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청소년 '안녕 대자보'에 과잉대응해선 안될 이유

새 날 2013. 12. 27.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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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이 너무 반가운 교육부

 

바야흐로 방학 시즌이다.  전국의 초중고교 가운데 초등학교가 가장 먼저 겨울방학에 돌입하였으며, 지역마다 시기적으로 조금씩 편차를 보이지만 전국 대부분의 중고교 또한 곧 방학이 시작된다.  이번 겨울방학이 그 어느 때보다 반갑게 느껴지는 이들이 있을 듯싶다.  다름 아닌 바로 교육부다.

 

ⓒ한겨레신문

 

왜일까?  최근 대학가에서 시작되어 사회 곳곳으로 불어닥치고 있는 '안녕 대자보' 광풍, 고등학교 심지어 중학교에까지 그 영향이 파급되자 교육부가 이를 차단하기 위해 적극 발 벗고 나선 상황이다.  지난 18일 '안녕 대자보'와 관련해 생활지도를 철저히 하라는 공문을 각 시도교육청에 하달한 것이 확인된 바 있다.

 

대자보 광풍 때문에 전전긍긍해 하던 교육부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번 겨울방학은 일종의 구원투수와도 같은 셈이다.  걷잡을 수 없이 확산일로에 놓여있던 안녕 대자보 열풍을 자연스레 가라앉히게 하는 데에 있어 방학 만큼의 확실한 도구를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자보 열풍 차단을 위해 정부가 직접 나서 개입한 사실에 대해 가뜩이나 사회적 논란이 일고 있는 상황인지라 이를 잠재우고 싶은 교육 당국에게 있어 이번 방학이 더더욱 반가울 수밖에 없을 테다.  물론 그보다는 현 집권세력이 먼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으리란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청소년들의 '안녕 대자보' 수난

 

앞서 교육부가 각 교육청에 시달한 공문은 사회적 논란의 여파가 학교 안으로 들어와 면학 분위기를 해쳐선 안된다는 취지에서 이뤄진 것이고, 절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며 강조하고 나선 바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일선 학교에선 안녕 대자보를 붙인 학생들에게 징계를 내리거나 부모를 불러 부모 앞에서 각서를 쓰게 하는 등 지나친 학생지도로 물의를 빚고 있었다. 



붙여진 대자보 자체가 수난을 당하는 일은 다반사다.  붙여지기가 무섭게 학교 당국에 의해 훼손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도대체 무엇이 두렵길래 중고등학생의 대자보마저 이렇듯 수난을 당해야만 하는 걸까.  특히 모 학교에선 대자보 부착 행위를 무려 '학생선동'이란 사유로 징계키로 했단다.  학교는 왜 하필 선동이란 섬찟한 단어를 끄집어냈을까?  선동이란 남을 부추겨 어떤 일이나 행동에 나서도록 한다는 의미인데, 대자보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적어나간 행위가 어찌하여 다른 학생들을 부추기거나 또 다른 행동에 나서도록 만드는 일인 걸까.  이 여리디 여린 학생들이 설마 국가 전복을 위한 민중 봉기라도 주도했단 말인가.  어림 없는 일일 테다.

 

대자보를 작성하여 붙인 학생 자체에 대한 징계도 문제이거늘, 그 부모는 무슨 죄가 있다고 학교에 부름을 받고, 또 해당 학생이 부모 앞에서 억지 각서를 작성해야만 했을까?  이런 전근대적 사고 방식을 지닌 교육자들이 여전히 일선 학교와 교육기관 내에서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일이며, 아이들의 미래마저 암울하게 만든다.

 

청소년 안녕 대자보에 과잉 대응해선 안 될 이유

 

학교에서는 백일장과 같은 글짓기 대회를 열어 학생들의 작문을 권장하고 있다.  요새 아이들, 디지털기기에 몸이 익숙해진 탓에 아날로그식 장문의 글짓기 행위 따위 이들에겐 너무 버거운 일이다.  평소 우리 아이들의 책읽기나 글쓰기에 투자되는 절대적 시간이 너무 부족하여 해당 능력이 많이 딸린다고 하소연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커다란 종이에 적어 모든 학생들이 볼 수 있도록 학교 게시판에 붙이는 행동, 얼마나 대견스러운가.  때문에 교육 당국에서는 백일장 같은 행사보다 오히려 이러한 일들을 권장해야 하는 게 옳지 않을까?  살아있는 교육이란 자고로 책에서 학습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이렇듯 생활속에서 직접 느끼며 얻을 수 있는 지혜를 일컬음일 테다.

 

교육부가 언급한 면학분위기는 과도한 측면이 있다.  집회를 개최한 것도 아니고, 수업을 방해하지도 않은, 단순히 자신의 생각을 종이에 적어 표현한 행위가 어떻게 면학 분위기를 해칠 수 있는 걸까?  교과서에 적힌 내용만 반복적으로 읊으며 달달달 암기하기보다는 대자보에 실린 최근의 사회적 이슈들을 학교 안으로 끌어와 이에 대해 자유토론을 벌이며 공론화하는 것이 오히려 진정 살아있는 교육 아닐까.  따라서 역으로 대자보는 면학 분위기 조성에 일조하는 행위이다.

 

결론적으로 교육부의 안녕 대자보에 대한 과잉 대응은 일찍이 창조경제를 만들어냈던 매우 탁월한(?) 발상에서 비롯된 시대착오적 행동에 다름 아니다.  최근 부정선거 논란으로부터 불거진 대한민국 민주주의 위기론과 일방통행식의 국정 운영에 대한 국민들의 성토와 저항이 만만치 않고, 또 이러한 불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자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을 집권세력일 테다.  결국 청소년들의 대자보에마저 인위적인 잣대를 들이댄 것은 그들에게 닥친 위기감의 또 다른 표현 양태로 읽힌다.  한창 꿈을 가꿔나가고 있을 우리 아이들, 이들에 대한 표현의 자유마저 침해하는 멍청한 행위는 제발 그만 두었으면 싶다.  이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 모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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