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치란 말야

블록체인과 인공지능 기술의 가치 상충

새 날 2018. 1. 14. 21:12
반응형

가상화폐 이슈가 연일 화두다. 거래소 광풍 때문이다.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묻지마 베팅 결과 가상화폐의 가치가 크게 부풀려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에 뛰어들면서 '기술이냐 사기냐' 혹은 '투자냐 투기냐'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유시민 작가가 비트코인 열풍을 미친 짓으로 규정하면서 강도 높게 이를 비판한 데 대해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가 블록체인이 어떻게 전 세계 경제시스템에 적용되고 스스로 진화할지 잘 모르는 것 같다며 이를 폄훼하는 현상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나선 현상은 신기술의 탄생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혼돈, 즉 혼란스러움으로 대변되는 대표적인 장면이 아닐까 싶다. 


다만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가 블록체인이라는 신기술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과 이 플랫폼이 앞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어떤 방식으로든 바꿔놓게 될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결코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임이 분명하다. 4차산업혁명에서 흔히 언급되는 기술 두 가지를 꼽으라면 우리는 인공지능(AI)과 블록체인을 쉽게 떠올리게 된다. 실제로 이 두 가지 기술은 연일 이슈다. 


블록체인 기술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가상화폐 이슈로 이미 떠들썩해져 대중들의 뇌리에 깊숙이 각인된 상태이고, 인공지능 기술은 조용히, 그러나 매우 치열하게 물밑에서 경쟁이 펼쳐지며 영역을 확장, 우리의 생활 속으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지난 12일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막을 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18에서는 인공지능(AI) 플랫폼 선점 경쟁이 단연 화두였다. 구글을 비롯한 굴지의 정보기술기업들의 인공지능 생태계 확장을 노린 플랫폼 주도권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기 때문이다.



발레리안은 인공지능 비서 '알렉스'를 부른 뒤 뮐 행성에 대한 정보를 요구한다. 그러자 투명한 디스플레이 창에 뮐에 관한 정보가 주르륵 펼쳐지면서 알렉스의 음성을 기반으로 한 리포트가 곁들여진다. 영화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 속 인공지능 플랫폼의 활용 장면이다. 발레리안은 사소하든 중요하든 관계 없이 알고 싶은 정보가 있을 때마다 알렉스를 불렀고, 인공지능 비서인 이 알렉스는 그럴 때마다 아주 친절히 발레리안이 요구하는 데이터 묶음을 풀어놓는다. 이렇듯 인공지능 플랫폼이 우리의 생활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접목되는 모습은 스크린을 통해 흔히 접할 수 있다. 


다만 많고 많은 작품 가운데 굳이 뤽 베송 감독의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를 예로 든 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현재 인공지능 비서 시장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기업은 아마존이다. 아울러 인공지능 플랫폼의 매개 역할은 스피커가 가장 뚜렷하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작년 3분기, 세계에서 출시된 인공지능 스피커 740만 대 가운데 500만 대에 알렉사가 탑재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190만 대를 판매한 2위 구글의 3배에 육박하는 수치다. 물론 스피커의 판매 대수도 의미 있는 데이터이지만 그보다는 인공지능 플랫폼으로서 더욱 핵심적인 가늠자 역할을 하게 될 스피커의 연동 기능 개수가 훨씬 중요하게 다가온다. 아마존의 인공지능 플랫폼인 알렉사는 최근 이 연동 기능이 2만5천 개를 넘어서며 급속도로 영역을 확장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동 기능이라 함은 앞서 사례로 든 영화에서 발레리안이 비서에게 요구한 명령과 관련하여, 그에 따른 반응과 처리 능력을 의미한다. 


인공지능 비서가 지닌 능력치의 가장 핵심적인 기준이 바로 연동 기능인 셈이다. 그런데 이 기능을 축적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요구된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작년 7월 기준으로 알렉사의 기능은 1만5천69개였으며, 구글 어시스턴트는 378개, 마이크로소프트 코타나는 65개에 불과했다. 정보검색 위주의 단순한 비서 기능으로부터 보다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는 작금의 알렉스에 이르기까지는 무려 7년이란 시간이 소요된 점을 고려한다면 격차가 현격하게 벌어진 여타의 기업들이 당장 아마존을 뛰어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아마존의 인공지능 플랫폼 알렉사는 현존하는 인공지능 비서 가운데 가장 뛰어난 능력을 지녔으며, 시간이 더 흐르면 영화 속에서 볼 수 있었던 장면들이 현실에서도 구현될 것으로 점쳐진다. 발레리안이 알렉스라고 부르듯이 조만간 그와 비슷한 이름인 '알렉사'를 애타게 찾을 날이 곧 도래하지 않을까 싶다. 굳이 뤽 베송 감독의 영화를 사례로 들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이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미래를 보다 풍요롭게 만들고 편리하게 해줄 인공지능과 블록체인 기술은 서로 상충되는 측면이 엿보인다. 인공지능 플랫폼은 각종 디바이스나 응용프로그램 등의 다양한 사용자와의 접점을 통해 전달되는 요청이나 명령을 이해하고 그에 따르는 적합한 데이터를 보내주는 역할의 핵이다. 이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축적 가능한 포털 등 일부 정보기술기업만이 운용 가능하다는 의미가 된다. 축적된 데이터를 처리하고 이를 다루는 기술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사용자는 이전보다 편리한 기술을 사용하는 대가로 더 많은 데이터를 자발적으로 해당 기업에 제공하게 된다. 기업은 이러한 사용자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더욱 편리하면서도 요긴한 서비스를 제공, 서로를 촘촘하게 엮어 인위적으로 강력한 인력을 형성한다. 인공지능 플랫폼은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 전반을 아우르는 까닭에 지금보다 훨씬 많은 데이터 그리고 개인정보를 다루게 되리란 건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다. 생활의 편리함을 얻은 데 대한 반대급부로 우리는 수많은 데이터와 개인정보를 또 다시 특정 세력에게 몰아주는 악순환을 지속하게 되는 셈이다. 해당 기술이 권력의 집중화를 더욱 가속화시킬 것으로 전망되는 지점이다.


ⓒ연합뉴스


반면 블록체인 기술은 앞서 언급한 인공지능 플랫폼에서 요구되는 것과 같은 중앙 통제 방식이 아닌 분산 관리 및 투명한 정보 공유를 목표로 한다. 중앙에 집중됐던 권력이 비로소 평범한 일반 사용자에게 분산된다는 의미다. 블록체인이란 거래 정보를 거대 정보기술기업이 독점하여 저장 관리하지 않고 거래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체인처럼 연결돼 동일하게 보유하는 기술로써, 특정 정보의 독점 없이 무수히 많은 사용자들과 P2P로 서로 얽혀 있는 까닭에 위변조를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정보 일부가 손상되더라도 복구가 쉽다는 점이 장점이다. 


블록체인 기술은 중앙 집권화되어 있는 사회 시스템 곳곳의 높은 장벽을 급격히 허물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금융 영역 시스템이 그의 표적이 되고 있다. 은행이나 신용카드 회사 같은 중앙집중적인 조직 없이 사용자들끼리 가치를 주고 받을 수 있게 하는 기술이 바로 블록체인이기 때문이다. 가상화폐의 대장격인 비트코인은 블록체인 기술을 금융 분야에 적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만약 금융 시스템을 중앙 집권화된 금융기관의 중개 없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여 사용자들끼리 관리하고 금융 거래 또한 직접 이뤄지게 된다면 그동안 데이터들을 중앙으로 집중시키고 이를 통해 획득한 권력을 이용, 중개 역할로 취했던 막대한 이득이 사용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게 된다는 가정이 성립된다. 블록체인 기술이 반영된 비트코인이 인터넷 탄생 이후 가장 혁명적인 기술로 떠오르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인공지능 플랫폼은 데이터의 중앙집중이 이뤄져야 현실적으로 가능한 데다가 아마존 알렉사의 사례처럼 그래야 비로소 더욱 정교해지는 기술이기도 하다. 인터넷이 탄생한 이래 정보의 집중으로 특정 세력에게 권력이 축적되고 갈수록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가운데 인공지능은 이를 더욱 공고히 하는 기술로 받아들여진다. 사용자들은 편리함을 얻되 그의 반대급부로 데이터와 개인정보를 중앙 집권화된 특정 세력에게 또 다시 몰아주어야 하는 일종의 악순환인 셈이다. 


그와는 반대로 블록체인은 단순히 생활의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데이터의 분산을 통해 한 곳에 집중됐던 권력을 일반인들에게 돌려주자는, 진정한 평등의 가치가 함의된 철학을 담고 있다. 매우 혁명적인 기술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이렇듯 이 세상을 편리하고 풍요롭게 하자는 취지는 같지만, 각기 기술에 담긴 철학과 가치는 상충된다. 이 두 개의 서로 다른 가치를 어떻게 조화롭게 현실에 반영하느냐가 4차산업혁명 성공의 관건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아울러 현재진행형인 4차산업혁명이 과연 어떠한 가치를 지향하며 어느 방향으로 진행될지 사뭇 기대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