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소확행의 유행, 위로일까 자조일까

새 날 2018. 3. 30.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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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소확행'이라는 단어가 2018년 대한민국 2030세대에게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단다. 물론 이는 지난해 이미 '욜로' '워라밸' '가심비' 등의 신조어와 함께 올해 가장 유행하게 될 새로운 트렌드라며 일찌감치 각종 미디어에 소개된 바 있다. 지난해 청년세대를 휩쓴 신조어 '욜로'의 바통을 이어받을 만큼 소확행이 근래 2030세대에게는 대세인 셈이다. 


각종 문화 상품이나 소비 트렌드도 이러한 대세에 진작부터 편승한 느낌이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나 '소공녀'가 소확행을 다루고 있다며 열심히 홍보에 나섰고, 특별한 의미 부여에 온 힘을 쏟는 모양새다. 각 기업들 역시 이참에 소확행을 소비 촉진의 핵심 도구로 활용하려는 분위기임이 역력하다. 각종 이벤트나 마케팅엔 소확행이 으레 언급되곤 한다. 



그런데 이 소확행이라는 단어의 의미에서 볼 수 있듯이 이는 결코 새로운 개념이라고 볼 수 없다.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이란, 특별히 의도하여 얻는 행복이 아닌, 말그대로 소소한 일상을 통해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행복감을 일컫는다. 그런데 왜 이런 뻔한 개념이 새로운 트렌드인 양 떠오르게 된 걸까? 이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과 맞닿아 있다.


청년들 앞에 놓인 현실은 불확실하고, 미래는 불투명하기 짝이 없다. 취업절벽, N포세대라는 용어가 일상이 되다시피 청년들이 현재 누리는 삶은 녹록치가 못하다. 부모세대보다 가난한, 유일한 세대가 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은 청년들로 하여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온 모든 것들을 진작부터 포기하게 만들기 일쑤다.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고, 혹여 하더라도 이번엔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이들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초저출산국가의 멍에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인 데다가 당장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원인 또한 이로부터 비롯되기에 국가의 존재마저 위협하는 치명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천정부지로 치솟으며 정상적인 경제생활을 통해선 절대로 접근하기 어려울 것 같은 미친 부동산 가격은 일찌감치 내집 장만을 포기하도록 종용한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20대가 빚을 보유한 비율은 48.1%에 이르며, 부채규모는 2017년 기준으로 평균 2385만 원에 달한다. 사회생활 시작도 전에 벌써부터 빚을 떠안고 있는 셈이니, 이들의 삶에 족쇄로 작용하지 않을 수 없다. 원하는 회사에 들어가 자아실현을 이루며, 마음에 드는 이성과 결혼, 토끼 같은 자식을 낳아 내집 장만을 하고, 알콩달콩 살아가면서 평범한 행복을 누리려는 소박한 꿈은 한국 사회에선 어느덧 실현하기 어려운 일종의 환상이 돼버렸다. 


기성세대들의 삶은 그래도 노력하면 미래가 어느 정도 보장되었기에 과감히 현재의 삶을 희생시켜 왔는데, 청년세대들에게 있어 현재를 저당 잡히기엔 미래가 너무도 불투명하다. 이런 현실이 지속되자 수년 전부터 청년들 스스로 자신들의 처지를 비웃는 표현이 남발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이러한 단계를 벗어나자 '워라밸'이니 '욜로'와 같은 현실 타협성의 신조어들이 떠올랐다. 



이러한 신조어 트렌드를 통해 비웃거나 자학하는 단계를 벗어난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변화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고 위로도 얻을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그런데 소확행이라는 유행의 이면엔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으로 인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결국 어쩔 수 없이 현실에 안주하려는 청년들의 쓸쓸한 뒷모습이 어른거리는 느낌이다. 


무릇 청춘이란 현실보다는 미래에, 그리고 자신보다는 사회에 관심을 더 기울이고 꿈을 펼쳐나가야 하는 시기이거늘, 이들이 어쩔 수 없는 현실에 짓눌린 채 마치 중년 이상의 기성세대들에게서 엿볼 수 있는 삶의 양태를 드러낸다는 현실이 너무도 안쓰럽다. 소확행이라는 그럴 듯한 의미의 이면에는 이렇듯 청년들의 자조가 내포돼 있거나 혹은 기성세대가 이들의 아픈 현실을 교묘히 감추려는 의도로 일정한 틀 안에 가둬놓으려는 시도로 간주되는 데다가, 다른 한편으로는 청춘을 위로한다는 그럴 듯한 명분으로 포장, 상업적인 목적과 마케팅 등에 이를 이용하려는 움직임마저 엿보이는 탓에 못내 씁쓸하다. 


소확행의 유행, 위로일까 아니면 자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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