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의 전설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를 돈으로 해결해야 하는 모순

새 날 2018. 2. 2.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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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에서 살아있는 개가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넣어진 채 버려진 사건이 발생했다. 때마침 지나가던 행인이 쓰레기봉투에서 개 소리가 나는 것을 수상히 여겨 112에 신고하면서 발각된 것이다. 경찰의 수사 결과 이 반려견의 주인은 70대 및 30대 부녀로 밝혀졌다. 이들은 반려견과 15년 이상을 함께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최근 들어 반려견의 기력이 다하고 의식마저 흐릿해지기 시작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형편이 어려워 동물병원에 갈 처지가 못됐단다. 결국 차마 죽는 모습을 지켜볼 수는 없어 살아있는 줄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내다 버렸다는 것이 이번 사건의 골자다. 


15년 이상을 애지중지하며 함께해 왔다면 이 반려견은 그들에겐 이미 가족의 일원이었을 것으로 짐작되게 한다. 반려견과 교감을 나누고 정서적인 위안을 찾다 보면 자연스레 가족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더구나 15년이란 긴 시간의 흐름이었기에 그동안 반려견과 함께했던 좋은 추억들이 켜켜이 쌓였을 테고, 때문에 아파서 어쩔 줄 모르는 반려견에 대한 감정은 더욱 애틋하게 다가왔으리라. 반려동물은 우리의 삶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이를 잃은 뒤의 상실감은 상상 이상으로 크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가족의 일원을 내다 버릴 당시 이들의 심경이 어떠했을까를 헤아리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차마 죽는 모습을 바라볼 수 없어 그렇게 했다는 표현 속에서 반려견 주인이 느꼈을 법한 심경의 일단이 읽힌다. 아울러 경찰에 따르면 딸은 반려견을 버리고 난 뒤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안타까우면서도 안쓰럽기 짝이 없다. 진료비가 없어 이런 비극적인 결과를 빚게 했다는 사실은 가슴 아픈 대목이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이들은 모두들 공감하겠지만, 사실 동물의 의료비는 터무니없이 비싸다. 우리집 반려견이 지난해 급작스러운 설사 증세로 동네 동물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이틀 동안 입원한 비용은 백만 원에 달했다. 더욱 안타까운 건 그렇게 하고도 결국 녀석을 멀리 떠나보내야만 했다는 사실이다. 이로 인한 죄책감과 상실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때문에 난 동물 의료비에 따르는 부담감이 얼마나 큰 비중으로 와 닿는지 익히 안다. 그러나 비싼 비용도 비용이지만, 또 다른 문제는 그나마 그 비싼 동물 의료비가 동물병원마다 제각기 다르다는 데 있다. 동물병원 간 자율경쟁을 통해 의료비를 낮추기 위한 취지로 동물의료수가제가 폐지되면서 적정 기준이 없다 보니 이러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의료비를 낮춘 게 아니라 오히려 상승시키는 폐단을 낳고 말았다. 


ⓒ쿠키뉴스


이는 실제 통계로도 입증된다. 소비자시민모임이 지난해 서울 소재 193개 동물병원을 대상으로 서울지역 동물병원 의료비를 비교한 결과 동물병원에 따라 최대 6배가량 차이가 났다. 이를테면 반려견의 중성화 수술비는 최저 5만원에서 최고 30만원에 이르렀다. 반려동물 주인을 대상으로 한 의식조사 결과에서도 84.6%에 이르는 이들이 반려동물 관련 지출비용 가운데 의료비의 부담이 가장 크다고 답했으며,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도 이를 모르는 바는 아닌 것 같다. 최근 반려동물 의료수가제를 재정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도 이 같은 움직임에 힘을 보태고 있다. 동물병원은 진료비용을 고시하여 소비자들이 알 수 있도록 하고, 정부가 동물병원의 진료비용을 조사 분석하여 그 결과를 공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수의사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되어 현재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반려견이 감기에 걸려 병원을 찾을 경우 진료비와 약값까지 도합 4, 5만 원은 우습게 넘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진료비를 지불할 수밖에 없다. 적정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보니 과잉진료는 다반사고 덕분에 의료비 부담 또한 더욱 가중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서두에서 언급한 천안시의 그 반려견 주인들은 15년 이상을 함께해 온 녀석이 아파서 운신을 못하는 처지임에도 어려운 형편으로 인해 결국 눈물을 훔치며 쓰레기봉투에 녀석을 넣어 내다 버리고 만다.



반려동물인구 천만 시대라고 한다. 네 집 걸러 한 집이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의미다. 이렇듯 반려동물 숫자의 폭발적인 증가세에 비한다면 그를 뒷받침하는 관련 법규나 제도 등은 미흡하기 짝이 없다. 늘어난 반려견으로 인해 각종 민원이 빗발치자 뒤늦게 그와 관련한 대책을 부랴부랴 내놓고는 있으나 졸속 행정이라며 비난을 자처하고 있듯이 양적 팽창에 비해 질적 수준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반려동물인들을 가장 괴롭히는 건 터무니없이 비싼 데다가 병원마다 들쭉날쭉인 동물 진료비다. 천안에서의 사건은 이의 부작용이 낳은 폐해 가운데 하나다. 부르는 게 값이라는 동물 진료비를 누구나 납득할 수 있도록, 아울러 경제적 부담이 크지 않도록 적정 기준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 


반려동물과 나누는 교감과 그를 통해 누릴 수 있는 정서적인 안정감은 아무리 큰 액수를 지불한다 해도 돈으로는 결코 구할 수 없는 매우 소중한 가치다. 하지만 정작 반려견 주인을 괴롭혔던 지점은 어이없게도 돈으로 살 수 없는 이 가치를 돈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모순이었다. 다시는 돈 때문에 가족의 일원을 길에 내다버리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정책을 제대로 정비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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