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북촌 한옥마을 주민들은 왜 거리로 나섰나

새 날 2018. 5. 26.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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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북촌이 참 떠들썩합니다. 이른 시각부터 늦은 시각까지 구름떼처럼 한꺼번에 몰려드는 국내외의 관광객들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그보다는 조금 더 특별한 소란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북촌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현지 주민들 때문인데요. 북촌 주민들로 이뤄진 ‘북촌 한옥마을운영회’는 지난달 28일부터 주말마다 마을 입구에서 집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연유일까요?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인해 사생활이 침해 당하고 있다며, 서울시와 종로구 등 지자체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나선 것입니다. 


하긴 이들의 심정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정 부분 헤아려집니다. 삶의 안식처인 거주지 부근에서 들려오는 온갖 종류의 소음과 소란 등이 달갑게 다가올 리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서울 시내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한옥 밀집촌을, 그것도 주민들이 실제로 거주하고 있는 곳을, 조금만 발품만 팔면 볼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매력덩어리인가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현상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게다가 TV 예능프로그램 등을 통해 몇 차례 방송에 소개되면서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게 됐으니 더더욱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면 어디든 시끄럽고 소란이 빚어지기 마련일 텐데요. 실제로 제가 북촌을 몇 차례 방문했을 때에도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복잡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 언론사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하루 평균 7천 명가량의 관광객이 이곳 북촌 한옥마을을 찾고 있답니다. 빌딩 숲으로 가득찬 서울 한복판에서 전통을 보고 느끼게 해준다는 점은 많은 사람들의 발길과 눈길을 단박에 사로잡을 만큼 상당히 매력적인 요소입니다. 



그러다 보니 갖가지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주변에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고 고성방가를 일삼는 행위는 일상 다반사가 돼버렸고, 문이 열린 곳이면 관광객들이 어김없이 집 안을 흘깃거리며 들여다보거나 심지어 허락도 없이 불쑥 들어오기 일쑤라고 합니다. 때문에 주민들은 관광객들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시간대가 되면 대문을 굳게 잠가놓은 채 집 밖으로는 얼씬도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합니다. 사생활을 보장 받을 수 없는 현실인데요.


사실 이러한 현상은 특정 지역이 유명세를 탈 때마다 겪게 되는 일종의 통과의례 가운데 하나입니다. 주거 지역이 관광지화되면서 기존 거주민이 이주하는 현상인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의 그림자는 일찍이 다른 지역에서도 나타난 바 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제주도입니다. 제주도는 관광객들로 인해 부동산 가격과 물가가 치솟고, 범죄율이 악화되면서 제주도민의 삶의 질은 최악의 수준으로까지 곤두박질친 것으로 전해집니다. 


아기자기한 벽화로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였던 이화동벽화마을은 한 곳에 오래 머무를 권리인 정주권과 생존에 필요한 것을 요구할 권리인 생존권 확보를 요구하며 많은 주민들이 결국 거주지를 떠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마을의 정체성이던 벽화가 지워지는 볼썽사나운 사태까지 겪어야 했습니다. 이런 사례에서 보듯 북촌 한옥마을도 어느덧 거주민들이 인내 가능한 수준인 임계치에 이미 도달해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조선일보


이의 흔적은 여러 곳을 통해 확인 가능합니다. 마을 곳곳에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는데요. ‘북촌한옥마을 주민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 ‘새벽부터 찾아오는 관광객, 주민은 쉬고 싶다’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이곳은 주민들의 거주 지역이기에 관광객들은 조용히 해달라며 간곡하게 호소하는 안내판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주민들을 더욱 분통 터지게 하는 사안은 또 있습니다. 북촌 일대는 한옥 보존 등을 위해 2010년 1월 ‘지구단위계획’ 구역으로 결정된 바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용도변경 등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기존의 집을 허물고 다른 집을 짓거나 상업시설로 바꾸는 게 불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주민들은 관광객에게 시달리느라 삶의 질이 형편 없이 떨어졌음에도 재산권마저 마음 대로 행사할 수 없게 된 형편입니다. 더 이상 참지 못 하게 된 주민들이 작금의 현상을 완화시켜달라며 집회를 개최하거나 아예 짐을 싸서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일이 벌어지는 건 어쩌면 너무도 당연합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 지역 주민 수는 2012년 8719명에서 지난해 7438명으로 14.7%나 줄어들었습니다. 


북촌 한옥마을이 전통 가옥으로서 그 어느 곳보다 가치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한옥 가옥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일까요? 물론 이 또한 그 이유 가운데 하나이긴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닙니다. 북촌보다 깨끗하게 보존된 한옥은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습니다. 그보다는 마을을 지키며 이제껏 이 곳에서 질기도록 삶을 이어오고 생활을 꾸려온, 실제로 거주하는 주민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한옥은 민속촌이나 기타 관광지에 가면 오히려 잘 정돈된 형태로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한옥만을 보고자 한다면 차라리 다른 곳을 구경하는 게 훨씬 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람의 흔적이 없고 삶이 이뤄지지 않는 곳은 박제된 동물이나 박물관에 보존된 문화재와 다를 바 없습니다. 관광객들이 북촌을 유독 많이 찾는 건 박제나 박물관이 아닌, 이렇듯 사람들의 생활 흔적을 엿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북촌 한옥마을만이 지니고 있을 법한 최고의 경쟁력이자 소중한 전통문화이기도 합니다. 한 마디로 대체 불가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작금의 상황을 그냥 방치해서는 안 될 노릇입니다. 


주민들은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주거 환경마저 최악으로 내몰리는 상황에서 그 어떠한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물론 주민들이 금전적 형태의 보상만을 바라는 건 결코 아닙니다. 자신들이 평생을 살아오면서 터를 지켜온 곳이기에 보통사람들이 누리는 일상을 계속해서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해달라는 아주 소박한 바람이 전부일 것입니다. 


이 곳은 주거지역 및 상업지역으로 나뉜 터라 다양한 계층의 이해관계가 상충하고 있습니다. 이를 조율하고 다수가 만족할 수 있는 해법을 도출해야 하는 건 결국 해당 지자체의 몫입니다. 관광객 유치로 얻은 이익을 마을 주민들에게 환원하는 일도 중요하고, 동시간대에 몰리는 관광객을 분산시키는 방안 등도 강구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관광객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이 절실합니다. 거주지에서 우리가 삼가야 할 것이 무언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모두가 잘 아는 사안입니다. 강제가 아닌 자발적인 참여가 요구되는 이유입니다. 이러한 노력들이 조화를 이뤄 아무쪼록 서울의 자랑거리이자 대한민국의 대표 전통문화인 북촌을 슬기롭게 보존하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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