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영원히 고통 받는 삶 '하루'

새 날 2017. 6. 16.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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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분쟁 지역을 찾아다니면서 정치적 이념이나 종교적 사상 등에 구애 받지 않고 의술 활동을 펼쳐온 준영(김명민)은 덕분에 높은 명망을 얻고 있는 의사다. 귀국길에 오른 그는 딸 은정(조은형)의 생일에 맞춰 약속 장소를 정하고 공항을 벗어나자마자 그곳으로 향한다. 그런데 해당 장소로 이동하던 도중 준영은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하게 되고, 차를 세워 부상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등 사고 수습을 적극적으로 돕기 위해 나선다. 덕분에 딸 아이와의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하게 된 준영, 부리나케 휴대폰으로 연락을 취해보지만, 웬 낯선 남성이 전화를 받는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니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던 목소리의 주인공은 자신이 방금 목격하고 현장에서 도왔던 교통사고와 관련하여 이를 직접 진두 지휘하며 수습 중이던 구조요원이었으며, 길을 건너다 사고 차량에 희생된 희생자는 다름아닌 그의 딸 은정이었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상황과 맞닥뜨리게 된 그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고 만다. 



충격을 받은 준영이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방황하며 혼란스러워하던 순간, 정신을 문득 차리고 보니 어떤 영문인지 몰라도 그는 귀국길의 상황으로 다시 되돌아와 있었다. 이때부터 준영은 딸이 죽는 그 순간까지 지옥 같은 시간을 무한 반복하게 되는데... 


준영은 반복되는 시간의 틀 안에서 은정이를 살리기 위해 갖은 방법을 총동원한다. 아빠로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좋았다. 구체적으로는 약속 장소를 바꾸거나 시간을 앞당기는 등 어떡하든 사건의 흐름에 개입하여 예고된 은정이의 교통사고를 막으려 시도한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번번이 실패로 끝나고 만다. 계속해서 딸 아이의 죽음을 목도해야 하는 그에겐 하루 하루가 끔찍한 지옥과 진배없다. 



그러던 도중 준영은 은정이를 숨지게 했던 교통사고의 또 다른 희생자 남편인 민철(변요한)에게도 준영과 마찬가지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내 미경(신혜선)이 숨지기까지의 시간이 무한 반복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두 사람은 딸과 아내의 죽음을 막기 위해 강도 높은 협업 플레이를 펼치는데...



준영의 딸 은정과 민철 아내 미경의 죽음이 단순히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우연히 일어난 교통사고의 희생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자신들에게만 무한 반복되는 하루와 어떤 방법으로도 이를 막을 수 없는 끔찍한 교통사고 사이에는 모종의 인과관계가 있을 것이라 직감한 것이다. 준영과 민철의 반복되는 하루와 그 속에서 겪게 되는 지옥 같은 경험은 전혀 연관성이 없을 것 같던 그들 두 사람의 삶이 특정 사건과 인물을 통해 서로 맞닿아 있음을 깨닫게 한다.



준영과 민철의 몸을 사리지 않은 투혼에도 불구하고 매번 반복되는 특정 시간대의 삶 속에서 그들의 딸과 아내는 교통사고에 의해 고통스럽게 희생되어야 했고,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번번이 사고를 막지 못해 딸과 아내가 참혹하게 죽어가던 현장을 직접 바라 봐야만 하는 그들의 고통 또한 이루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하루'라는 시간의 틀 안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게 된 그들의 삶은, 시쳇말로 '영원히 고통 받는 삶' 그 자체 아닐까 싶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들에게 이토록 가혹한 형벌이 내려진 것일까?



하루 하루의 삶, 즉 일상의 소중함을 이보다 더 극적으로 묘사할 수 있을까? 작품 속 '하루'의 의미는 다분히 중의적이다.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일상의 소중함 뿐 아니라 죗값에 대한 참회 그리고 화해와 용서, 서로의 삶을 이어가게 해주는 끈의 역할까지, 이 모두를 '하루'라는 용어 안에 녹였다. 짜임새 있는 스토리와 독특한 극의 전개, 아울러 김명민과 변요한 등 몸을 사리지 않는 배우들의 열연이 멋지게 어우러져 개성 강한 작품으로 탄생한 듯싶다. 



감독  조선호


* 이미지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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