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국정원 대선 정치 개입 수사 특별수사팀을 이끌어왔던 팀장 윤석열 수원지검 여주지청장이 검찰 수뇌부의 지시 거역을 이유로 직무에서 전격 배제되는 안타까운 사태가 발생했다.
윤석열 여주지청장의 직무 배제
검찰은 지난 6월 14일 국정원 사건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이후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이 올린 트위터글 3200만 건을 확보, 이에 대해 작성자의 신원 확인 작업을 거쳐 5만 5689회에 달하는 특정 정당의 지지나 반대 글 게시 혐의를 포착해내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공소사실에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 내용을 추가했다.
이 대목에서 수천만 건에 달하는 데이터들에 대해 일일이 대조작업을 벌여온 수사 관계자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을 듯싶다.
ⓒ미디어오늘
그러나 윤 지청장은 이 같은 민감한 사안이 법무부와 청와대 그리고 국정원에 알려질 경우 외압에 의해 제대로된 수사가 이뤄질 수 없음을 직감하고 고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선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사퇴 파문이 이와 비슷한 사례이며, 윤 지청장이 이를 모를 리 없었다. 청와대와 법무부가 국정원 사건에 대해 동시에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지 말 것을 종용하였으나 채 총장이 소신껏 집행, 자신들의 의견이 묵살되자 벌어진 사건이란 정황은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채 총장과 함께 호흡을 맞춰왔던 윤 지청장이다. 그는 나름의 고심 끝에 17일 수사상 보안과 기밀 유지를 이유로 중앙지검장에게 대검찰청과 법무부에 보고 없이 중앙지검장 결재로만 트윗을 작성한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에 대해 영장을 청구할 것을 건의했다. 그러나 이는 보기 좋게 묵살되고 만다.
결국 윤 지청장은 상부에 보고 없이 국정원 직원 3명에 대한 체포영장과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집행했다. 중앙지검장은 이에 대해 지시 불이행, 보고절차 누락 등 중대한 법령 위반과 검찰 내부 기강을 문란케 한 책임을 물어 윤 지청장에게 수사에 관여치 말 것을 지시한다. 이는 매우 강경한 조처로서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검찰의 기강 문란이냐, 제2의 찍어내기냐
우선 권력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소신있는 행동을 보여준 윤 지청장에게 박수를 보낸다. 누구든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결정을 내리기가 결코 쉽지 않은 일일 테다. 정치권에서도 미묘한 사안으로 받아들이며 커다란 파장이 일고 있다.
당장 야권은 채동욱 검찰총장에 이은 '제2의 찍어내기'라고 비난을 퍼부으며 정치 쟁점화를 시도하고 있다. 반대로 여권은 검찰 조직의 심각한 기강 문란이며, 단지 검사 한 사람의 돌출행동 때문에 벌어진 사태로 몰아가려는 속내를 내비치고 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의 확대에 대해선 당연히 경계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경향신문
그러나 각자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며 이를 이용하려는 정치권의 의도와는 달리 이번 사건이 정작 중요하게 받아들여져야 하는 건 바로 다름 아닌 5만 6천개에 달하는 엄청난 양의 국정원 트윗이다. 단순히 몇 백개의 게시판 댓글과는 그 규모면만을 놓고 보더라도 커다란 차이가 있다. 국정원의 선거 개입에 대한 보다 확실한 정황 증거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청와대는 국정원 직원들 몇 명이 인터넷 게시판에 댓글 몇 개 단 것을 놓고서도 심기가 매우 불편하였을 텐데, 수만 개의 트윗글에 대한 청와대의 반응은 뭐 보지 않고서도 뻔한 일 아니겠는가. 윤 지청장의 고뇌가 충분히 읽혀지는 대목이고, 보고 없이 이뤄진 그의 행동에도 충분히 납득이 갈 수밖에 없는 정황들이다.
광범위한 대선 개입 정황 드러나, 정권의 정통성에 치명타
결국 이번 사건의 핵심 골자는 검찰의 기강 문란도, 청와대의 윤 지청장 찍어내기도 아닌, 국정원의 적나라한 범죄행위가 또 다시 만천하에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벌어진 여타의 불미스런 일들은 사실상 곁가지에 불과해 보인다. 청와대와 법무부, 그리고 국정원이 이를 억지 감추기 위해 무리수를 두느라 벌어진 해프닝이기 때문이다.
최근 불거진 국군사이버사령부의 대선 개입 정황과 이번 사태가 맞물리며, 단순 게시판 댓글로부터 시작된 국정원의 대선 개입 사건은 국정원이란 조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그동안 알려졌던 사실보다 훨씬 광범위하며 전방위적으로 조직화하여 행해졌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아무리 숨기려 하고 애써 모른 척 외면하고 있지만 부정선거의 흔적은 결국 이곳 저곳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당황한 정부와 새누리당은 정권의 정통성과 연루된 이번 사태를 어떡하든 감추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을 것이다. 때문에 국정원의 적나라한 선거 개입 활동에 대해선 최대한 은폐하려 들 것이 틀림 없을 테고, 반면 이번 사건을 검찰 초유의 항명사태로만 국한, 윤 지청장에게 모든 원죄를 뒤집어씌우며 몰아갈 것임이 확실하다.
박근혜정부가 들어선 지 어느덧 8개월이 되어가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위태위태해 보이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닌 듯하다. 부정선거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박근혜정부, 이번 사태로 인해 정권의 정통성에 더욱 치명적인 내상을 입게 될 개연성이 커졌으며, 고삐를 당기고 있는 국정원 셀프 개혁에도 차질이 빚어지게 되리란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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