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의 전설

고작 개 한 마리 때문이라니요

새 날 2017. 10. 10.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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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커뮤니티를 눈팅하던 참이었는데, 우연히 영화 '존윅'과 관련한 글 하나가 눈에 띈다.

 

'고작 개 한 마리 때문에 그 많은 사람을 죽이다니..'


얼마 전까지 반려견을 키우던 입장이었던 터라 그랬을까? 왠지 해당 글귀가 자꾸만 눈에 밟혀 그냥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마도 해당 글을 쓴 이는 스토리의 개연성을 언급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개 한 마리를 죽인 대가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다는 해당 극의 설정이 영 눈에 거슬렸던 게다. 

 

영화 '존윅'은 지난 2014년에 1편이 개봉되었고, 올해 '존윅 리로드'라는 제목으로 그 속편이 개봉됐다. 물론 1편과 2편 공히 흥행과는 그다지 거리가 멀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러시아계 마피아 일원이었던 존윅은 한 여자를 만나 이윽고 사랑에 빠진다. 그녀를 지독히 사랑했던 그는 마피아 일까지 그만 두는 등 개과천선한 끝에 결혼에 골인하는데, 안타깝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를 잃고 만다.

 


불행 중 다행히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전 존윅에게 선물 하나를 남겨놓았는데, 다름 아닌 반려견이었다. 아내가 죽자 깊은 상실감에 빠져듦과 동시에 삶의 의욕마저 잃고 말았던 그는 그녀가 선물로 남겨놓은 강아지로 인해 다시금 살아가야 할 이유를 되찾는 듯싶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분위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존윅이 과거 몸담았던 마피아 조직이 사단을 일으키는 탓이다.

 

존윅이 과거 명성을 떨치던 조직의 에이스였던 사실을 까맣게 모르던 조직원들이 어느 날 그의 차를 빼앗기 위해 집으로 들이닥친다. 집안은 난장판이 되었고, 아내의 마지막 선물인 강아지마저 잔인한 방식으로 죽임을 당하고 만다. 강아지 덕분에 살아갈 용기를 조금씩 되찾아가던 그였건만, 존윅의 핏빛 복수극은 바로 이 지점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니까 앞서 언급한 커뮤니티에 글을 쓴 이는 존윅의 복수극이 반려견 한 마리 때문에 벌어진 일이고, 게다가 '고작'이라는 부사를 활용한 것으로 비춰볼 때 존윅의 대응이 과도했음을 애써 강조하고 싶었음이 틀림없다. 하긴 이를 전혀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개는 우리 곁에서 늘 함께하며 기쁨을 안겨주는 둘도 없는 좋은 친구이지만, 평소 상대를 비하하거나 얕잡을 때면 어김없이 빗대어 사용되는 만큼 이중적인 속성을 지닌 동물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는 반려동물로써의 지위와 역할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선사해줌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건강식품이라는 끔찍한 모습으로 둔갑한 채 식용으로 활용되는 등 우리네의 개를 향한 평소의 이중적인 잣대를 쏙 빼닮았다.

 


그렇다면 존윅에게 있어 죽은 반려견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걸까? 적어도 커뮤니티에 글을 남긴 사람이나 그와 비슷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처럼 고작 개 한 마리라는 개념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까? 왜냐면 사랑하는 아내가 남긴 선물이기에, 그것도 생명체이기에, 모르긴 몰라도 존윅의 반려견은 죽은 아내를 대신할 정도로 소중하고 귀한 존재였을 테니 말이다.

 

아내는 존윅의 삶 거의 전부를 차지하다시피 했다. 여담이지만, 존윅을 연기한 키아누리브스의 현실에서의 삶도 영화에서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아내가 그에게 선물로 남겨놓은 유일한 생명체는 한없이 메말라가던 그의 허한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주기 시작한다. 강아지의 행동 하나하나로부터 아내의 과거 모습을 떠올리게 되며, 그렇게 아내의 빈 자리를 빠르게 채워가던 찰나였다. 아픔을 치유하고 정서적인 교감을 함께 나누었다.

 

이렇듯 감정을 지닌 생명체인 반려동물을 단순히 자산 가치만으로 평가해선 안 될 노릇이다. 하지만 앞서 커뮤니티에 글을 쓴 사람이나 기타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비슷한 우를 범하고 있다. 반려견과 함께한 시간과 그를 통해 나누었을 정서적 교감 따위는 철저히 무시하고 단순히 개라는 동물의 외피만을 바라보는 경향이 크다. 그러다 보니 '고작 개 한 마리 때문에' 라는 표현이 난무한다. 현대인들의 다수는 반려견을 통해 다치고 지친 마음을 다독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람처럼 일일이 조건을 따져가며 대우하지 않고 무조건 주인을 충직하게 따르는 반려견으로부터 위안을 받으려는 사람이 점차 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반려견을 키우며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정서적인 위안은 돈의 가치만으로는 결코 환산할 수 없는 그 이상의 것이다. 물론 이는 개개인마다 주어진 환경이 모두 상이한 까닭에 특정한 형태로 확정지어 말할 수는 없다. 존윅의 사정과 나의 그것이 전혀 다르듯 말이다.


그렇다면 존윅의 거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강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하였으니, 그에겐 바로 자신을 죽인 것이나 매한가지로 다가옴직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동을 두고 고작 개 한 마리 때문이라고 표현하는 건, 타인의 정서적 가치와 감정에 대해 이를 철저히 무시하겠노라는 의미 아니면 과연 무엇이겠는가. 

 

고작 개 한 마리 때문이라니... 이토록 잔인한 표현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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