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타인의 정서와 감정은 존중 받아야 한다

새 날 2016. 10. 12.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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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애견인이 10년 동안 키우던 개를 잃어버렸다. 이 애견인은 잃어버린 개 외에도 수 마리를 더 키우고 있었는데, 그 많은 개들 중에서도 잃어버린 녀석이 가장 순둥이였다고 한다. 애견 주인은 하루가 지나도 개가 돌아오지 않자 직접 발품을 팔며 개가 있을 만한 곳을 모두 찾아다녔고, 동네 어귀마다 현수막을 붙이거나 전단지를 돌리는 등의 방법을 동원하여 수소문하고 다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노력은 모두 허사가 되고 만다. 


전북 익산에서 지난 달 26일 '올드 잉글리쉬 쉽독' 한 마리가 실종된 지 이틀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것이다. 물론 집을 나간 애견이 주검으로 발견되는 건 간혹 벌어지는 일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그다지 특별한 사안이 아닐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번 사건은 유독 이슈가 되고 있는 걸까? 그 내용을 슬쩍 들춰보니 그야말로 기가 막힌 사연이 아닐 수 없다. 반려동물 인구 1천만 명 시대에 벌어진 일이라고 하기에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을 정도다. 


올드 잉글리쉬 쉽독


마을 주민 4명이 도로변에서 발견한 이 개를 마을회관으로 옮긴 뒤 도축하여 함께 나눠 먹은 사실이 알려졌다. 이들은 이미 죽은 개를 처리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목격자들의 한결 같은 증언과 CCTV에 찍힌 당시 개의 모습에 따르면 분명히 살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이는 앞으로 경찰이 엄정한 수사를 통해 풀어야 할 과제이다. 


애견 주인은 무려 10년 동안이나 잃어버린 개와 교감을 나누며 정을 돈독히 쌓아 왔다. 정서란 물질로는 환산할 수 없는 아주 고귀한 가치이다. 하지만 이렇듯 소중한 존재였던 애견 '하트'는 며칠 후 누군가에게 도살되어 고기로 둔갑, 그들의 뱃속을 채운 뒤 앙상한 유골의 형태로, 아니 보다 정확히 분류하자면, '쓰레기'의 형태로 주인에게 되돌아 왔다. 이를 받아든 견주의 심정은 과연 어땠을까? "미치고 팔짝 뛸 것 같다"던 그의 표현을 나라고 하여 이해 못 할 바 아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기가 막혔던 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다. 애견 주인이 마을 주민에게 잃어버린 개의 행방을 물었더니 도축했다며 족히 50근은 나올 만큼 살이 많았노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늘어놓더란다. 심지어 이미 죽어버린 그깟 개 한 마리 가지고 왜 난리인지 모르겠다며 불편한 심기를 비치거나 모여 있던 또 다른 주민들 역시 뭔 개를 찾으러 경찰까지 데리고 오느냐며 견주에게 오히려 역정까지 내더란다. 



도시에서는 유사한 행태가 이미 종적을 감추긴 했으나 동네 어른들이 야산에서 개를 잡아 먹던 충격적인 광경을 어릴적 난 종종 목격한 바 있다. 당시 일부 어른들에게 있어 개는 반려동물로서의 지위가 아닌 단순히 몸 보신을 위한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때문에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문득 과거의 그 섬뜩했던 광경이 오버랩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멀쩡히 살아있던 개를 잡은 것인지, 아니면 피의자들의 언급처럼 이미 죽은 개를 처리한 것인지 나로선 알 수 없다. 그러나 동네 야산에서 개를 잡아먹던 어릴적 그 어른들의 우악스러운 실루엣이 이들의 행태와 고스란히 겹치는 현상만큼은 피해갈 수가 없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은 변모했음에도 일부 사람들의 인식은 여전히 과거에 머문 채 고스란히 박제화돼버린 게 아닐까? 과거로부터 단 한 발자욱의 움직임조차 없이 그대로 멈춰선 형상 그대로이니 말이다. 이렇듯 막무가내인 이들 앞에서 반려견과 함께해 온 지난 10년 동안의 정서와 감정은 하루아침에 바닥으로 내처진 채 산산조각나버릴 수밖에 없다. 


아울러 잃어버린 개가 고급 견종이었기에 언론에서 크게 다루며 이슈화가 된 것일 뿐, 만에 하나 상대적으로 금전적 가치가 떨어지는 견종이었다면 지금과 같은 뜨거운 관심은 애시당초 기대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일부 사람들의 반응 또한 나를 불편하게 한다. 그러니까 한쪽에서는 개를 단백질 공급원 정도로 생각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물질적 가치 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사실 가족이 뭐 별 건가. 10년이란 긴 세월을 함께해 왔다면 이는 분명 가족 이상으로 친밀감이 쌓였을 테고, 사람 이상의 정서적 교감을 함께나누었을 법하다. 과연 견종이 문제인 것이며, 정서적인 가치가 물질적인 그것과 등치될 수 있는 사안인 걸까? 


올드 잉글리쉬 쉽독


단언컨대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반려견은 단순히 고깃덩어리 그리고 재산적인 가치에 앞서 우리 사람들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고, 때로는 기쁨과 즐거움을 선사해 주는, 더없이 고마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이 만에 하나 죽은 개를 먹은 것이라고 밝혀진다면 유실물을 습득한 뒤 신고하지 않은 채 가져갔으므로 단순히 '점유물이탈횡령' 혐의가 적용돼 1년 이하의 징역과 300만 원 이내의 벌금형에 처해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고 만약 살아있는 개를 잡아먹은 것이라면 동물보호법상 학대 혐의로 1년 이하의 징역과 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 적용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듯 약한 처벌 만으로는 작금의 뒤틀린 인식을 변화시키기엔 역부족이 아닐 수 없다. 


반려견, 누군가에게는 그저 하찮은 동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흡사 가족처럼 소중한 존재일 수 있다. 인간의 물욕 앞에서는 타인의 정서와 감정 따위는 아예 안중에도 없는듯 쉽게 내처지는 상황이 내겐 너무도 씁쓸하게 다가온다. 물론 개를 좋아하거나 싫어할 수는 있다. 이는 각자의 취향에 해당하는 영역이다. 하지만 그러한 인식과는 별개로 타인의 소중한 가치와 감정에 대해서 만큼은 그 자체로 인정해 주어야 함이 옳지 않을까? 반려견을 반려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전히 단백질 공급원으로 생각하며 타인의 정서와 감정을 무참히 짓밟고 있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서라도 향후 보다 엄중한 처벌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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