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시선을 강탈하는 강렬한 액션 '악녀'

새 날 2017. 6. 11.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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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에서 태어나고 자란 숙희(김옥빈)는 아버지를 일찍 여읜 뒤 어릴 적부터 킬러로 단련되고 길러진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다. 복수를 위해 범죄 조직원의 아지트를 그녀 혼자서 급습, 수십 명의 적들에게 자신의 필살기를 휘두르며 일거에 쓸어버리고선 유유히 경찰에 붙잡히는데...


그녀의 놀라운 살인 능력을 간파한 국가 비밀 조직은 숙희를 영입하기로 모의하고 그녀에게 그와 관련한 조건을 제시한다. 사랑하는 이의 아이를 임신 중이던 숙희는 10년 동안 해당 조직을 위해 일해주면, 이후로는 평범한 일상의 삶을 보장해주겠노라는 그들의 달콤한 제안을 기꺼이 따르기로 작정한다. 이후 모처에서 강도 높은 훈련이 진행되는데... 



이미 어릴 적부터 생사를 넘나들 만큼 혹독한 훈련과 체험을 통해 다져진 탁월한 그녀의 피지컬 능력은 어느 누구와 견주어도 최고 수준이었다. 전문 킬러로 재탄생한 숙희는 드디어 조직의 첫 임무를 수행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국가 비밀 조직은 첫 임무를 완수한 그녀에게 애초의 약속대로 그동안 훈련 및 생활해오던 모처를 벗어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집을 제공해주고, '채연수'라는 가상의 인물의 삶을 살 것을 지시한다. 아울러 조직원 정현수(성준)를 그녀에게 의도적으로 접근시켜 감시토록 하는데...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가공할 만한 숙희의 액션이 스크린 위에서 불을 뿜는다. 눈 깜짝할 사이 건장한 청년 수십 명이 그녀가 휘두르는 칼날에 모두 꼬꾸라지고 만 것이다. 1인칭 시점 샷 덕분에 화면이 몹시 흔들려 다소 어지러운 감이 없지 않으나 그만큼 액션 장면 하나하나에 공을 들인 듯 생명력이 살아나면서 훨씬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배경 음악으로 흐르던 국악은 칼로 뭇남성들의 급소를 단 번에 찔러 피칠갑으로 둔갑시키는 장면과 기묘한 상승효과를 불러일으키면서 극의 그로데스크한 분위기에 일조한다.  



한국 영화에서는 일찍이 시도된 바 없었던 강력한 액션 신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강탈하며 기선을 제압한 이 영화의 도입 부분은 이후 어떤 형태로 극이 전개될 것인지의 가늠자 역할을 톡톡히 한다. 실제로 숙희 배역을 맡은 배우 김옥빈의 액션은 강렬함 그 자체였다. 한국 영화사에 있어 전무후무할 법한 장면을 연출하느라 얼마나 혹독한 고초를 감내해야 했을지 눈에 선하다. 김옥빈의 "죽을 만큼 힘들게 찍었다"던 모 매체와의 인터뷰 내용이 결코 거짓이 아님을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그녀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 투혼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도심에서 선보인 오토바이 추격신은 단순히 쫓고 쫓기는 형태가 아닌, 칼을 휘둘러 상대방을 제압하는 고난도의 기술이 결합되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멋진 장면으로 탄생하였으며, 적들이 탑승한 버스를 뒤쫓으며 벌이는 격투신은 단연 이번 작품의 백미라 칭해도 될 만큼 대단한 장면이었다. 버스에 매달려 있던 숙희가 이내 버스 내부로 잠입, 칼과 도끼, 총 등의 무기를 수시로 바꿔가면서 격한 격투를 벌이는 신은 가히 압권이라 할 만하다.



복수를 다짐하며 킬러를 자처했던 숙희, 얼마 후 보통사람처럼 아이를 키우면서 알콩달콩 살고 싶은 소박한 생각에 다시 한 번 선택한 국가 조직의 킬러, 하지만 사람에 속고 사랑에 울며 그녀에게 뼛속 깊숙이 스며들어 각인된 건 오로지 처절한 분노뿐, 숙희가 가쁜 숨을 내쉬면서 휘두르던 도끼날과 칼날, 그리고 허공으로 퍼붓던 총탄 세례는 도무지 신뢰할 수 없는 이 세상과 사람들을 향한 저주의 몸짓이었으며, 영화의 도입 부분과 엔딩 장면에서 흐르던 기괴한 분위기의 배경음악은 그녀를 위한 일종의 살풀이였다. 


때문에 비밀 조직의 지령을 받고 화장실에 서서 환풍구를 향해 살인 대상에게 총구를 겨누던 숙희의 우아한 몸짓은 몹시 아름답다 못해 슬프다.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화끈한 액션 장르의 영화다. 칼날이 휙 하며 몸통을 꿰뚫고 도끼가 공기를 가름과 동시에 피가 솟구치거나 이리저리 튀는 등 비록 피칠갑을 선보이지만, 관객의 시선을 강탈하는 강렬한 액션 장면은 카타르시스를 선사해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2시간이 넘는 긴 러닝타임 동안 지루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신선하고 강렬한 액션을 원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감독  정병길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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