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평창 흔들기, 훼손되는 스포츠 정신과 올림픽 이념

새 날 2017. 12. 9.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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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NBC뉴스는 지난 8일 미국인들이 동계올림픽이 개최되는 '평창'을 북한의 수도 '평양'과 헷갈려 한다며, 내년 2월 한국에서 개최되는 평창동계올림픽을 찾을 세계의 관광객들은 항공편에 탑승하기 전 목적지가 어딘지 다시 한 번 잘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보다 진보된 미사일을 개발, 호시탐탐 미 대륙을 노리고 있는 북한을 미국인들이 평소 얼마나 두려워하며, 혐오하는가를 객관적으로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반드시 이러한 이유 때문 만은 아니겠지만, 최근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미국의 불편한 심기가 이역만리 떨어진 이곳까지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는 모양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한국에서 개최되는 평창동계올림픽에 자국의 고위급 대표단 파견을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불과 일주일 만에 미국 행정부가 미국 선수단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여부를 두고 모호한 메시지를 던지는 바람에 시기적으로 러시아의 올림픽 출전 금지 조치와 맞물리면서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이랬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 대사가 지난 6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선수들의 평창올림픽 참가가 기정사실이냐는 질문에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며 올림픽 참가에 대해 들은 게 없으나, 이는 우리가 어떻게 미국인들을 보호할지에 관한 사안이다”라고 답한 것이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 15형의 발사로 미국 선수단의 안전이 우려된다는 취지의 발언인 셈이다. 



이와 관련하여 샌더스 미 백악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을 통해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헤일리 대사의 언급은 정확한 의미가 아니다. 아직 공식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올림픽 개막이 가까워지면 결정하게 될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판단하게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니까 북한의 ICBM 위협으로 미국 선수단의 안전이 보장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올림픽 참가 여부를 아직 결정 짓지 못했으며, 개막이 임박하게 되면 트럼프가 참석 여부를 최종 판단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동계 스포츠의 세계적 스타가 즐비한 러시아의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이 금지되면서 사실상 평창올림픽의 흥행이 물 건너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불거진 상황에서 그나마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선수 개인 자격 출전 선택으로 한숨 돌리는 듯싶었는데, 이제는 설상가상으로 미국마저도 참가 여부가 불투명해졌으니 우리에게는 최대의 난관과 맞닥뜨리게 된 셈이다. 


ⓒ한국일보


하지만 샌더슨 대변인은 자신의 브리핑이 논란으로 확산되자 "미국은 한국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에 참가하기를 고대하고 있다"는 트윗글을 남겼다. 노어트 미 국무부 대변인 역시 정례브리핑을 통해 “안전하고 성공적인 동계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한 한국 정부의 헌신을 확신하며, 우리는 그 모든 노력을 지지한다. 우리는 한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의 일원이 되기를 고대한다”며 진화에 나섰다. 


물론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아직까지 평창동계올림픽 참석 여부에 대해 확실한 의사를 전달한 바 없으나 미국 선수단의 올림픽 불참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게 일반적인 중론이다. 미국의 올림픽 불참은 단순한 스포츠 행사를 넘어 한미 동맹에도 심각한 균열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실리를 앞세우는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이러한 결과를 바랄 리는 천부당만부당하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됐건 다른 사안도 아닌 전 세계 스포츠 제전인 올림픽을 일종의 정치적 볼모로 삼고 나선 미국의 태도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 


근대 올림픽은 1894년 쿠베르탱에 의해 창시됐으며, 스포츠를 통해 정치적 격변 및 종교, 인종적 차별을 뛰어넘어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최되고 있다. “올림픽 대회의 의의는 승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다” 이는 올림픽 강령에 깃든 올림픽의 핵심 이상이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그것도 정치적 목적으로 올림픽 참가를 볼모 삼아 이를 흔들고 나선 건 숭고한 올림픽 정신과 이념을 오염시키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이는 구시대의 유물이 된 냉전시절 정치군사적 경쟁의 장으로 활용되곤 했던 볼썽사나운 과거의 흔적을 떠올리게 한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당시엔 미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이, 다음 올림픽인 1984년 LA올림픽엔 소련을 위시한 동구권 국가들이 단체로 불참한 아픈 기억이 있다. 



비단 올림픽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면서 열광하거나 가슴 뭉클한 감동을 누릴 수 있는 건 공정한 규칙 속에서 갖은 역경과 한계를 극복한 인간 본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경, 이념, 인종, 정치, 종교 등을 초월, 온 인류가 오롯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 자리를 함께하고 아름다운 경쟁을 펼치는 스포츠 정신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트럼프는 최근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선언하는 무리수를 두면서 아랍 및 이슬람권은 물론, 전 세계를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더불어 다분히 다양한 포석이 깔린 것으로 해석되는 평창 흔들기에도 나선 모양새다. 정치적 혹은 여타의 목적을 위해 온 인류를 하나로 묶는 스포츠 정신의 근간을 훼손시키고, 올림픽의 숭고한 이념마저 오염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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