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의 전설

애견인들은 어쩌다 '개빠'가 되었나

새 날 2017. 10. 23.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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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연예인이 기르던 반려견이 유명 한정식 사업가를 물어 숨지게 한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반려견 이야기가 연일 화두다. 반려동물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해왔고, 덕분에 생활 공간 곳곳에서 반려견을 흔히 접하게 되다 보니 그만큼 할 이야기가 많아져서일 테다. 그런데 워낙 사안이 중대하게 다가온 탓인지 이번 사건이 불거진 뒤 비애견인들이 애견인을 향해 꺼내든 감정은 놀랍게도 증오에 가까웠다. 


애견인을 비하하는 '개빠' 라는 표현이 곳곳에 등장하였고, 심지어 '개독'이라는 기독교인을 비하할 때 흔히 사용하는 표현과 비교하면서 애견인을 향한 평소의 악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배우 한고은 씨의 "개는 잘못이 없으며, 애견 주인에게 잘잘못을 따져야 한다"는 나름의 소신 있는 표현마저도 이들에게는 삐딱하게 받아들여졌다. 결국 한고은 씨는 해당 글을 SNS에서 삭제하고 사과로 일단락 지었다. 물론 이러한 해프닝으로 인한 후폭풍은 앞으로 그녀에게 어떠한 형태로 발현될지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애견인들은 어쩌다 '개빠'가 된 것이며, 대다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민폐 갑이거나 공공의 적으로 전락하게 된 것일까?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고자 한다. 집 주변을 걷다가 실제로 경험한 일이다. 말티즈로 짐작되는 작은 체구의 흰색 개 한 마리가 반대편에서 나를 향해 쫄래쫄래 걸어오고 있었다. 한 눈에 봐도 목줄은 안 보였다. 중년의 아주머니가 뒤따라오고 있었다. 개와 마주하며 지나치려는 순간, 아주머니는 개 앞에서 "우리 새끼" 하면서 상체를 숙여 마치 어린 자식 어르듯 하고 있었다. 


애견을 향해 인격을 부여하는 일은 보는 사람에 따라 불편할 수도 있겠으나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인 데다가 각기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을 수 있으니 이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딱히 없다. 다만 나 역시 얼마 전까지 반려견을 키워왔던 사람이기에 상대적으로 개를 무서워하지 않는 편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위협적으로 다가올 법한 상황임에도 아주머니는 그런 것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오로지 자신의 개만 보듬으며 관심을 쏟고 있었다.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이날은 최시원의 반려견 '벅시'로 인해 세상이 온통 시끄러웠으며, 개와 애견인을 향한 시선마저 민감해져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아주머니는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으며, 오직 자신의 개에만 관심을 쏟는 아주머니를 보니 속에서 부화가 치밀어오른다. 그런데 이런 식의 막무가내형 애견인이 생각보다 많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으며, 이는 결국 '개빠'라는 혐오성 표현의 빌미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쯤되면 민폐를 끼칠 개연성은 오로지 애견인들에게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예 모르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인터넷 커뮤니티


이보다 앞서 지난 추석 즈음에도 난 비슷한 경험을 했다. 급히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기 위한 요량으로 생활용품 전문 매장을 찾았는데, 반려견을 매장 안으로 데리고 들어온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나마 목줄이라도 채웠으면 덜 불쾌했을 텐데, 애견 주인은 개가 매장 사이를 마구 뛰어다니도록 목줄을 아예 풀어놓은 채 그냥 방치하고 있었다.


더구나 매장 안에는 한 마리의 개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이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각기 개를 한 마리씩 데리고 들어와 번쩍 안더니 주변에 사람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저들끼리 개와 관련한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이를 두고 '개판'이라고 했던가. 한때 반려동물인이었던 나조차도 몹시 불쾌한 순간이었다. 


반려동물인들, 특히 애견인들이 흔히 착각하는 사실 한 가지가 있다. 자신이 애견을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 만큼 모든 사람들 역시 자신과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정상적인 인지 능력을 갖춘 사람이 공공장소에서 다른 사람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이렇듯 안하무인격으로 개를 풀어놓고 주변 사람 곁에서 이를 안은 채 시시덕거릴 수는 없을 것 같다. "우리집 개는 안 물어요"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봐야 할 것 같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불편과 불쾌감을 호소해왔으나 여전히 다수의 애견인들에게 있어 목줄 없는 산책은 기본인 데다가 배설물 방치는 옵션이었다. 산책로 곳곳에서 이들 안하무인 애견인들이 출몰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눈살을 절로 찌푸리게 된다. 물론 이들의 행위가 모든 애견인을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일부 애견인들의 이기적인 행위가 유독 도드라져 보이니, 안타깝게도 이는 어느새 모든 애견인들의 대표성을 띠어가기 마련일 테다. 


뿐만 아니다. 책임감 없는 일부 반려동물인들이 자신이 키우던 동물을 유기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농림축산식품부의 '2016년 동물의 등록 유기동물 관리 등 동물보호 복지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구조된 유기동물은 89,732마리에 이르며, 전년 대비 10%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집 개는 물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이기적인 태도의 애견인뿐 아니라 키우던 반려동물을 이렇듯 아무렇지 않게 내다버리는 무책임한 애견인들이 늘어날수록 그들을 향한 반감은 더욱 거세어질 테고 '개빠'라는 일종의 혐오와 증오 섞인 표현은 여전히 횡행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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