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더 헌트> 진실 외면한 마녀사냥

새 날 2013. 1. 23.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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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스(매즈 미켈슨 분), 그의 처절한 눈빛 속에 진실이 있다.  한 사람에게 찍는 '낙인'과 '마녀사냥'이 그와 그 주변인들에게 얼마나 가혹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영화다.  굳이 한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얘기일까.  그렇지 않다.  진실을 외면한 낙인은 개인 뿐 아니라 특정 집단이 그 대상이 되기도 한다.  루카스에게 우연히 씌워진 단 한 번의 낙인, 진실 따위는 알려고도, 알고 싶지도, 알 필요도 없다.  오로지 그에게 씌워진 '낙인'만이 진실이 되어, 갑자기 돌변한 주변인들의 그를 향한 집단 이성 마비 증상과 광기어린 행동만이 있을 뿐...


조그만 마을에서 유치원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는 루카스, 주변엔 친구들도 많고, 유치원에서의 생활도 그럭저럭이다.  비록 그는 이혼하여 전처, 아들과는 떨어져 살고 있는 형편이지만, 곧 아들과 합칠 계획이며 사랑하는 사람도 새로이 만나고 있는 중이다.  그의 유치원엔 친구 테오(토머스 보 라센 분)의 딸 클라라도 재원 중이다.  루카스는 아빠 대신 가끔 클라라를 집까지 데려다 주거나 그의 애완견 패니와 놀게도 해 주는, 다정다감한 아빠친구이자 동네 아저씨다.  클라라는 그런 루카스 아저씨를 꽤나 좋아하는 눈치이다.  그런 루카스 아저씨를 위해 어느날 작은 선물을 준비했지만, 루카스가 이를 받아주지 않자 획 토라져 버린 클라라, 유치원 원장선생님에게 루카스가 싫다며, 그에게 성적 학대를 받았다는 취지의 거짓말을 한다...

 

 

클라라, 그녀와 루카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거짓말을 할 때면 얼굴 한쪽이 실룩거리는 현상이다.  클라라가 원장 선생님이나 전문 성 상담가 앞에서 루카스와 관련된 얘기를 할 때면 왼쪽 입가가 연신 실룩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표정이 어찌나 아이 답지 않게 괴기스럽고 천연덕스럽게 느껴지던지, 솔직히 한 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얄미웠다.  물론 이 아인 자신의 거짓말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전혀 짐작조차도 못 한 채 자신의 성의가 배신당했다는 감정 하나만으로 루카스를 지옥불에 밀어 넣고 있는 거였다.

 

 

최초 클라라로부터 전후 사정을 들었던 유치원 원장 선생님, 자신의 신분상 어쩔 수 없었던 측면이 있지만, 조금 더 신중한 판단과 행동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아이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그녀만의 굳건한 믿음을 신봉했던 탓이다.  그녀에 의해 루카스에 대한 낙인은 마을 전체로 퍼져 나가며, 확대 재생산되어 루카스를 대상으로 한 '마녀사냥'이 극대화에 이르게 된다.

 

 

주변에 친구들도 많고, 아이들을 좋아하며, 마냥 사람 좋기만 한 루카스, 원장선생님에게서 클라라와 자신의 얘기를 전해 듣고 그에 따른 조치를 통보받았지만, 자신의 결백에 대해 강하게 어필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 일 따위 절대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으리란 점, 지극히 당연한 일일 뿐 아니라 자신을 알고 있는 모든 이들도 그렇게 믿어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단 한 번의 낙인은 졸지에 그를 파렴치한으로 만들어 버렸고, 세상은 하루아침에 엉망이 되어버렸다.  이후 온 몸으로 이를 감내해내는 그를 보며 너무도 안타깝고 안쓰러움 때문에 몹시도 불편함을 느껴야 했다.

 

 

조그만 여자아이의 거짓말 하나로 인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 미쳐 돌아간다.  이런 일이 과연 영화 속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인 걸까.  아니 그렇지 않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함을 견딜 수 없었으리라.  마치 내가 주인공이라도 된 양 감정 동화 내지 이입이 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우리 사회 내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으리란 개연성 때문이다.

진실이 외면된 낙인은 이성 따위와는 거리가 먼 얘기이기에 정말 무서운 거다.  그렇게나 친했던 친구들도 모두 등을 돌리고 심지어는 루카스에게 폭력마저 서슴지 않는다.  뿐만 아니다.  의심은 또 다른 의심을 낳으며 계속 파장을 불러 오게 되는 법, 결국 피붙이 외 가장 가까운 사람들마저도 그를 의심하며 곁을 떠나고 만다.  물론 모든 이들이 그런 건 아니라는 점에서 일말의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영화 속에서도 그의 편이 되어 준 친구가 있다.  친구 브룬(라르스 란데 분)은 그를 믿고, 그와 함께 고통을 감내하며, 끝까지 그를 도와준다.

내게 루카스와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된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집단 광기 앞에서는 나라고 뾰족한 수가 없을 듯하여 무서운 거다.  우리 사회는 개인 뿐 아니라 집단으로 편 가르기가 횡행하고 있으며, 정치적 이해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낙인'을 찍는 개인과 집단이 여전히 존재한다. 

진실을 외면한 마녀사냥은 또 다른 의혹을 낳으며 점점 확대 재생산되어 루카스를 정조준 해 왔고, 모든 의혹이 해소된 지금도 여전히 그를 노리고 있듯, 우리 모두가 제2, 제3의 루카스가 되지 말라는 법 또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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