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긍정 이데올로기의 강요, 왜 못마땅한가

새 날 2016. 10. 23.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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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인 사고를 지닐 경우 뇌를 변화시켜 세상의 나쁜 측면만 점점 눈에 들어오게 하여 좋은 측면에는 관심을 두기 어렵게 만들고, 더구나 이러한 생각은 전염되기 쉬워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상대방의 건강을 악화시키고 최악의 경우 수명마저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해외에서 발표됐다. 부정적인 사람과 함께 있으면 정신적으로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어 고혈압과 스트레스, 불안, 두통, 그리고 혈액 순환이 악화되는 형태로 우리의 신체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이러한 건강 문제는 결국 심장 질환과 뇌졸중 등 심각한 건강 상태로 이어지게 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반면, 관점의 전환을 통해 긍정적인 사고를 하게 되면 힘든 일을 회복하거나 극복하는 데 있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욱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고 한다. 아울러 성공한 사람은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 그들의 습관을 소개하고, 대중들로 하여금 이들의 방식을 흉내내도록 종용하고 있다. 같은 일을 경험하더라도 얼마나 긍정적이며 낙관적인 태도를 가지느냐에 따라 행복감에 있어서도 차이가 크게 달라진다는 연구 결과도 최근 발표됐다. 연구진의 분석 결과, 낙관성과 행복 간에는 긍정적인 상관관계가 발견됐다고 한다. 결국 개인의 행복 정도가 소득이나 신체 및 정신적 건강뿐 아니라 대인관계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이는 다시 개인의 행복도를 높이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게 한다는 논리이다.

 

ⓒ코메디닷컴

 

먹고 살기가 힘이 들어 그런 걸까? 근래 긍정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듯한 콘텐츠들이 유난히 많이 쏟아지고 있는 모양새다. 언론 매체는 연일 긍정적인 사고는 바람직한 것이며, 부정적인 사고는 그렇지 못하다는 내용을 대중들에게 설파하고 나섰다. 부정적인 사고는 자신은 물론이며, 주변 사람들의 건강을 좀먹거나 심지어 목숨까지 앗을 수 있는 아주 무시무시한 존재로, 반면 긍정적인 사고는 건강을 유지시켜 줄 뿐 아니라 행복감을 선사해 주는 상당히 고마운 존재로 그리고 있다.

 

물론 이는 결코 틀린 논리라고 볼 수 없다. 같은 사안을 두고서도 개인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일의 과정이나 성과가 천양지차로 나타날 수 있는 경우를 우리는 경험으로 흔히 접해왔기 때문이다. 칭찬은 거대한 덩치의 고래마저 춤을 추게 만들듯, 긍정적인 사고 역시 각자에게 내재돼 있는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게끔 하는 원동력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난 최근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이 긍정 이데올로기들이 짐짓 못마땅하다. 누군가의 주장처럼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대부분을 결코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가 없다. 왜일까? 우리 경제는 현재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당장의 현실보다 미래가 더욱 암울하리라는 전망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어디 경제뿐이랴. 정치는 경제 이상으로 혼탁하기 짝이없다. 무능과 온갖 부패로 점철된 현 권력은 대한민국호를 이끌어나가기엔 모든 영역에서 역부족이 아닐 수 없다.

 


정권 말기에 이르자 그동안 수면 아래에서 잠자던 그들의 치부가 전모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좌초된 채 천천히 기울어가던 대한민국호는 더욱 나락 깊숙한 곳으로 빠져드는 모양새다. 현 상황은 IMF사태가 벌어져 극도의 혼란을 야기했던 김영삼 정권의 말기를 빼닮았다. 아니 실은 예후가 그보다 더욱 좋지 않으리라 짐작된다. 매우 엄중한 상황이다.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들이 한데 얽혀 여러 부조리한 현상들을 낳고 있는 데다, 각종 권력형 비리와 부패로 인한 썩은내가 진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이 피부에 가장 극명하게 와닿을 청년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현재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나선 상황이다.

 

하지만 지도자는 자신의 무능으로 인한 결과물인 '헬조선' '흙수저' 등 근래 사회 풍조가 담긴 신조어의 유행을 탐탁지않게 받아들이며 이에 대한 불쾌한 심경을 가감없이 드러내더니 젊은이들을 직접 겨냥, 남 탓 하지 말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집권여당인 새누리당 역시 비슷한 논리를 펴고 있다. 젊은이들이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구조적인 여건 탓에 좌절을 겪어야만 하는 현실을 빗대어 표현한 행위를 두고 순전히 개인들의 '노오력'이 부족하기 때문인데, 왜 나라 탓을 하거나 남 탓으로 이를 돌리느냐며 젊은이들을 꾸짖고 나선 것이다. 때문에 작금의 긍정 이데올로기의 횡행은 이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없다.

 

영화관의 스크린 위로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세계가 우리를 주목하고 있으며 많은 젊은이들이 넓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예쁜 화면이 뿌려지기 바쁘다. 흡사 80년대 군사정권 시절 유행하던 '아! 대한민국' 등 일련의 건전가요를 연상케 하는 뜨악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자본주의란 이론상 개인이 노력한 대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거나 성취할 수 있는 대단히 합리적인 경제 체제이다. 이는 아이들이 배우는 사회 교과서에 수록된 내용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사자인 아이들뿐 아니라 이를 믿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모 여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은, 부모의 재력이 곧 능력이라는 말을 거침없이 떠벌릴 만큼 뻔뻔하기 짝이없는 금수저 따위들이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활개를 치는 이상 더더욱 그렇다.

 

ⓒ노무현재단

 

앞서도 언급했듯, 물론 긍정적인 사고가 부정적인 그것보다 바람직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각종 매체를 통해 긍정 이데올로기를 흡사 당위인 양 강요하고 나선 행위는 무언가 의도적이면서도 작위적인 결과물로 다가오는 탓에 이를 결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무조건적인 긍정은 현재의 모순과 어려움을 빚어낸 당사자 내지 세력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결코 반성하지 않겠으며, 오히려 이를 교묘히 숨긴 채 모든 책임을 이른바 '개' '돼지'라 일컬어지는 개인들에게 돌리려는 몰지각한 행위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욕구 5단계 위계론을 펼친 매슬로우는 최고 수준의 욕구로 '자아실현'을 주장한 바 있다. 이는 앞서의 모든 단계들이 기본적으로 충족돼야만 이뤄질 수 있는 최상위 수준으로, 자기 발전을 이루고 자신의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단계를 말한다. 그렇다면 자아실현을 이룬 사람의 특징은 어떤 모습일까? 그 중 하나는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 모두를 올곧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다. 결국 작금의 지나친 긍정 이데올로기의 주입은 개인들의 눈을 의도적으로 멀게 하여 진실을 왜곡시키고, 더 나아가 개인의 자아실현마저 방해하려는 파렴치한 행위에 다름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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