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믿음을 저버린 의외의 것들

지난해 말 중국의 5성급 특급 호텔의 위생 수준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도마에 오른 적이 있다. 변기 닦는 솔로 찻잔을 닦고, 심지어 수건을 변기 물에 적셔 바닥을 청소하는 등 최악의 위생 실태를 드러냈다. 최고급 호텔의 위생 수준이 이 정도라면 일반 호텔은 어떻게 믿고 묵겠냐는 등 비판 여론이 중국 내에서 일었다. 아울러 그러면 그렇지 중국 클라스가 어디로 가겠느냐며 이와 같은 현실에 대해 국내 네티즌들 또한 비아냥과 욕 세례를 일제히 퍼부었다. 

그러나 우리가 남을 욕할 처지는 못되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중국과 완전 판박이인 사례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한 매체를 통해 서울의 일부 특급 호텔에서의 형편없는 위생 관리 실태가 적나라하게 보도됐다. TV조선이 공개한 서울 시내 5성급 호텔 세 곳의 객실 청소 실태 영상은 가히 충격적이다. 청소 담당 직원이 수세미를 변기 물에 적셔 변기를 닦은 뒤 이를 이용해 투숙객 컵을 씻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것이다. 

호텔은 시설과 서비스의 수준에 따라 총 5개의 등급으로 나뉘어 부여된다. 이의 결정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진행한다. 5성급이면 최고 등급의 호텔이다. 최상급 수준의 시설과 서비스를 갖추고, 고객에게 최고의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호텔에만 이 5성급의 등급이 부여된다. 따라서 투숙객들은 5성급 등급 자체만으로도 그에 걸맞은 서비스와 시설 그리고 철저한 위생을 기대하게 된다. 때문에 이들 호텔의 엉터리 위생 관리는 고객의 믿음을 철저히 저버리고 있는 셈이다.

우리의 신뢰를 배신한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얼마 전 이대목동병원에서 신생아 4명이 동시에 사망하면서 병원 내 감염에 따른 안전 문제가 이슈화됐다. 평소 위생 측면에서 가장 안전할 것이라 여겨졌던 병원 내부에서의 사고라 일반인들의 충격은 배가됐던 바다. 그런데 그의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사실은 의외가 아닐 수 없다. 환자 안전 전문가인 울산대 의대 이상일 예방의학과 교수가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병원 내 감염사고의 핵심은 '의료인의 불량한 손 위생'이라고 지적했다. 

ⓒ뉴스1

의료진의 손 위생을 병원 내 감염사고의 으뜸으로 꼽은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뒷받침하듯 각 병원에는 환자 진료 전후에 의사에게 반드시 손을 씻도록 하는 규정이 구비돼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일 교수에 따르면 2009년 조사에서 의사의 손 씻기 수행률은 고작 19%에 머물고 있으며, 2012년 세브란스병원이 전국 병원의 의료인 6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손을 규정대로 씻는 의사는 66%에 불과했다고 한다. 많은 의료인들이 병원 자체 규정마저도 위반하고 있는 셈이다. 

어쨌거나 병원 내 감염사고의 가장 큰 원인이 의료진들의 철저하지 못한 위생 관리 때문이라는 사실은 다소 충격적이다. 평소 인술을 베풀어오던 의료인들인 까닭에 적어도 위생 관리만큼은 그 어느 누구보다 철저할 것이라는 믿음과 상식이 존재했건만. 이를 여지없이 깨버렸기 때문이다. 이는 고객의 신뢰를 저버렸다는 측면에서 볼 때 서두에서 언급한 5성급 호텔의 위생 관리 실태와 판박이다. 최상급 수준의 서비스와 시설을 갖추고 공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한 기관에 의해 등급을 부여 받은 만큼 투숙객들의 신뢰도 그에 비례했을 법한데, 이를 여지없이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한 매체가 서울시내 특급호텔 15곳에 재직 중인 호텔리어에게 물어본 결과 이들은 호텔 객실 투숙 시 사용을 꺼리는 비품으로 컵과 커피포트를 가장 많이 꼽았다고 한다. 호텔리어는 호텔을 운영하는 이들이다 보니 어느 누구보다 호텔과 투숙객들의 생리를 잘 아는 이들일 테다. 그러한 사람들조차도 꺼려하는 것들을 호텔 측이 위생 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는 현실은 매우 언짢은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호텔리어들은 작금의 비위생적인 호텔의 현실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앞서의 결과가 나온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손 잘 안 씻는 의사들은 또 어떤가. 보통사람들은 하얀 가운을 걸쳤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에게 무한 신뢰를 보내기 일쑤이고, 또한 그들에게 의지해왔건만, 실상은 인명을 다루면서도 손조차 잘 씻지 않는 등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위생 관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아 병원 내 감염사고를 일으키는 주 원인이 되게 하고 있다 하니, 이쯤 되면 정말로 할 말을 잃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