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봉인 해제된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참상

새 날 2018. 5. 17.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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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 하루종일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장마철도 아닌데 장대비가 퍼붓고 있습니다. 덕분에 마음마저 차분히 가라앉는 느낌입니다. 비가 쏟아지던 오전, 포털에서 신문 기사들을 훑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유독 눈길이 가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38주년을 맞아 그동안 봉인되어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 못 했던 당시 현장의 사진들을 공개한 한국일보의 기사였습니다. 



비록 흑백이었습니다만, '미공개 사진으로 본 5·18 광주…묵묵히 삼킨 비극의 날들'이라는 제목과 함께 어슴푸레 눈에 들어오던 사진의 실루엣은 너무도 강렬한 것이었습니다. 도심 시가지에서는 방금 시위가 끝난 것인지 한 청년이 거리 위에 쓰러져 있고, 그의 주변에는 소총으로 중무장한 계엄군이 경계를 펴고 있었습니다. 쓰러진 청년 곁으로 한 아주머니가 지나가고 있었지만, 서슬 퍼런 계엄군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해 하며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스쳐가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안타까울 때가 다 있나요? 



그 외에도 십여 장의 사진들이 공개되었는데요. 워낙 비극적인 상황이었던 터라 되도록이면 끔찍했던 장면들은 배제하고 몇 장의 사진을 이곳에 인용해보고자 합니다. 더 많은 사진들을 보고자 하신다면 링크된 해당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예전 학교 다닐 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한 세대 전쯤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그림이나 판화 같은 작품들을 흔히 볼 수 있었는데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시민군에게 주먹밥을 만들어 나눠주던 모습을 볼 수 있었고요. 탈취한 소총을 한 손에 쥔 채 버스에 올라타 태극기를 흔드는 시민군들의 장면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이 당시 사진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동네 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대형 솥에 불을 지핀 채 음식을 만드는 모습으로부터는 당시 상황이 얼마나 긴박했는지 고스란히 읽히고 있습니다. 광주 시민들은 이렇듯 정이 많고 지혜로웠습니다.



무고한 시민들을 마구잡이로 학살하던 계엄군의 도발에 맞서 시민군을 자처한 시민들이 버스에 일제히 오르는 장면입니다. 형제 자매 친구 등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마당에 뭔들 두렵겠습니까. 버스에 태울 수 있는 정원보다 훨씬 많은 수의 시민들이 몰려들다 보니, 그리고 한시 바삐 항쟁에 참여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이끌린 듯 창문으로 올라타는 시민들의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같은 버스에 올라탔으나 항쟁 과정에서 이들의 생사가 갈렸을 것을 생각하면 마음 한켠이 짠해 옵니다. 



지난 해 개봉하여 천 만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 '택시운전사' 내용 가운데 기사들이 계엄군의 만행에 맞서 당시 택시 차종 중 가장 대중성이 높았던 브리샤와 포니를 일제히 끌고 나오던 장면이 잠깐 나옵니다만, 현실에서는 훨씬 많은 택시기사들이 시위에 동참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당시 광주시민들의 마음은 이들 택시기사들의 그것과 완전히 같은 성질의 것 아니었을까요? 



항쟁이 벌어지던 당시 일반 시민들의 모습도 포착됐습니다. 계엄군의 탱크가 도심 한가운데를 파고든 끔찍한 상황, 부근을 지나는 어르신들이나 아주머니의 무심한 표정과 극적인 대비를 이루고 있습니다. 



당시는 아마도 계엄군과 시민군 사이에서 시가전이 벌어지던 상황이었을 것 같습니다. 소총을 들었으나 군복을 입지 않은 것으로 봐선 시민군으로 보여지는데, 한 청년이 거리를 지나고 있고, 부근 상가에서는 그러한 모습을 문을 열거나 창만 빼꼼히 연 채 쳐다보고 있는 모습입니다. 창문에 서서 이를 바라보는 아이의 당시 마음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요? 



피난 행렬도 이어졌습니다. 국군이 우리 시민을 학살하는 말도 안 되는 끔찍한 현실 앞에서 망연자실한 일부 시민들은 가재도구를 챙겨 아예 광주로부터 탈출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전쟁도 아닌 상황이기에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시 광주의 참상이 어떠했던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마지막 사진은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합니다. 계엄군에게 붙잡힌 청년들의 모습입니다. 두 손은 뒤로 결박된 상태였으며 등 뒤에는 그들의 이름과 함께 죄목이 쓰여져 있었습니다. 흰색 속옷을 입은 청년의 뒤에는 '탄약 보유'라는 글자가 선명합니다. 어디론가 끌려가는 이들이 당시 겪었을 고초는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고문과 학대가 자행되어 목숨을 잃은 이들도 부지기수였을 테고, 저들 가운데엔 분명 아직까지 실종자의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는 이들도 더러 있을 겁니다. 



또 다시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과 마주하게 됩니다. 올해로 벌써 38년이라는 세월의 흐름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되레 당시의 아픔은 더욱 뚜렷한 상처로 각인된 채 고통으로 전가되고 있는 양상입니다. 5.18은 우리 모두에게 여전히 빚으로 남아 있습니다. 지난 해 완성된 촛불혁명은 5.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대변되는 광주 정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땅의 민주화에 있어 혁혁한 발자취이자 자랑스러운 흔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항쟁에 관한 기록물은 지난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항쟁이 있은 지 한 세대가 훌쩍 지났음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혹들이 즐비합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침도 겪었습니다. 10년 가까이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항쟁을 상징하는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수조차 없었습니다. 항쟁을 빚게 한 원인 제공자이자 당사자는 회고록을 통해 광주항쟁의 역사를 왜곡하려 하고 있습니다. 일부 몰지각한 세력 역시 비슷한 주장을 펼치며 폄훼를 시도하고 있으며, 심지어 조롱하는 일도 빚어지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쌓인 의문이 풀리고 미완의 숙제가 해결되어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을 이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어루만져주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미지 출처 :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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