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의 전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새 날 2017. 10. 21.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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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연예인이 기르던 반려견이 모 유명 한정식 식당 주인을 물어 그로부터 며칠 뒤 패혈증으로 사망케 한 사건을 두고 연관어들이 한때 포털 실검 1위로 떠오르는 등 인터넷 커뮤니티가 하루종일 해당 사건으로 북적거렸다. 정작 유족 측은 가해자 측을 용서하겠노라고 밝혔으나 사건 당사자들보다 오히려 네티즌들이 더 흥분한듯 반려견과 그 주인을 집요하게 성토하고 나선 것이다. 


물론 이번 사건이 빚어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반려견 주인이 개에 목줄을 채우지 않았던 행위로, 가장 아쉬우면서도 안타까운 대목이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이를 기화로 그동안 애견인들과의 사이에 패인 감정의 골이 어느 수준인가를 드러내고 싶었던 까닭인지 그들에게 분노를 일시에 폭발시키고 만다. 평소에도 애견인과 비애견인 사이는 흡사 평행선을 달리듯 늘 아슬아슬하기만 했다. 같은 사안임에도 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천양지차였다. 반려동물 인구가 급격히 늘어날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일부 견주들의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몰상식한 행동으로 인해 모든 애견인들이 도매금으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애초 반려견이 피해자의 정강이를 물었고 그로 인해 사망으로 이어지긴 했으나, 반려견 주인이 SNS를 통해 올린 사과문에서처럼 치료과정의 문제나 2차 감염 등의 또 다른 가능성이 엿보이는 까닭에 정확한 사인을 단정 짓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티즌들은 사망 사고의 빌미가 된 해당 반려견 및 그 주인은 물론, 이 땅의 모든 반려견과 애견인들을 한꺼번에 싸잡아 잠재적인 살인자로 몰아가고 있었다. 특정 사건이 빚어질 때마다 팩트를 외치고 객관성을 강조하던 집단 지성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객관성을 잃은 네티즌들의 이러한 행동은 평소 반려견과 그 주인을 향한 반감의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 이를 가늠케 하고도 남는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그 뿐만이 아니다. 가해자와 피해자 두 집안이 각기 재산도 많고 사회적 지위가 범상치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피해자 측이 가해자 측에 법적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는 언론보도를 두고서도 일부 네티즌들은 사건의 본질보다 향후 법정 다툼에서 누가 어떠한 영향을 미쳐 더 유리한 고지를 밟을 것인지 따위의 가십거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최근 범죄자들이 끔찍한 강력사건을 벌인 뒤 그에 대한 죗값을 온전히 치르기보다 자신의 배경을 활용, 어떡하든 형량을 낮추려는 시도가 사회 곳곳에서 빚어지곤 한다. 가뜩이나 돈으로 안 되는 게 없는 세상이라는 인식이 팽배하거늘, 이제는 죄마저도 부와 사회적 지위를 이용하여 이를 덮으려 하거나 희석시키려는 일들이 공공연하게 일어나다 보니 대중들 역시 사건의 본질보다는 돈의 영향력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입장이다. 씁쓸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사건이 불거진 뒤 당장 목줄을 채우지 않은 애견인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빗발치고 있다. 더불어 소형견 대형견 가릴 것 없이 외출에 나서는 모든 반려견에 강제로 입마개를 채워야 한다는 주장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심지어 사람을 물어 죽게 했으니 그 반려견도 무조건 죽여야 한다는 등의 상당히 섬뜩하면서도 격앙된 주장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뜬금없이 보신탕을 언급하면서 일부러 애견인들의 심사를 뒤틀리게 하려는 듯한 볼썽사나운 모습도 눈에 띈다. 인터넷 커뮤니티는 이른바 개를 혐오하는 이들이 한꺼번에 등장, 어느덧 광기어린 증오와 공격 성향을 드러내놓는 공간으로 변질되고 만다. 



매너를 갖추지 못한 애견인들의 모습도 꼴사납지만, 이렇듯 특정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감춰온 혐오 본능을 드러내놓으면서 이를 자꾸만 부추기는 일부 반려견 혐오주의자들의 과도한 반응도 그다지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 사회엔 애견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사람의 숫자가 그렇지 않은 사람의 그것보다 훨씬 많으리라 짐작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견인 모두가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되는 데는 물론 그럴 만한 사정이 있는 것으로 읽힌다. 배려를 모르고 오로지 자신들만 아는 일부 몰지각한 애견인들이 애견인의 이미지 전체를 갉아먹고 있는 탓이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나쁜 사람만 존재할 뿐이다. 나쁜 개를 만드는 건 결국 사람이다. 반려견으로 인한 무한 책임은 당연히 개의 주인이 짊어져야 할 짐이다. 권리를 마음껏 누리면서도 정작 의무는 등한시하는 애견인들이 최근 부쩍 늘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이러한 혼란을 틈타, 특정 대상을 상대로 혐오와 증오를 퍼붓는 반려견 혐오주의자들의 뒤틀린 인식과 행위 역시 상당히 불편하고 불쾌하기 짝이 없다. 


사람과 반려견이라는 이종 생물의 공존을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 펫티켓이 절실히 요구되는 환경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애견인들 스스로가 조심하고 단속하지 않으면, 이번 사건처럼 그동안 비애견인들이 애견인들을 상대로 차곡차곡 쌓아온 반감과 악감정이 특별한 계기를 통해 일제히 폭발하면서 결국 스스로의 목을 옭아매는 자충수로 작용하기 십상이다. 존중과 배려가 지닌 가치를 다시금 곱씹어 봐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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