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최강 한파를 알리기 위함이라는 인간의 잔혹성

새 날 2017. 1. 15.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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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 최강 한파가 한반도를 휩쓸고 있다. 이제껏 그럴 듯한 추위가 없었던 터라 유난히 추울 것이라던 이번 겨울도 '별 것 아닌가 보구나' 라며 긴장감을 슬쩍 내려놓으려던 찰나, 아니나 다를까 그분이 드디어 오신 셈이다. 그런데 우리의 추위는 사실 별 게 아닌 모양이다. 북반구에 위치한 유럽에는 북극의 찬 공기가 남하하면서 유례 없는 한파가 닥쳐 대륙 전역이 몸살을 앓고 있다 하니 말이다. 강추위로 인해 사망한 사람만 올해 들어 최소 73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단다. 교통 마비와 정전 등의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그런데 한파에 고통을 겪고 있는 건 비단 사람만이 아닌 듯싶다. 야생동물들의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이다. 최근 유럽을 휩쓴 최강 한파를 온전히 와닿게 할 만한 사진 한 장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거대한 얼음 덩어리 속에 여우 한 마리가 마치 살아있는 듯 갇혀 있는 형태였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독일 다뉴브 강에서 발견된 이 여우는 얼어붙은 강을 건너던 도중 얼음이 깨져 그만 강물에 빠지게 됐고, 이후 물과 함께 그대로 얼어붙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헤럴드경제


그렇다면 이 여우는 왜 다뉴브강을 건너려 했을까? 자신의 먹이를 찾기 위해? 아니면 배가 고프다고 울며 보채는 새끼의 먹이를 찾기 위해? 혹은 지속적으로 위협해오는 인간의 문명을 피해 새로운 서식지를 찾기 위해? 어쨌든 강물과 함께 그대로 얼어버린 여우의 이 애잔하기 짝이없는 모습은 유럽을 휩쓴 이번 한파의 위력을 가늠케 하는 잣대라기보다 자연의 냉혹함과 함께 까닭 모를 안타까움 따위를 먼저 연상시키게 한다. 


하지만 이후 알려진 소식은 방금까지 나를 사로잡고 있던 '이 여우가 왜 강을 건너려 했을까'와 같은 감성적인 상상 따위를 철저하게 부숴버린다. 


톱으로 주변 얼음을 잘라낸 냉동 상태의 이 여우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언론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것도 모자라 다뉴브강 상류 프리디겐에 위치한 한 호텔 외부에 전시됐다고 한다. 유럽을 휩쓸고 있는 이번 한파가 상당히 이례적이고 매섭다고는 하지만, 아울러 강물에 빠진 이 여우의 모습이 마치 살아있기라도 한 양 기이할 만큼 생동감을 전해주고 있다지만, 언론보도를 통해 해당 사진을 일제히 공개한 것도 모자라 굳이 이를 대중들 앞에 전시해야 했을까? 고통 속에서 죽어간 동물을 땅에 묻어주진 못할 망정 그 숨져가던 끔찍한 상황을 만인들 앞에 직접 전시하여 구경거리로 만들어야 했을까?



동물의 사체를 보며 이번 한파가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가를 새삼 깨닫기보다 인간의 잔인함은 도대체 어디가 종착역일까 하는 생각이 먼저 앞섰던 건 비단 나뿐일까? 동물과 관련한 인간의 잔인함은 사실 생활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얼마 전 요리로 만들어졌음에도 여전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고 머리 부위만 온전히 살아있던 잉어에게 술을 먹이는 중국 남성의 충격적인 영상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인간의 잔인함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켰던 적이 있다. 


그런데 사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벌어지곤 하기에 그다지 놀랍지도 않다. 몸통의 살점 이곳저곳을 샅샅이 회로 떠놓은 상황에서 아직도 숨이 붙어 헐떡거리는 물고기의 머리를 보며 젓가락으로 한 점씩 그 살점을 집어 입에 넣고선 '살아있어 더 살살 녹는 것 같다' 라고 외치는 일상의 잔인함을 문득 떠올려본다. 이는 잔인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모피 옷을, 사람도 모자라 어느덧 반려동물에까지 입히는 야만성과도 맞닿아있다.


ⓒ뉴시스


세상에는 가치 있는 일이 있고,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사람은 세대를 이어가면서 그러한 사실을 깨우치고 가치 지향적인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때문에 사람을 이성적 동물이자 사회적 동물 아울러 문화적 동물이라 지칭한다. 그렇다면 이번 유럽 한파의 위엄을 알리기 위해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동물의 모습을 그대로 전시해 놓는 일이 과연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비록 동물이라 하더라도 아무 생각 없이 이들의 고통을 바라보며 즐기는 사람들의 마음 속 한켠엔 그 이성과 문화 따위의 가치 대신 혹시 잔혹성만이 꿰차고 들어앉아있는 건 아닐까? 


언 강물 위를 건너다 물에 빠져 숨진 동물이나 도로를 횡단하려다 차에 치여 숨진 동물의 사체는 각기 생존을 위한 몸부림의 흔적이다. 그렇다면 숨져간 방식만 다를 뿐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려야 했던 건 매한가지라는 의미이다. 결국 강물과 함께 얼어버린 여우의 모습을 고스란히 대중들에게 공개하는 건 로드킬을 당해 숨진 동물의 사체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공개하는 것과 진배없다. 어제 고속도로를 달리던 도중 발견한, 로드킬을 당한 채 도로 위에 내버려진 이름 모를 동물들의 끔찍한 모습이 왠지 이 여우와 오버랩되는 건 괜한 느낌이 아닐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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