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빗소리와 빈대떡과의 상관관계

새 날 2012. 9. 1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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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가을일까 늦여름일까... 글쎄... 기후 변화가 극심해진 뒤로는 딱히 계절에 대해 명확한 선 긋기가 쉽지 않군. 그냥 자기가 생각하는 그 계절이 정답인 걸거야. 분명한 건 지금 내리고 있는 이 정체모를 비가 가을을 재촉할 것이란 사실 하나만은 확실하지. 아침부터 시작된 비는 밤 12시가 다 되어가는 지금 이 시각에도 그칠 줄 모르고 있어.

 

우산을 받쳐들고 걷던 길, 제법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유난히 시끌벅적한 곳이 눈에 띄었어. 흠~ 빈대떡집이군. 점포의 전면 유리를 개방해 놓아,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마치 블랙홀처럼 이곳으로 빨아들이고 있더군. 전면 개방이야 뭐 요즘 웬만한 점포들의 트렌드라 사실 특별하다 할 것까지야 없지.

하지만 빈대떡 부치는 장면을 전면에서 고스란히 볼 수 있게 해 놓은 사장의 센스가 함정이었어. 가뜩이나 지글거리는 기름 위의 빈대떡 익어가는 소리는 빗소리와 함께 섞여 내 청각을 온통 교란시키고 있었던거야. 빗소리와 빈대떡 굽는 소리의 묘한 결합은, 바로 나의 잠자고 있던 다른 감각신경마저 깨워내는 효과가 있더군. 코를 통해 전달되어 오는 고소한 향이, 빗소리의 청각과, 망막에 맺힌 익어가는 노릇한 빈대떡, 두런거리며 즐거움에 흥겨워하는 점포 안 사람들까지 한데 어우러져, 맛있는 하모니를 연출하고 있었던 거야, 중추신경으로 모아진 이 감각들은 바로 나의 뇌를 교란시키기 시작했어. 뇌의 명령에 의해 운동신경, 그러니까 발걸음이 나를 점포 안으로 이동시켜 놓았더군. 이런~

 

 

난 어느샌가 빈 자리를 찾아 앉아 있었던 거야. 아직 주문 전인데 아주머니께서 기본 세팅을 깔아주시더군. 아.. 혼미한 정신을 가다듬고 무언가 주문을 하긴 해야 하잖아.

 

 

메뉴판을 펼쳐 들었어. 빈대떡집 치곤 제법 다양한 메뉴가 준비되어 있더군. 지금도 빈대떡의 지글지글 익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는데, 정말이지 빗소리와 너무 흡사한거야. 빗소리 들으며, 우산 받쳐 들고 이곳까지 나의 발걸음이 이끌려 오게 된 건 순전히 빈대떡 때문 아니었겠어? 그래서 수 많은 메뉴들의 유혹을 과감히 물리치고 주문했지. 김치빈대떡과 해물빈대떡으로...

 

 

주방에선 지금쯤 우리가 주문한 빈대떡을 굽고 있겠지? 그사이 목을 조금 축이긴 해야 해.

 

 

오늘의 주종 발표... 짜잔~ 당첨, 국순당표 생막걸리... 빈대떡에 막걸리가 빠진다면 팥 없는 찐빵과 뭐가 다르겠냐고..ㅎ 그런데 이 막걸리란 녀석, 보기보단 알콜도수가 꽤 높은 것 같애. 우린 한 잔만 들이켜도 알딸딸... 그런데 옆 테이블에 앉은 아저씨들은 두 명이서 벌써 6병째를 마시고 있는 거야. 완전 주당들이지? ㅋ

 

 

드디어 비오는 날의 특별 빈대떡 대령이요~ ㅎㅎ 특별은 무슨... 안주 나온 기념으로 다시 한 잔~

 

 

아래 깔린 녀석들은 김치빈대떡이고, 위에 얹힌 놈들이 해물빈대떡이라며, 친절하게 설명해주시는 아주머니... 노릇노릇하니 입안에 군침이 고이는군.

 

 

우선 해물빈대떡부터 입에 넣어 보았어. 제법 두툼하지? 녹두가 원래 조금 텁텁한 느낌이 있는데. 이 빈대떡에선 그런 맛이 없었고, 오히려 담백했어. 기름을 너무 두르면 느끼함이 느껴졌을텐데, 적당히 둘렀는지 느끼함도 못느끼겠고. 안에 들은 해물은 주로 오징어, 글쎄 다른 놈들은 못찾겠네. 설마 오징어 한 종류만 넣고 해물빈대떡이라 이름을 붙인 건 아니겠지?

 

 

김치빈대떡도 입에 넣어 봤어. 해물과는 달리 김치의 매운 향이 먼저 입안에 퍼지더군. 아마도 제법 매운 김치를 사용했는가봐. 덕분에 종류별로 확연하게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어.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왜 그 옛날 어머니께서 부쳐주시던 전과 빈대떡이 자연스레 생각나게 되고, 그때 각인된 청각, 미각, 후각은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비만 오면 조건반사적으로 빈대떡을 떠올리게 하는 효과를 낳게 한 것일지도 모르지. 이 비 그치면 곧 오게 될 가을 그리고 찬 기운, 어쩌면 앞으로 더욱 을씨년스러워질 빗소리는, 빈대떡을 지금보다 강한 흡인력으로 끌리게 할 지도 몰라. 아울러 입 안에서 가득 느껴지는 고소한 빈대떡의 맛은, 어쩌면 그리운 어머니의 맛을 찾는, 또 다른 조건반사의 행위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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