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요?

새 날 2018. 3. 18.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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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한 스포츠 신문사 연예부 수습기자가 된 도라희(박보영)는 입사 첫날부터 이상과 현실 사이의 부조화로 인해 도저히 평정심을 유지할 수가 없다. 상명하복이 유독 심한 조직 문화는 그녀로 하여금 숨이 턱턱 막히도록 하기에 차고도 넘칠 정도였다. 하재관(정재영) 부장은 전형적인 꼰대로서 그가 뱉어내는 말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는 어느덧 날카로운 비수로 돌변, 도라희의 폐부 깊숙이 파고들기 일쑤였다. 


한 술 더 떠 하재관 부장과 그의 동기이자 상사인 오달수(오달수) 국장의 성희롱성 발언 및 성추행에 가까운 행위가 회사 내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져도 위계에 짓눌린 듯 다들 모른 척, 혹은 안 본 척하기 바쁘다. 심지어 요즘 취업이 바늘구멍이라 들어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으니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나가도 좋다며 반 협박성 발언에, 윽박지르기까지 한다. 청년들의 구직난과 같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이 신규 취업자들에게는 말없는 압박이자 동기부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이러한 환경이 회사의 조직 문화를 쉽사리 변화할 수 없게 하는 결정적인 유인인지도 모를 일이다.



비록 이 영화가 허구인 소설을 기반으로 하는 까닭에 다소 극단적으로, 그리고 희화적으로 묘사됐을 수는 있으나 어쩌면 우리 주변의 직장인들에게 있어 현실은 이보다 더욱 가혹하게 와닿을지 모르겠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에 따르면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 결과 10명 가운데 7명가량이 회사 우울증을 앓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 따르면 국민의 73.4%가 직장에서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하루 24시간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야 하는 까닭에 직장인들에게는 이러한 결과가 끔찍함 그 자체로 다가올 테다. 그나마 일자리의 수준이라도 괜찮으면 다행일 법한데, OECD가 최근 발간한 '사람과 일자리의 연계: 한국의 더 나은 사회 및 고용보장을 향하여' 보고서에 따르면 양극화마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의 전체 노동자 가운데 중위임금의 3분의 2 미만을 버는 저임금 노동자 비율은 23.7%로 OECD에서 미국과 아일랜드에 이어 3위 수준인 것으로 집계됐다. 노동자의 소득 불평등도도 3위에 랭크됐다. 



여전히 많은 회사들이 전근대적인 조직 문화로 일관, 직장인들의 그나마 남은 기력마저 한꺼번에 소진시키며 번아웃으로 몰아가는 현실만으로도 갑갑하기 이를 데 없는데, 이렇듯 점점 그 간극을 벌려놓고 있는 직장인들의 소득 불평등 현상은 상대적 박탈감을 무한정 키우는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최저임금을 왜 현재의 수준보다 높여야 하는가에 대한 당위론적 배경으로 다가오게 하지만, 사회 일각에서는 여전히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반발 심리를 여러 형태로 드러내고 있는 와중이기도 하다. 


직장인 2600만 명 시대라고 한다.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직장인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직장 혹은 직업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은 얼마나 될까? 만약 당신이 직장인이라면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게 될 테니 적어도 70-80%가량 차지하고 있는 셈 아닐까? 그렇다면 직장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력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수준 아닐까? 



우리는 행복을 흔히 돈과 결부 짓곤 한다. 물론 반드시 정비례하지는 않더라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게 하는 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 이 행복과 관련하여 천문학적인 재산을 지닌 워런 버핏은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단언한다. 자신의 재산이 갑절로 늘어난다고 해서 그만큼 행복해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란다. 혹자는 그가 이미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재산을 축적한 상태이기에 그의 주장은 객관적이지도 않고 설득력마저 태부족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다음의 또 다른 주장은 어떨까?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의 심리학과 엘리자베스 던 교수는 돈보다는 시간이 새로운 행복의 잣대라고 말한다. 워런 버핏보다는 조금 더 구체적이다. 한편 유엔 산하 자문기구가 발표한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156개 조사 대상 국가 가운데 57번째의 행복한 국가로 랭크됐다. 세계 10위권 언저리의 경제 볼륨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게다가 5년동안 줄곧 떨어지기만 했다. 무려 16계단이나 하락했다. '헬조선'이라는 청년들의 자조적인 표현이 남발되던 즈음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시기이다. 


앞서의 결과들을 쭉 나열해놓고 보니 돈이 행복과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는 워런 버핏, 그리고 시간이 행복의 잣대라고 말하는 심리학 교수 던의 주장에 일견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간디는 생전에 행복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실천하는 것이 조화를 이룰 때 온다고 했다. 아울러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의 저자 마이클 부스 역시 앞서 언급한 세계행복보고서 1위 국가 핀란드를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의 행복 현상의 가장 중요한 열쇠로 삶의 자율성을 꼽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과연 얼마나 조화로우며, 자율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요즘 청년들이 가장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영역 가운데 하나인,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룬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의 행복 순위가 57위까지 곤두박질치는 일은 결코 안 일어나지 않았을까? 여기에 대한 해답은 도라희 수습기자처럼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라며 패기 좋게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이들이 어느덧 중년의 '회사인간'이 되거나 이미 퇴직하여 주말만 되면 형형색색의 아웃도어 의상으로 갈아입은 채 일제히 산으로 향하는, 천편일률적인 모습으로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현상을 자신들의 멀지 않은 미래로 판단, 관심 깊게 바라보는 청년세대는 작금의 기성세대를 과연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회사인간'의 반대 개념인 '퇴사인간'의 유행 현상이 바로 그에 따르는 화답 아닐까? 직장의 조직 문화가 변화하지 않고선 직장인들의 삶의 여건이 바뀔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배경과 환경 하에서 막연히 행복해져야 한다면서 무민세대로 정의되는 청년은 야망을 가져야 하고, 마땅히 할 게 없어 주말마다 산에 오르는 중년 남성은 취미를 가져야 한다는 누군가의 주장은 공허하기 짝이 없다.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요?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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