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소비 부진의 주범이 왜 사교육인가

새 날 2017. 1. 12. 12:26
반응형

12일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작년 3분기 전국 도시 근로자 가구의 한 달 평균 학원 및 보습교육비로 22만6천576원을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1년 전과 비교하면 6% 가량 늘어난 액수다. 문제는 이 증가율이 가처분소득 및 소비자물가지수 평균 증가율 1%의 6배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덕분에 가처분소득 중 사교육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5.4%에서 5.7%로 소폭 올랐다. 가뜩이나 어렵고 팍팍한 살림살이에 교육비 지출마저 증가하고 있으니 가계의 시름이 깊어질 만하다.


그런데 오늘 기획 형태로 일제히 쏟아낸 관련 기사들의 논조는 한결 같다. 그러니까 소비 부진의 주범이 사교육이라는 얘기이다. 제목부터 자극적으로 뽑은 게 여실해 보인다. 조금은 어이가 없다. 아니 많이 어이가 없다. 왜 소비 부진의 주범을 사교육으로 지목한 것일까? 그 이유가 자못 궁금했다. 단순히 소비자물가지수 평균 증가율이나 가계 소득 증가율을 앞섰다는 이유 때문에? 더구나 기사에서 사례로 든 학원비 월 500만 원으로 인해 다른 데 쓸 돈이 없다는 가정은 도대체 어느 나라의 얘기인가 모르겠다. 이러한 사례가 대한민국의 보편적인 가정의 모습이기라도 하다는 의미인가?



서울 청담동에 살며 한 달 소득이 500만 원 가량인데, 소득의 거의 대부분을 학원비로 지출하고 있으며, 모자라는 생활비를 은행권에서 대출 받아 생활한다는 사례가 과연 보편적인 가정의 경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일반적인 가정이라면 통상 식비나 주거비를 사용한 이후 교육비를 지출하지 않나? 그렇다면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소비 부진의 주범을 사교육으로 몰아가기 위해 그 근거로 지극히 일부 계층의 보편적이지 않은 사례를 제시한 결과밖에 더 되겠는가? 사교육이 무슨 범죄 행위인가? 대부분은 공교육의 틈을 아주 훌륭히 매워오고 있지 않나? 


물론 일부 사교육 업체들의 불안 심리를 이용한,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거나 꼼수를 동원한 과도한 사교육은 시정되어야 하는 게 분명 맞다. 이런 업체들이 전체 사교육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불법 행위로 시장을 교란하는 업체들을 퇴출시켜야 하는 역할은 교육 당국의 몫이다. 그러니까 일부 물을 흐리는 업체들로 인해 사교육 전체를 마치 범죄자 집단인 양 혹은 심지어 오늘 기사화된 내용처럼 소비 부진의 주범으로 내모는 건 본말이 전도된 경우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다. 



오늘날 소비 부진은 저성장 기조라는 우리 경제의 패러다임이 변모하는 변곡점 위에서 발생하는 지극히 구조적인 현상이다. 어쩌면 우리 경제의 토대가 한동안 이로부터 헤어나올 수 없는 최악의 국면과 맞닥뜨려야 할지도 모른다. 더구나 올해는 생산가능인구가 본격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하는 원년이다. 저출산 현상과 인구절벽, 그리고 소비절벽에 취업절벽까지, 우리 주변엔 온통 절벽투성이다. 반면 미래 성장 동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주춤거리고 있는 데다가, 초고속성장을 이끌던 산업들은 어느덧 퇴출의 기로에 놓였다. 고도 성장기에 누렸던 달콤함은 이제 온 데 간 데 없이 온통 씁쓸함만 되새김질해야 할 판국이다.


이렇듯 끝모르게 이어지고 있는 성장 부진으로 인해 실질적인 가계 소득이 줄어들게 되고, 때문에 교육비 지출이 더욱 부담스럽게 다가오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소비 부진의 주범을 온전히 교육비, 특히 사교육비로 몰아가는 건 일종의 마녀사냥에 가깝다. 그렇다면 누가 소비 부진의 진짜 주범일까? 이러한 환경을 만들어놓은 위정자들을 탓해야겠으나 작금의 문제는 사교육 등 교육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안이다 보니 그에 대해서만 언급해야 할 것 같다. 한 마디로 사교육 광풍의 폐해는 우리 내부 깊숙이 파고든 학벌사회 그리고 서열주의가 낳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앞서가야 하는 상황에서 빠르게는 유치원부터 사교육에 발을 담그고, 오로지 좋은 대학을 목표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치열한 서열 경쟁에 모두들 뛰어든다. 좋은 대학에 가려면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해야 할 테고, 좋은 고등학교에 가려면 또 다시 좋은 중학교에 진학해야 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때문에 학부모들은 자기 자식만큼은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게 하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 무한 경쟁의 레이스에 기꺼이 합류한다. 대학교 그리고 고등학교 심지어 유치원까지 서열화된 서열주의와 학벌 위주 사회의 그늘 아래에서 자식의 성공을 바라는 학부모의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사교육 시장을 기웃거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구조적인 환경과 지금 대한민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위정자들의 말도 되지 않는 현실을 외면한 채 어찌 소비 부진의 주범을 오롯이 사교육으로 콕집어 단정지을 수 있는가. 단언컨대 사교육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오늘도 그저 공교육의 빈 틈을 메우기 위해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