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교복은 교복다워야 한다

새 날 2018. 3. 11.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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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은 전두환 정부가 중고등학생의 교복 및 두발 자율화를 전격 추진한 해다. 이른바 교복자율화 조치다. 중고등학생이 머리를 자유롭게 기르고 교복을 입지 않은 채 등교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당시엔 말 그대로 획기적인 조치였다. 이전까지만 해도 모든 중고등학생은 싫든 좋든 관계없이 무조건 일제 강점기 때부터 입어온 일본식 교복을 착용해야 했다. 남학생은 군복 형태의 검은색 교복 그리고 스포츠형 머리에 둥근 교모를 착용해야 했으며, 여학생은 단발머리에 흰색 칼라가 있는 세일러복을 입어야 했다. 


간혹 머리를 유독 길게 기른 학생의 등교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이들은 대부분 연예인들이었으며 당시엔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개성이라고는 일절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획일화돼 있던 시절에 머리만이라도 자유롭게 기를 수 있었던 건 대단한 권리로 여겨졌다. 나의 학창시절은 그 중간 즈음에 걸쳐 있었다. 덕분에 일본식 교복부터, 머리를 자유롭게 기르고 아예 교복을 입지 않았던 교복자율화 시기까지 극과 극을 오가는 경험을 두루 할 수 있었다. 



각기 장단점이 있었던 건 분명했던 것 같다. 이 교복자율화 조치는 3년가량 유지되다가 학교 밖 생활 지도의 어려움과 각종 탈선 행위 증가 그리고 가계 부담의 가중 등으로 1986년 보완 조치가 채택돼 대부분의 학교에서 다시 교복 착용이 이뤄져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요즘 교복은 아이들의 개성을 한껏 살려놓은 데다가 학교를 상징하는 역할도 도맡아한다. 


그러나 이 교복 문제로 요즘 여간 시끄러운 게 아니다. 교복업체들마다 날씬해 보이도록 하는 이른바 '슬림핏'을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우면서 여학생들의 교복이 과하게 짧고 작아 불편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짧고 작아졌길래 이토록 원성이 자자한 걸까? 한 언론사의 보도에 따르면 키 170cm, 가슴둘레 94cm 기준의 여학생 교복 셔츠와 7~8세용 15호 아동복 사이즈를 비교해보니, 가로 폭은 별 차이가 없었고 기장은 아동복보다 훨씬 짧았단다. 


ⓒ노컷뉴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여학생들은 머리를 묶거나 팔을 뻗는 일상 동작조차 하기가 어렵다며 하소연하기 일쑤다. 아이들에게 있어 교복은 일종의 생활복이다. 하루 10시간 이상을 입고 있어야 한다. 때문에 지금처럼 외양에만 치중하고 기능성은 철저히 무시, 일상에 불편을 초래하는 복장이라면 생활복으로써의 역할은 완전히 낙제점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사안이다. 아이들이 얼마나 큰 불편을 느꼈으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까지 이 교복 문제를 해결해 달라며 요구하고 나선 것일까 싶다. 


물론 그동안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교복을 과도하게 수선하여 입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고, 여전히 일부 아이들은 어른이나 아이돌처럼 꾸미고 다니기를 바라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아이들답게 성장하고 꿈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곁에서 격려하고 도움을 주어야 하는 건 오롯이 어른들의 몫이다. 아이들이 이뻐 보이고 싶고 저마다 아이돌처럼 꾸미고 싶은 건 그 연령대라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다만 각종 미디어를 통해 지나치게 외모지상주의를 설파하고, 아이돌 등 인기 연예인을 앞세워 마른몸매 강박증을 부지불식 간에 심어주며 이를 부추겼던 건 결국 우리 어른이 아니었는지 되돌아 봐야 한다. 



아울러 혹여 아이들이 어른 흉내를 낼 요량으로 그러한 방식을 요구한다 해도 교복업체는 활동성과 건강 등 기능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여 교복을 제작, 판매했어야 함이 옳다. 작금의 '슬림핏' 경쟁은 사실상 수년 전부터 이뤄져왔던 게 사실이다. 얼마 전 한 교복업체가 아이돌 그룹 트와이스를 모델로 내세워 "스커트로 깎아라, 쉐딩 스커트”, “재킷으로 조여라, 코르셋 재킷” 등의 자극적인 문구를 넣어 광고를 제작,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기억이 있다. 이른바 섹시 컨셉이다. 어느덧 교복에까지 섹시 컨셉을 적용할 만큼 어른들의 상업성은 이미 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아울러 여학생들에게 무조건 치마 교복만을 강요하는 건 지나칠 정도로 전근대적인 발상이다. 바지와 치마 가운데 적절히 선택하여 입을 수 있도록 선택권을 부여해야 한다. 추운 겨울철에 치마 교복을 입은 채 와들와들 떨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너무 안쓰럽다. 일부 학교에서는 치마와 바지를 함께 입도록 교칙으로 정해놓고 있으나 여전히 많은 학교에서는 치마만을 강요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언론사가 여중고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취재한 결과 평소에도 교복 치마와 바지를 함께 입도록 교칙에서 허용한 경우는 전체의 32%에 불과했다. 


이런 저런 부작용을 내세우면서 교복을 폐지하자는 일각의 주장도 있다. 하지만 난 이에 반대한다. 아이들은 교복을 입었을 때 유독 빛이 나기 때문이다. 그맘때 아이들의 특징이다. 굳이 어른 흉내를 내지 않더라도, 아울러 아이돌처럼 짧게 줄이거나 몸매를 과시하지 않아도, 그 연령대의 순수함만으로도 우리 아이들은 얼마든 예뻐 보이는 법이다. 아이들을 아이답게 만드는 건 교복이다. 그리고 교복은 교복다워야 한다. 어른들의 욕심으로 아이들의 활동성과 건강마저 앗아가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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