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편견과 차별에 맞서는 당당함 '히든 피겨스'

새 날 2017. 3. 24.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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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근무 중인 캐서린(타라지 P. 헨슨), 도로시(옥타비아 스펜서) 그리고 메리(자넬 모네) 이 세 사람은 각자의 영역에서 탁월한 재능과 역량을 인정 받은 흑인 여성들이다. 1960년대 초반 미국 사회는 피부색 및 성별에 따른 편견과 차별이 표피에 고스란히 드러나있을 만큼 극심했다. 나사(NASA)에서조차 핵심 업무는 백인과 남성 위주로 돌아갔고, 흑인, 게다가 여성들은 직무 능력과는 별개로 주류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건물에 위치한, 유색인종 전용 사무실에서 근무해야 했다. 화장실 사용도 엄격히 구분돼 있다. 


특히 직무에서의 차별은 유난히 두드러진다. 어느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을 지닌 그들이었으나 승진은 고사하고 핵심 직무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마저 원천적으로 봉쇄 당하기 일쑤다. 당시 미국은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쏘아올린 소련과 우주 패권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며 치열한 다툼을 벌이던 때다. 이는 자존심과 관련한 사안이었다. 나사가 새로운 우주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들 세 여성 또한 각기 전문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게 된다. 그러나... 



실화 에세이인 마고 리 셰털리의 『히든 피겨스』가 이 영화의 원작이며, 1958년부터 1963년까지 미 항공우주국에 의해 이뤄진 미국 최초의 유인 우주 비행 탐사 '머큐리 계획'의 숨은 공신이었던 흑인 여성 세 사람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당시 미국과 소련의 패권 다툼은 우주로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던 찰나다. 신경전이 치열했으리란 건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다. 먼저 포문을 연 건 소련이었다.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호를 지구 밖 궤도로 쏘아올린 것이다. 미국의 자존심은 크게 상처를 입는다. 


유인 우주선만큼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었다. 결국 새로운 비밀 프로젝트를 꺼내든 미국이다. 캐서린은 이 프로젝트에서 비행선 궤도와 관련한 고도의 수학적 기법이 요구되는 직무를 맡게 된다. 유색인종을 향한 편견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선 무려 800미터나 떨어진 유색인종 전용 건물을 찾아야만 했다. 마감시간에 쫓겨 관련 서류를 한 보따리 안은 채 화장실을 향해 뛰어가는 캐서린의 모습은 안쓰럽다 못해 딱했다. 언젠가 경험한, 일산 킨텍스 제1전시장에서 제2전시장으로 이동하는 거리가 대략 그쯤 될까?



캐서린에겐 차 한 잔 마시는 일조차 사치였다. 저들의 따가운 시선으로 인해 공용 커피포트에는 아예 손조차 댈 수가 없다. 결국 나중엔 유색인종 전용 포트가 별도로 마련된다. 



유색인종, 더구나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주요회의 참석은 번번이 거부됐다. 하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유색인종은 무조건 뒷좌석에 앉아야 하는 일종의 금기 아닌 금기 따위가 존재했고,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경찰 앞에서 고분고분해야 했던 시절이었으니 일견 이해되는 대목이긴 하다. 물론 미국 경찰의 흑인을 향한 차별 행위는 지금도 언론보도를 통해 간혹 듣게 되는 소식이다.



도로시의 경우는 또 어떤가. 실질적으로는 팀 전체를 아우르는 중책을 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부색의 편견에 가로막혀 신분 상승은 꿈조차 꿀 수 없다. 그렇다면 금전적으로라도 보상이 이뤄져야 할 텐데, 그 또한 언감생심이다. 메리는 엔지니어가 되려는 야무진 꿈을 꾸고 있었으나 피부색을 이용해 쌓아놓은 교묘한 진입장벽으로 인해 암울한 현실 앞에서 좌절을 겪게 된다. 유색인종이 뛰어난 재능과 직무 역량으로 무장한 채 위로 치고 올라올 때마다 출발선 자체를 아예 옮긴다며 분노를 표출하던 그녀의 일성이 내 귀를 파고든다.



그러나 이들 세 사람은 사회적 편견과 금기 앞에서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미래를 준비했고, 각기 지닌 신념과 가치관을 관철시키기 위해 과감하면서도 당당히 맞서 싸운다. 특히 상사인 해리슨(케빈 코스트너)이 화장실에 다녀오는 시간이 왜 긴 것이냐며 캐서린에게 추궁하던 장면에서 그녀가 토해내던 울분은 통쾌하다 못해 강력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해준다. 편견과 차별이라는 어려움 속에서도 긍정적인 모습을 잃지 않고 늘 밝은 에너지를 발산하던 세 사람의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는 우리에게 영감을 불어넣는다. 



이 작품은 자연스레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60년대 미국처럼 눈에 띄는 피부색 분리 정책은 없으나 우리 사회 곳곳엔 여전히 편견적 시각과 그에 따른 차별이 만연해 있다. 피부색과 성별, 장애인 그리고 국적에 따른 편견 및 차별, 심지어 같은 노동자이면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적 차이로 인한 눈에 보이지 않는 교묘한 차별 따위를 떠올리게 한다. 유색인종 전용 건물 및 화장실과 공용 커피포트를 사용할 수 없는 어이없는 영화속 환경은 언젠가 언론을 통해 보도된 점심 메뉴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차별한다는 씁쓸한 소식을 떠올리게 한다. 



'천재성에는 인종이 없고, 강인함에는 남녀가 없으며, 용기에는 한계가 없다' 

영화 시놉시스에서 언급된 문구다.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편견 및 차별과 관련하여 그동안 우리가 지나치게 둔감했던 건 아닌지 이 작품을 통해 다시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감독  데오도르 멜피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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