관 내지 시스템을 어떻게 제어하며, 환경 변화에 따라 적절하게 반응하는가를 연구한다.  궁극적으로는 중추신경의 핵인 뇌에 대한 도전이라 봐야겠다.  결국 생명체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방편으로 로봇이라는 도구를 활용해온 셈이다.

 

뇌의 기능이 워낙 복잡하기에 단편 기능만을 툭 떼어내 집중연구해봐야 파편화된 결과만을 얻기 십상이다.  이제껏의 연구 성과들이 대부분 그러했다.  개별 연구된 결과물들을 연결지어봐야 뇌의 발등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봇 테리'는 연구원들의 지속적인 연구성과물들이 덧붙여지며 끊임없이 진화해가고 있다.

 

물론 생명체 연구를 위한 도구로써 테리를 활용해 왔지만, 직접 부딪히면서 몇가지 얻은 부수적인 성과도 있다.  공학쪽의 다른 로봇과는 달리 우직할 만큼 생명체를 닮아가기 위해 노력해왔건만, 생명체의 세포와 로봇의 차가운 금속 재질의 이질성이라는, 가장 근원적인 문제에 맞닥뜨리며 어쩌면 그에 맞게 적용하는 융통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다.

 

호기심에서 시작하여 가설을 세우고, 이를 정확한 데이터로 뽑아내기 위해 수많은 검증 과정을 거치며 탄생하는 과학적 이론이나 결과물들, 오늘도 각 실험실에서 이러한 과정을 무한 반복하며 밤을 지새우고 있을 모든 과학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생명체 연구를 위해 차갑고 딱딱한 금속과 플라스틱 재질에 마치 생명을 불어넣듯 여전히 열과 성을 다하고 있을 그대들에게도 역시 박수를 보낸다.

 

아울러 '테리'의 진화 과정은 결국 생명체의 근원에 대한 접근과 로봇만의 재질적 특수성에 걸맞는 환경 반응을 새롭게 탄생시키게 될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 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저자 : 홀크 크루제, 박승재   출판사 : 프로네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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