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신뢰의 중요성 일깨운 한샘 계약직 채용 논란

새 날 2018. 6. 9.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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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전문업체 한샘이 최근 채용 논란에 휩싸였다. 채용 포털 사이트에 정규직 신입 및 경력직 채용 모집 공고를 냈으나 최종 채용 절차인 면접을 불과 1주일 앞두고 1차 합격자들에게 계약직임을 뒤늦게 알린 것이다. 황당하기 짝이 없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기업이 취업준비생들을 기만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취업절벽이라는 혹독한 시련 앞에서 불투명한 미래를 향해 마냥 고군분투하고 있을 취업준비생들에게는 비록 자신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안일지라도 황망한 소식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없다. 결코 남의 일만으로 치부할 수 없는 뜨악한 현실 앞에서 그들이 분노를 느끼고 있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고용 시장에서 사람을 채용하려는 기업은 언제나 갑의 입장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요즘처럼 일자리를 찾으려는 자와 사람을 구하려는 자 사이의 균형이 무너지고 비대칭이 극심해진 경우엔 더더욱 그렇다. 기업의 아주 조그만 움직임마저도 취준생들에게는 상대적으로 크게 와닿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한샘은 정규직으로 직원을 뽑겠노라며 채용 공고를 내보내놓고선 어렵사리 1차 전형을 통과한 취준생들에게 사실은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이라고 통보했다. 정규직과 계약직의 차이는 워낙 많은 우리 사회의 모순들이 한꺼번에 응집된 터라 따로 언급을 하지 않더라도 어떤 느낌일지 모두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늘구멍 같은 일자리 몇 개를 놓고 치열하게 다투고 있는 취준생들의 입장에서는 일방적인 갑의 횡포, 즉 갑질로 다가오는 게 지극히 당연하다.



아울러 현재 고용 시장은 강원랜드 등 공기업과 금융권의 부정채용 관행이 얼마 전 감사 과정을 통해 세간에 알려지면서 취준생들의 허탈감과 열패감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때문에 취준생들로부터 채용 갑질 행위 아니냐는 비난이 들끓고 있는 작금의 현실은 갑질 공화국으로 불리는 대한민국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는 유인으로 작용하기에 차고도 넘친다. 이러한 소식이 언론에 알려지고 논란으로 불거지자 한샘 측은 표기 착오였다며, 최종 합격자를 모두 정규직으로 뽑겠다고 다시 공지했다. 한 발 뒤로 물러선 것이다.


그러나 한샘의 뒤늦은 이러한 조치는 '사후약방문' 정도의 효험조차도 거두지 못 할 공산이 아주 크다. 왜일까? 한 마디로 말하자면 그들은 대중들로부터 신뢰를 잃었다. 브랜드 이미지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기업의 입장에서는 신뢰를 저버린 행위는 치명타다. 한샘이라는 기업은 지난 해 다른 사안으로 한 차례 홍역을 겪은 바 있다. 이른바 '한샘 여직원 성폭행 의혹 사건'으로 알려진 당시 한샘은 피해자에게 허위 진술을 강요하는 등 부적절하게 대처하여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었다. 이 논란과 관련하여 지난 8일 국가인권위원회는 '합의된 성관계'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계약직으로 공고를 내보냈어야 하나 정규직으로 내보낸 채용 건에 대해선 엄연히 자신들의 실수이기에 문제 해결 과정은 조직 내부에서 조용히 다뤄졌어야 했다. 그러니까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오로지 한샘 조직의 일원이 되기를 바랐던 취준생들에게는 어쨌든 공고 내용 그대로의 기회가 제공됐어야 함이 옳다. 직원이나 취준생들 역시 기업의 고객임이 맞다면 그들과의 관계에 있어 신뢰에 관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자체 실수를 취준생들의 피해로 돌리려 시도한 건 명백한 잘못이다. 때문에 한샘의 결정적인 실수는 채용 공고를 잘못 내보낸 데 있는 게 아니라 바로 그 후속 조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샘 여직원 성폭행 의혹 사건으로 한샘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크게 실추시키고 신뢰마저 갉아먹은 상황에서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신뢰를 저버렸으니 한샘 입장에서는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와 맞닥뜨리게 된 셈이다.


신뢰의 실추는 그 여파가 자못 크다. 일시적인 매출 급감 현상 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한샘 정규직의 처우에 대해선 잘 알려진 바 없다. 다만 이번 채용 공고의 후폭풍으로 인해 한샘이라는 기업의 조직 문화에 대한 유추가 어느 정도 가능해지고 있다. 이번 논란을 통해 의도치 않게 한샘 계약직의 급여 수준이 공개된 것이다. 올해 최저임금을 월 급여로 환산한 액수인 1,573,770원보다 고작 6천 원가량 많은 158만 원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해당 기업의 내부 사정을 자세히 알 수 없는 탓에 왜 이런 액수가 책정됐는지는 알 방도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계약직의 처우가 너무 야박하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노동 강도에 비하면 쥐꼬리만큼도 안 되는 수준이니 말이다.



한샘의 외형 성장은 그야말로 눈이 부실 정도다. 최근 불어난 직원 숫자가 이를 간접적으로 증명한다. 2014년부터 최근 4년간 한샘 전체 직원 숫자는 2000여 명에서 3000여 명으로 급격히 불어났다. 하지만 지난 해 여직원 성폭행 의혹 사건으로 인해 한샘이 단기간 내 급성장한 이면에는 경직되고 강제적인 조직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대중들에게 파다하게 퍼졌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대표적인 게 영업 압박 전략이다. 이제 갓 입사한 신입 직원에게조차 달성하기 쉽지 않은 영업량을 강제 할당하고 이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주말 산행이나 아침 회의에 참석시키는 등의 불이익을 가하는 방식으로 실적을 관리해 온 것으로 한샘은 악평이 자자하다. 어쩌면 한샘의 눈부신 성장 이면에는 최저시급 수준의 처우로 영업 압박에 시달리면서 어느덧 스스로를 소진시켜버린 수많은 계약직 직원들의 눈물이 배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샘은 지난 해 직원 성폭행 의혹 사건이 불거진 이후 대대적인 조직 정비와 체질 개선을 시도하고 나섰다. 회장 직속의 기업문화실을 신설하여 운영해 오고 있으며, 6개월 동안 준비한 끝에 매뉴얼을 개정,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새로운 '성차별, 성희롱, 성폭력 예방과 대응 지침'을 완성했다. 하지만 정작 한샘의 문제는 다른 곳에 있는 듯싶다. 내부의 사안이 외부로 옮겨와 자꾸만 곪아터지고 있다는 건 그만큼 문제가 심각하다는 방증일 테다. 형식적인 조직 개편 따위로는 작금의 곪은 상처가 아물기는 어려워 보인다. 비록 시간이 오래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바닥 아래로 추락한 신뢰를 다시금 곧추세우는 일에 매진해야 할 필요성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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