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절차적으로 아쉬웠던 한 앵커의 쓸쓸한 퇴장

새 날 2017. 12. 10. 18:41
반응형

MBC 간판 뉴스 프로그램인 '뉴스데스크'의 앵커를 둘러싼 뒷이야기가 무성하다. 해당 사연의 주인공인 배현진 아나운서는 그동안 대중들에게 배신의 아이콘으로 각인돼온 인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2012년 MBC 노조가 총파업을 벌이고 있던 상황에서 돌연 노조를 탈퇴하더니 "길고도 짧은 시간 동안 진실과 사실 사이 촘촘한 경계를 오가며 무척이나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 적어도 뉴스 앵커로서 시청자 이외의 그 어떤 대상에도 일방적으로 끌려다니지 않겠다." 라는 발언을 남긴 뒤 파업 중단과 동시에 업무에 복귀하자마자 ‘뉴스데스크’ 앵커로 출연하면서 논란을 불러일으킨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배현진 씨는 2008년 MBC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해 2010년 월드컵 특집 주말 뉴스데스크를 통해 앵커로 데뷔, 이후 무려 7년 동안 줄곧 같은 자리를 지켜왔다. 하지만 최근 최승호 MBC 신임 사장이 선임된 뒤 뉴스데스크에서 배현진 앵커의 모습은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그동안 MBC 웹사이트의 회사 소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던 그녀의 모습도 9일자로 사라졌다. MBC가 새로운 사장 체제를 맞이하여 배현진 앵커의 흔적 지우기에 본격 드라이브를 건 것으로 읽히는 상황이다. 이로써 배현진 아나운서가 꿈꿔왔던 국내 최장수 앵커 기록도 결국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MBC는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가 시도해온 방송 장악 음모의 대표적인 희생양이다. 정권은 이들에게 재갈을 물리고 권력의 입맛에 맞는 보도와 방송에 집착해왔다. 이미지 실추는 삽시간이었다. '엠빙신'은 당시 대중들로부터 얻은 MBC의 불명예스러운 별칭이다. 그의 선두에는 MBC 간판 뉴스 프로그램인 '뉴스데스크'가 있었으며, 이러한 움직임에 반기를 든 동료 아나운서들의 잇단 수난과는 정반대로 배현진 아나운서는 그들을 배신한 채 권력의 나팔수 역할을 자처하면서 말 그대로 승승장구해왔다. 그동안 보여온 그녀의 행적은 그녀를 왜 배신의 아이콘이라 부르는지 톡톡히 입증하고도 남는다. 


지난 대통령선거 당시 MBC는 배현진 앵커의 입을 빌려 문재인 후보를 악의적으로 공격하는 리포트를 여러 차례 시도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최승호 사장은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진심을 실어 공격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당시의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배현진 아나운서에게 화장실 수도꼭지를 잠그라고 조언했다가 비제작부서로 발령 받게 된 모 기자 사이의 일화는 진영이나 이념 논리를 떠나 그녀의 사람 됨됨이가 어느 수준인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MBC 방송화면 캡처


지난 정권에서 망가질 대로 망가진 MBC의 간판 뉴스 프로그램을 배현진 씨가 그동안 줄곧 꿰차고 앉아 있었으니 대중들에게 있어 그녀는 어느덧 MBC와 한 몸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파업의 진통 끝에 최근 MBC가 신임 사장을 맞이하면서 마침내 방송 정상화의 발걸음 힘차게 내딛기 시작헸다. 대중들의 관심은 자연스레 배현진 씨에게로 일제히 쏠렸다. 


이 즈음 배현진 씨를 둘러싼 루머도 함께 떠돌았다. 한 종편 방송사로 적을 옮긴다는 얘기였다. 그럴 듯한 루머에 모두들 '그러면 그렇지' 하는 반응을 보였으나 얼마 후 사실 무근임이 밝혀지면서 해프닝으로 종결됐다. 하지만 지난 8일부로 그녀의 모습은 더 이상 뉴스데스크를 통해 볼 수 없게 됐다. 뉴스데스크라는 프로그램의 명칭도 바뀌었다. MBC가 원래의 자리로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였다. 


그러나 너무도 급작스러운 움직임에 조금은 당황스러운 게 사실이다. 배현진 씨는 7년 동안 해당 프로그램을 운영해온 앵커이기에 그만둘 때 그만두더라도 적어도 시청자에게 만큼은 마지막 인사를 건넬 수 있도록 배려해주어야 했던 게 아닐까 싶다. 이는 지난해 최양락 씨가 14년 동안 진행해온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석연찮은 이유로 하차하게 되면서 이러한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청취자들에게 마지막 인사도 건네지 못했던 황당한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대통령의 성대 모사와 정치인들의 시사풍자가 담긴 토론 및 콩트가 집권세력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는 이유로 해당 프로그램이 곧 폐지될 것이라는 소문이 당시 파다했었는데. 결국 실화가 되고 만 사례다. 



뉴스 등 프로그램 운영자를 교체하는 건 전적으로 해당 방송사의 몫이다. 어떤 사유가 됐든 말이다. 다만 방송인 최양락 씨나 배현진 씨의 사례에서 보듯 절차가 매끄럽지 못하게 다가오는 건 결과적으로 볼 때 청취자나 시청자를 무시하는 처사로 와 닿는다. 당장 일각에서는 배현진 씨의 앵커 하차 건을 두고 마녀사냥이니 언론인의 인권, 심지어 과거 정권이 권력의 유지 수단으로 활용해온 블랙리스트 적폐라는 용어까지 들먹이고 있다. 물론 단순히 이들의 하소연과 비난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배현진 씨는 MBC 소속 직원이기에 이의 임면과 인사의 최종 결정 권한은 사장에게 있다. 배현진 앵커의 뉴스데스크 하차 또한 이러한 류의 인사권 행사 가운데 하나였을 테다. 이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현진 씨의 과거 행적이 못마땅하다는 사실과 인사 절차 그리고 시청자에 대한 배려는 엄격하게 분리되어 고려되고 결정되어야 함이 옳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배현진 씨의 이번 뉴스데스크 하차는 절차적으로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