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베를린> 하정우의 1인 액션 활극

새 날 2013. 1. 3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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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내내 영화 '아저씨'가 떠오르는 거다. 사실 전혀 관련이 없을 듯한 내용과 장르인데도 말이다.

출연한 배우들의 면면을 봐도 그렇고, 해외 올 로케이션이란 스케일 측면을 놓고 보더라도 분명 기대할 만 한 요소가 많았던 영화임엔 틀림 없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 본 결과 그만큼 아쉬움 또한 크게 와 닿는다. 솔직히 뭐라 표현하기 참 거시기하다. 스토리가 탄탄하여 자연스레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의 강한 흡인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청난 볼거리를 제공해 주는 것도 아닌, 결론적으로 이도 저도 아닌 어설픈 장르의 영화가 되어버린 느낌이라 아쉬움이 더 크다.

 

빈약하기만 한 스토리에 무언가 거창한 것을 억지로 만들어 자꾸 우겨 넣으려 한 느낌을 받다 보니, 화면 구성은 복잡해지고 번잡스럽기조차 하다. 아울러 초반의 혼란스러우며 지루한 분위기를 꽤나 오랜 시간 버텨 나간 것도 영 별로다. 물론 분위기를 점차 고조시켜 나가 막판에 확 끌어올리려는 의도란 거 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도 실패다. 때문에 초반의 지루함이 더욱 아쉬운 거며, 여기에서 이미 진이 다 빠져 버려 영화의 완성도를 대충 짐작케 했던 거다. 배우들의 연기력에도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다. 하정우와 류승범 정도만 극 분위기에 비슷하게 녹아든 듯하고, 나머지 배우들의 겉도는 느낌 때문에 영화 속으로 깊숙이 몰입하는데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 구조는 단순하다. 불법무기를 거래하던 곳에서 북한의 표중성(하정우 분)이란 존재를 알게 된 국정원의 조직원 정진수(한석규 분), 그는 표중성의 뒤에 엄청난 국제적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표중성과 그의 아내 연정희(전지현 분)는 평양 보위부에서 파견된 동명수(류승범 분)의 음모와 배신에 말려들어 쫓기는 신세가 되는데...

 

 

온전히 하정우 그를 위해 탄생한 영화인 듯싶다. 그의 온몸을 불사르는 격렬한 액션 씬만이 눈에 들어 온다. 물론 그의 차가운 이미지와는 달리 아내 연정희에 대한 연민은 애틋하기만 하다. 하정우 그는 겉은 차갑고 단단하지만 속은 한없이 따스한, 전형적 멋진 남자로 재탄생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기 없이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채 투혼을 살려 펼친 그의 열연, 이제 본격 연기파 배우의 반열에 올라도 될 듯한 강력한 포스를 풍겨 온다.

 

 

한석규, 간만에 보는 얼굴이라 무척이나 반가웠다. 사실 한석규 그가 출연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영화의 중량감은 달리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의 외모는 세월의 흐름에 비해 별로 변한 게 없어 보이지만, 몸은 확실히 둔해졌다. 물론 캐릭터의 이미지에 맞춘 연출일 수 있다. 어쨌든 예전 총을 들었을 때의 날렵함은 온 데 간 데 없고, 이제 총 든 그의 자세에선 왠지 둔탁함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 거다. 차가운 하정우와의 썰렁한 대화가 오고 갈 땐 이곳 저곳에서 가끔 웃음소리가 새 나오기도 하더라. 이 영화 속에서의 웃음코드는 아마도 그가 유일할 듯...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혈한 동명수, 자신의 영달을 위해선 동료에 대한 배신은 기본이며, 심지어는 자신의 아버지마저 희생양으로 삼으려 하는, 매우 독한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한마디로 '배신의 화신'인 셈이다. 동명수는 악랄함과 악한 인물의 전형적인 캐릭터로서, 이 영화 속에서 악의 구도를 담당하고 있으며, 류승범은 나름 이를 잘 소화해 낸 느낌이다.

 

 

그녀의 연기는 여전히 무색무취인 듯... 그녀가 맡은 인물 연정희의 역이 감정을 최대한 배제시켜야 할 캐릭터이긴 하지만, 너무 억제한 걸까?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연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심지어는 분명 슬퍼해야 할 장면 같은데, 이런 장면에서조차 별 감흥이 전해져 오지 않는다.

 

 

이경영씨는 불미스런 사건 이후 스크린에서는 처음 접한다. 머리색을 부러 염색한 줄 알았더니 원래 그런가 보다. 발음이 부정확하여 답답함을 느껴야 했다. 과거 그의 연기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지 않아 절대 비교는 어렵지만, 이 영화에서의 리학수 캐릭터로서는 영 별로인 듯싶다. 극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요소라 생각된다.

 

 

요즘 까메오 식으로 자주 출연하고 있는 명계남씨다. 이 영화에서도 류승범의 아버지로 잠깐 출연하지만, 강렬함을 던져준다.

중간에 잠깐 등장하는 하정우와 전지현의 건물 액션 씬, 물론 CG와의 절묘한 결합으로 이뤄낸 성과물이긴 하겠지만, 어쨌든 이제 우리의 액션도 제법 세련됨이 묻어 나온다.

출중한 배우들이 총 출동한 호화 캐스팅과 거대 스케일, 그리고 훌륭한 액션이 가미되었다 하더라도 이를 엇박자 없이 얼마나 절묘하게 잘 버무리느냐에 따라 영화의 완성도는 크게 달라질 듯하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더니 딱인 듯싶다. 영화 '아저씨'에서의 원빈 마냥 오로지 하정우란 인물의 1인 액션 활극을 보는 느낌이 지배적이었다면 과장인 걸까. 영화 끝자락에 와선 약간의 반전 비슷한 거리를 만들어 주나 싶어 무언가 기대를 걸어보려던 차에 영화는 막을 내린다. 베를린의 후속 작품이라도 암시하는 걸까? 하지만 후속작을 기대하려면 전작의 흥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게 당면한 전제 조건이다. 과연 이 영화는 그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글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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