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아직은 졸업장이 밥 먹여준다

새 날 2018. 3. 23. 12:35
반응형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고졸 인력이 점점 늘고 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다. 지난 22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7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고교 졸업자의 지난해 대학 진학률은 68.9%로 나타났다. 2009년 77.8%로 정점을 찍은 뒤 지속해서 하락하는 추세다. 반면 특성화고 등 직업계 고교 졸업자의 취업률은 지난해 50.6%에 이르렀다. 2009년 16.7%로 바닥을 기록한 뒤 지속해서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놓고 한 일간지가 '졸업장이 밥 먹여주더냐 ... 대학 진학률 8년 새 78%->69%'라는 제하의 매우 긍정적인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다. 실제로 기사를 통해 제공된 통계자료들만을 놓고 보면 우리 사회가 이제 비로소 학벌주의의 병폐로부터 서서히 벗어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현실은 과연 그럴까? 


ⓒ중앙일보


대학 진학률이 떨어지는 건 최근의 취업 절벽 현상과 궤를 함께하는 요소다. 비싼 등록금을 투자, 대학 졸업장을 취득하더라도 구조적인 이유로 인해 변변한 직장에 들어가기는 하늘의 별따기에 가깝다. 어렵사리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그게 전부는 아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게 있어 그 뒤의 삶은 불안정과 괴로움의 연속이다. 조직문화 등 노동환경은 여전히 변화에 둔감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안정성,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점점 짙어지고 있다. 공무원 열풍은 이러한 현상의 대표적인 사례다. 


대학을 나와도 직장을 구하지 못하거나 혹은 직장에 들어간 뒤에도 결국 돌고 돌아 공무원 학원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청년들이 부지기수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취업 준비생 10명 가운데 4명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10대에 불과한 고등학생 때부터 공무원 시험에 뛰어드는, 이른바 공딩족까지 가세하고 있는 추세다. 


ⓒ중앙일보


고등학교 때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의 비율이 크게 증가, 1년만에 5배가 늘었으며 실제 시험 응시자는 5년 전에 비해 2배나 증가했다. 공시족들이 몰리는 노량진 학원가에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고등학교 3년생이나 재수생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공딩족이 전체 수강생의 27%에 이를 정도다. 그렇다면 대학 진학률이 떨어지는 현상과 공딩족 수의 증가 사이에는 모종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아울러 대학 진학률이 하락하고, 반면 직업계고교의 취업률이 높아진 사실 사이에 뚜렷한 연관성이 존재하려면 대학 진학을 꿈꾸는 대신 이를 포기하고 취업을 위한 직업계고교로의 진학이 늘어나야 한다. 대학 진학률이 줄어드는 비율만큼 직업계고교로 인력이 흡수되어야 하는데 과연 그럴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와 정반대다. 직업계고교의 인기가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 특성화 고등학교의 학생 수가 급감, 존립 위기를 맞고 있다는 소식이다. 올해 대부분의 특성화 고등학교가 모집 정원을 채우지 못했으며, 심지어 정원의 20%밖에 신입생을 모으지 못한 학교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YTN 동영상 캡쳐


이러한 현상은 학령 인구 감소라는 구조적인 원인도 한 몫 거들고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대학 진학을 염두에 둔 인문계고 선호 현상이 여전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게다가 최근 처음으로 50%를 넘어섰다는 직업계고교의 취업률 상승도 알고 보면 허점투성이다. 그동안 취업률이 꾸준히 상승했지만 일자리의 질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자리의 질을 따지는 지표 가운데 하나가 고용보험 가입률인데, 취업률이 높아질수록 되레 고용보험 가입률이 급락하면서 과연 양질의 일자리 위주로 취업을 한 것인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뉴스1


뿐만 아니다. 대학교의 취업률 발표와는 달리 취업한 학생이 6개월 뒤 그리고 1년 뒤에도 계속 같은 직장을 다니고 있는지를 조사하는 '유지 취업률' 결과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직업계고 졸업생이 정규직으로 취업한 것인지 아니면 비정규직인지, 그리고 양질의 일자리인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있는 방법이 일절 없다는 사실은 현재 50%를 돌파하며 고공행진 중이라는 취업률의 실체에 의구심을 더하는 양상이다. 


아울러 많은 직업계고 학생들이 일자리의 질을 따지지 않고 현장실습을 나가거나 취업하는 이면에는 취업률 성과주의가 자리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로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일부 교육청이 취업률에 따라 특성화고 교장들의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결과적으로 작금의 취업률 상승은 이러한 취업률 부풀리기 행태의 결과물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의미다. 



자, 이렇듯 몇 가지 사례들만 살펴 보더라도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학벌주의가 완화되고 있다는 주장은 얼토당토 않다. 오히려 최근 은행 채용 비리 실태를 통해 드러난 학벌 차별 현상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학벌주의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결과물이다. 모 은행의 2016년 공개채용 당시 이른바 명문대생을 뽑기 위해 임원 면접에서 점수를 조작, 실력으로 앞섰던 여타 대학 출신 취준생들의 기회를 앗아간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바 있다. 이러한 사례가 비단 해당 은행에서만 빚어졌으리라고 믿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으리라 짐작된다. 


우리는 이러한 세태를 통해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된다. 굳이 대학을 나오지 않더라도 급여 등 처우로 차별 받지 않으며, 똑같은 조건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면, 이를테면 현재 공딩족들이 늘어나는 이유처럼, 애써 진학을 하지 않고 자신의 역량과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얼마든지 찾아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모순 가운데 학벌주의가 상당한 비중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대학 졸업장이 밥 먹여주는 사회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정부가 어떠한 방향으로 정책을 펼쳐야 하는지 시사하는 바 크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