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환풍구 붕괴사고 2년, 여전한 안전불감증

새 날 2016. 10. 16.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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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 환풍구 붕괴사고가 발생한 지 벌써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다른 이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는 위치를 확보하겠노라는 지극히 사사로운 욕망에 이끌린 채 아무런 의심 없이 환풍구 위에 올라섰다가 순식간에 벌어진 사고였다. 이렇듯 누구라 가릴 것 없이 설마 하는 방심이 지배적인 상황이라면, 우리 주변을 늘 배회하며 잠복해 있던 안전사고가 그 존재감을 불쑥 드러내기 마련일 테다. 최근 울산 경부고속도로 상에서 발생한 관광버스 화재사고는 잠시 느슨해진 우리의 안전 의식에 또 다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무리한 끼어들기(이는 현재 수사 중인 사안이다)에 이은 콘크리트 방호벽 충돌이라는 비교적 단순한 사고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무려 10명의 사망자를 낸 끔찍한 대형사고로 이어지고 말았다. 오늘도 도로 위를 질주하는 수많은 관광버스들이 한결 같은 구조로 되어 있는 데다, 비슷한 서비스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니 진짜 문제는 앞으로도 유사한 형태의 사고가 또 다시 발생하지 말란 법이 없다는 사실에 있다. 과연 무엇이 이렇듯 끔찍한 결과를 빚게 한 걸까? 그 원인을 하나둘 따지고 들다 보면 결국 우리에게 무척 낯 익은 존재인 안전불감증과 맞닿게 된다. 


ⓒ헤럴드경제


대부분의 관광버스는 통유리 구조로 돼 있다. 실제로 근래 제조된 차량일수록 그러한 경향이 더욱 짙다. 이는 기술의 발달 및 효율성, 아울러 디자인이라는 감성적인 측면까지 감안한 결과물로 짐작된다. 즉, 근래 공조장치의 성능이 워낙 뛰어난 덕분에 공기 순환을 위한 별도의 장치가 필요 없어진 데다 연료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요량으로 아예 창문을 열 수 없는 구조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디자인적으로도 완성도가 높아 미려한 외관을 뽐낸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사고의 경우처럼 하나밖에 없는 출입문이 막히면 승객들이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은 창문을 깨고 탈출하는 게 거의 유일하다.


물론 다소 미흡하긴 해도 비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규정은 이미 마련돼 있다. 정부는 창문을 개폐할 수 없게 돼 있는 버스의 경우 차량 내부에 4개 이상의 탈출용 망치와 함께 사용수칙 등을 명시하여 비상 시 창문을 깰 수 있도록 규정해 놓은 것이다. 그러니까 이번 사고의 경우에도 승객들이 직접 이 망치를 이용, 창문 곳곳을 부숴 탈출을 시도했더라면 적어도 지금과 같은 최악의 국면을 피해갈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에는 적어도 두 가지의 전제가 필요하다. 우선 차량 운행 시 안전사고에 대한 안내와 함께 비상탈출 방법을 승객들에게 사전에 숙지시켜야 하고, 필요한 도구의 위치를 인지시켰어야 한다. 아울러 차량의 운행 및 승객들의 안전과 관련한 총괄 책임자인 기사는 매뉴얼을 충실히 따르고 평소 교육을 통해 몸에 익힌 바와 같이 비상 상황에 침착하게 대처, 구조 활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섰어야 한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두 가지 요소 모두 갖춰지지 않았다. 화재가 발생, 차량 내부에서 불이 삽시간에 번져나가는 상황에서 승객들 스스로가 지켜야 할 안전 그리고 기사의 책임감 있는 행동,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셈이니 말이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관광버스를 이용해 왔지만, 차량 운행 전에 승객들에게 안전사고에 대비하는 당부는 안전벨트가 거의 유일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망치가 어느 곳에 위치해 있으며, 소화기는 어디에 있는지, 아울러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별도로 안내를 받은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유사한 사고가 발생하고, 또 다시 비슷한 참사로 이어진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정도이다.


아울러 차량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기사의 행동 역시 두고두고 아쉬울 수밖에 없다. 경찰 조사 결과 기사는 출발 전 탈출용 망치의 위치 등을 승객에게 사전에 알린 적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현재 운행되고 있는 대부분의 관광버스들이 비슷한 실정이기에 해당 버스 기사 만의 문제라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 이보다는 오히려 사고 발생 직후 승객들의 탈출을 돕지 않은 채 가장 먼저 창문을 깨고 탈출한 정황에 주목하게 된다. 기사는 밖으로 탈출 뒤 승객들에게 자신이 깬 유리창으로 탈출하라며 소리쳤다고 한다. 하지만 승객들의 안전을 도맡은 책임자의 행동으로서는 미흡하기 짝이없다. 


이번 사고 버스에 탑승한 승객들은 안전벨트만 매고 있으면 안전할 것이라 생각하며, 사고 순간에도 그대로 있었을 듯싶다. 버스 기사의 역할이 중요한 건 다름아닌 이 지점이다. 창을 깨고 뛰쳐나가야 할 만큼 급박한 상황이었다면 "가만히 있으라"가 아니라 "벨트를 풀라"고 안내했어야 한다. 아울러 망치를 이용, 다른 쪽의 창문을 깨고 승객들이 탈출할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했어야 함이 옳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당시 선장을 비롯한 일부 선원들이 그러했듯 승객들의 안전에 응당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또 다시 가장 먼저 탈출하는 볼썽사나운 상황을 연출하고 말았다.


관광버스는 우리가 흔히 이용하는 대중교통 중 하나이다. 즉, 비슷한 안전사고가 언제든 우리 곁에서 횡행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15일에도 유사한 사고가 발생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경기도 봉담-동탄고속도로를 달리던 고속버스가 1톤 트럭에 들이받히며 갓길로 밀려 가드레일에 부딪힌 뒤 출입문이 열리지 않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다행히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조대원에 의해 승객 28명 전원이 구조될 수 있었지만, 만에 하나 화재가 발생했다면 울산에서처럼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출입문 막힌 버스 ⓒ연합뉴스


이웃나라인 중국과 타이완에서도 최근 통유리로 된 관광버스 화재로 수십 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당시 해당 뉴스를 접하면서 안타까운 감정을 숨길 수 없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어떻게 이렇듯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의아해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비슷한 사고가 우리에게도 발생한 것이다. 


이쯤되면 디자인적으로는 조금 더 완벽해 보일지 모르는 통유리 구조의 버스가 안전상으로는 치명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정부는 이번 사고 발생 직후 관련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해당 사고에서도 드러났듯 정작 문제는 규정이라기보다는 현장에서 이것이 얼마나 제대로 지켜지느냐 하는 점과 어떠한 형태와 방식으로 사후관리가 이뤄지느냐 하는 점일 테다.  


정확히 2년 전, 우리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던 판교 환풍구 붕괴사고는 그와 관련한 사회 전반의 안전 의식을 한 단계 높인 바 있다. 환풍구가 땅 밑으로 꺼질 것이라는 예측을 그 누구도 할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 생활 공간에는 미처 감지하지 못하는 안전 사고의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이번 사고 역시 성격은 전혀 판이하다 해도 그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환풍구 사고와 완전한 판박이라 할 만 하다. 갈 길은 여전히 멀다. 이번 관광버스 화재 사고가 그와 같은 사실을 재차 확인시켜 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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