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우리는 왜 대통령의 세월호 언급에 분노하는가

새 날 2017. 1. 4. 21:56
반응형

1월 9일이면 세월호 참사가 빚어진 지 정확히 1000일째다. 하지만 선체 인양은 또 다시 해를 넘긴 상황이고, 9명에 이르는 실종자는 수습조차 이뤄지지 못한 채 아직도 차디찬 바닷물 속에 깊이 잠겨 있다.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하는 건 세월호를 둘러싼 의혹과 진실이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대목이다. 이에 시민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노란 리본을 서로 나눠 가지며, 혹은 노란 팔찌를 팔에 끼운 채 절대로 절대로 세월호를 잊지 말자며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세월호는 이렇듯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떨쳐내기 어려운 육중한 짐으로 다가오는 데다가 마음 한켠을 아리게 하는 슬픈 주체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란 노란 팔찌에 음각으로 아로새겨진 'Remember 20140416'이란 글귀를 기억하고, 다시는 비슷한 비극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며 다짐하면서 함께 촛불을 환히 밝혀 목소리를 높이는 행동이 전부였다. 


ⓒ노컷V


우리 사회에 크고 작은 무수한 생채기를 낸 이 세월호는 그 진실이 낱낱이 밝혀질 때까지, 아울러 상처가 일정 수준으로 아물 때까지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세월호 의혹의 중심엔 어쩔 수 없이 박근혜 대통령이 떡하니 자리한다. 세월호 참사가 있던 당일 7시간의 행적은 여전히 명확하게 밝혀진 바 없으며, 억측만이 난무하는 상황이다. 


국회의 탄핵 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일 신년인사회 형태의 청와대 출입기자 간담회를 개최한 바 있다. 물론 이는 헌법 권한 밖의 행사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를 두고 “작년인가, 재작년인가요”라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전 국민이 모두 기억하는 그날을 행정부 수장이라는 사람이 모른다니 어찌 공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앞뒤 맥락을 잘 살펴보면 세월호 참사 자체라기보다 이후 자신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과 관련한 시점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세월호 1000일째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누구보다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할 사람이, 아울러 다른 어느 사안보다 신중하게 매듭짓고 대처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한 발언치고는 어쨌거나 경망스럽기 짝이없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은 이번 신년인사회를 통해 톡톡히 효과를 누렸다고 여긴 탓인지, 직무 정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설 연휴를 전후하여 추가 메시지를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박사모' 등 자칭 보수세력은 헌재의 탄핵심판을 앞두고 세몰이에 본격 뛰어든 양상이다. 광장을 환히 밝혀온 촛불 집회에 맞불을 놓는 등 온오프라인을 망라한 여론전을 펼치며 탄핵심판에 영향력 행사를 꾀하고 있는 와중이다. 명절 민심이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결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대국민 여론전과 함께 보수 대결집이라는 막판 뒤집기에 사력을 다하고 있는 모양새다.


하지만 알다시피 박근혜 대통령은 입을 열 때마다 번역기 없이는 도무지 해석 불가한 괴이한 발언, 몸과 정신이 따로 노는 유체이탈식 돌출 언행, 그리고 행정부 수장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법한 가볍기 짝이없는 말들을 통해 늘 구설에 오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현재 신분상 대통령일 뿐, 직무상으로는 대통령이라고 할 수 없다. 즉,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은 헌법이 부여한 국가원수 및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권한을 행사 못한다. 국무회의 등 각종 회의 주재, 공무원 임명, 부처 보고 청취 및 지시, 정책현장 점검 등 일상적인 국정 수행도 일절 할 수 없다.


ⓒ연합뉴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여전히 대통령 직무를 수행 중이기라도 하는 양 버젓이 출입기자 간담회 형식의 신년인사회를 개최하고, 이어서 설 연휴 즈음엔 비슷한 방식의 공개 행보를 하겠노라고 예고하고 나선 상황이다. 즉, 직무가 정지됐음에도 여론몰이와 보수세력의 세 결집을 통해 헌재의 탄핵심판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헌법 권한 밖의 행동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국민이 위임해준 권력을 사적 이익을 취하는 데 사용하는 등 국가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은 엄중한 범죄 행각의 중심엔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렇다면 비록 쇼일지라도 외려 자숙하고 반성하는 모드를 취하는 게 스스로에게 여러모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지금처럼 직무 권한 밖의 행사를 통해 자꾸만 국민들의 화를 돋우고 분노를 야기하는 건 결국 탄핵심판의 시기를 더욱 앞당기는 결과를 초래할 개연성이 높다. 아울러 1000일을 앞두고 있는 세월호 참사일이 언제인지도 모를 만큼 어이없는 언행을 일삼다가는 역풍을 자초하기 꼭알맞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