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멘티가 진정한 멘토를 만나게 될 때

새 날 2018. 2. 14.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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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볼 필드를 휘어잡던 '우생순'의 신화 임오경이 '불타는 청춘' 노래자랑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가수 신효범으로부터 노래 교육을 받는 모습은 너무도 안쓰러웠다. 신효범은 현직 교수라 학생들을 가르치는 패턴이 몸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이었다. 물론 임오경에게도 학생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교육이 진행됐다. 입 모양을 교정하고, 발성 연습을 시키는 장면이 방송 전파를 탔다. 신효범은 호랑이 선생님이었다. 임오경을 모질게 다뤘다. 하려면 제대로 하든가 아니면 말든가였다. 눈물을 쏙 뺄 정도로 스파르타식 강행군이 이어졌다. 두 눈에 눈물이 글썽이던 임오경의 모습은 안쓰러움 그 자체였다.


드디어 대회 날이 밝았다. 본 대회에 앞서 리허설이 준비돼 있었다. 총 7개의 팀이 리허설을 위해 속속 도착했다. 그런데 임오경의 등장 장면은 다른 팀들과는 무언가 달랐다. 다른 팀들은 멘토의 격려를 받으며 멘토와 함께 도착했건만, 임오경은 유일하게 혼자였다. 대기실로 들어서려는 순간, 복도 벽면에 부착된 노래대회 참가 팀들의 포스터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임오경, 멘토인 신효범과 함께 찍은 자신의 포스터 사진 앞에서 그만 그동안 참고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아내고 만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대회 참가에 나선 임오경이 멘토 때문에 괜시리 마음이 흔들려 공연을 망치게 될까 봐 신효범은 대회 장소에 가지 않겠다고 폭탄선언을 한 것이다. 모진 훈련을 오롯이 감내해야 했던 임오경은 자신의 포스터를 보는 순간, 그 힘들었던 훈련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을 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멘토만 유일하게 대회 장소에 오지 않겠다고 하니 일종의 서러움 같은 게 북받쳤던 것 같다. 



나 역시 그녀가 얼마나 힘들고 어렵게 교육을 받았는지 잘 알고 있던 터라 멘토인 신효범이 야속했다. 다른 팀들은 멘토와 멘티가 각기 하나가 되어 굉장히 화기애애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었을 임오경에게는 그나마 강문영의 멘토인 이하늘이 위안이 되어주었다. 리허설을 할 때도, 본 대회에 입장할 때도 이하늘은 뒤에서 조용히 그녀를 격려해주었다. 


드디어 대회가 시작됐다. 불타는 청춘 출연자들의 자체 대회였지만, 무대는 400명의 객석이 들어찰 만큼 제법 컸으며, 연주 또한 제대로 갖춰졌다. 첫번째 주자는 장군이라는 별칭을 얻고 있는 박선영이었다. 평소와는 달리 고운 자태와 소녀 감성의 발라드곡을 매우 훌륭하게 소화한다. 두번째 주자가 바로 임오경이었다. 그녀는 오롯이 혼자 무대 위에 섰다. 과연 이 큰 무대 위에서 떨지 않고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을까? 



그녀 스스로도 의구심을 지녔겠지만 이를 시청하던 나 역시 그녀가 염려됐던 터다. 게다가 임오경이 선택한 노래는 가창력 없이는 소화하기 힘든 곡이었다. 전주가 흐르고 첫 소절을 부르던 그녀, 화면 위로 살짝 떨리는 모습이 클로즈업된다. 가사를 잊은 듯했다. 당황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두 소절이 끝나고 노래가 점차 절정으로 향할수록 그녀의 페이스는 되레 눈에 띄게 좋아졌다. 아니 여유마저 느껴졌다. 


음정이며 박자며 고음 부분까지 척척 맞아떨어졌다. 제스처는 완전히 프로급이었다. 노래 가사와 손짓 눈짓 하나하나 절묘하게 결합하면서 무대를 완전히 휘어잡은 그녀였다. 마침내 노래를 마치고 무대 위에서 내려오던 임오경,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일 것이라 생각했으나 의외의 손님이 그녀를 반겼다. 다름 아닌 임오경의 공연에 방해가 될까 봐 대회에 오지 않겠다던 멘토 신효범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부둥켜 안으며 격려하고 또 고마워했다. 신효범은 사실 임오경이 무대에 오르기 전 객석 뒤쪽에 몸을 숨긴 채 그녀가 공연하는 모습을 쭉 바라보며 응원하고 있었다. 임오경이 초반의 실수를 만회하고 자신의 기량을 맘껏 뽐내자 조용히 기쁨의 눈물을 훔쳤던 그녀다. 뭉클한 장면이었다.



이제서야 신효범의 깊은 뜻을 헤아릴 것도 같았다. 교육 방식에 있어 누구보다 엄격하고 철저했던 그녀, 처음부터 임오경을 강하게 밀어붙이며 당혹스럽게 만들었고, 대단한 대회도 아니거늘 꼭 이렇게까지 혹독한 방식으로 가르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신효범의 임오경을 향한 교육은 지독했지만, 게다가 다른 멘토들과는 달리 대회 당일 멘티의 공연 장면조차 보지 않겠다며 매몰차게 외면했지만, 이는 교육 효과를 최대한 높여보려는 고도의 계산이 깔려 있는 행동이었으며, 실상은 어느 누구보다 따뜻한 속내를 지녔던 멘토 신효범이었다. 


그녀만의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교육 철학이 바로 평범하기 짝이 없던 한 사람의 불청을 완벽한 노래 실력과 무대 매너를 갖추도록 끌어올려놓은 셈이다. 과정이 없는 결과란 있을 수 없다. 누가 봐도 음치에 선머슴 같았던 박선영은 곱디 고운 소녀 감성의 발라드곡을 소화해내는 놀라운 변신을 선보였고, 장난기 충만한 최성국은 진지한 록커로 등장, 모두를 놀라게 하였으며, 무대 울렁증이 유독 심했던 이연수는 섹시 컨셉으로 급변신, 깔끔한 공연을 성공시키며 울렁증을 극복하게 된다. 결과에 연연하기보다 오로지 과정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했던 불청 그리고 그들을 음으로 양으로 도왔던 멘토의 노력이 한데 어우러지며 빚은 놀라운 변화다.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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