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수포자 양산하는 수학교육은 이제 그만

새 날 2016. 8. 24.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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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아이들도 그렇지만 다른집 아이들 역시 이렇게 질문을 해오는 경우가 간혹 있다. 아니 자주 그런다. "수학은 배워서 어디에 써먹나요?" 솔직히 말하자면 대답하기가 무척 궁색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오직 한 문제 해결을 위해 여러 이론과 논리를 끄집어내어야 하고 적절한 식을 구성, 정확한 연산까지 일련의 흐름으로 마무리지어야 하기에 논리력을 기르는 데는 수학만한 게 없다고 한다던가,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려한 CG 영상이나 심지어 제약회사의 임상실험에서도 수학은 빠질 수 없다며 주변에서 주워들은 얘기들을 들입다 풀어놓아도 아이들의 표정은 여전히 떨떠름하기만 하다. 


그런데 아이들에게는 이렇듯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미주알고주알 해 주다가도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수학의 쓰임새가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사실 기초적인 사칙연산 정도만 할 줄 알아도 살아가는 데엔 전혀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수학을 직업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입장이 아니라면 초등학교 수준, 아니 많이 봐 주어 중등 수준의 실력만으로도 사실상 차고도 넘친다. 그 이상의 실력은 솔직히 90% 이상의 사람들에겐 사치이자 낭비에 불과할 뿐이다. 


ⓒ연합뉴스


요즘 아이들의 현실은 그야말로 참담하다. 수학이라는 과목 때문에 공부하기가 싫다는 아이들이 부지기수이니 말이다. 이른바 수학을 포기한 사람이라는 의미의 '수포자'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수학이라는 교과는 여전히 우리 아이들을 괴롭히는 주범이자 발목을 잡는 아주 몹쓸 녀석이 아닐 수 없다. 교육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지난해 7월 자체 조사한 결과 초등 6학년 생 중 '수포자'의 비율이 무려 36.5%에 이른다고 한다. 초등학생들조차 이렇거늘 중등이나 고등학생들의 비율을 따져 봐야 입만 아프지 않을까 싶다.


수학 교과과정이 지닌 문제는 그동안 사회 일각에서 무수히 제기된 사안이다. 특히 고등과정에서의 살인적인 커리큘럼은 멀쩡한 아이들조차 수학으로부터 멀어지도록 만드는 결정적인 유인이 되게 한다. 투입 대비 산출 효과가 여타의 과목에 비해 형편 없으면서도 현실적으로는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기형적인 교과과정은 대부분의 아이들을 사교육에 의존토록 함과 동시에 이들 대부분을 수포자로 전락시키기 일쑤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한 줌도 채 안 되는 일부 유능한 아이들의 수월성 교육을 위해 99% 이상의 아이들이 말도 안 되는 혹사를 당하거나 희생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현실을 결코 모를 리 없는 교육계지만, 그 전 세대도 그래왔고 현 세대도 다 그렇게 하고 있으니 그냥 참고 묵묵히 따라오라는 듯 아이들의 어려움이나 고통에 대해선 모두 도외시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수학이라는 교과를 아이들로 하여금 더욱 멀어지게 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은가 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새로 개발된 초등학교 1, 2학년 수학교과서 내용이 선행학습을 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게 기술되는 등 문제점이 여전하다는 지적이 한 교육단체로부터 제기됐다. 이쯤되면 병이 아닐까 싶다.



현재의 수학교육은 기초적인 지식 습득을 목적으로 하지 않음이 명백하다. 웬만한 아이들은 모두 틀리게끔 문제를 비틀거나 함정을 파놓아 어떻게 하면 그러한 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가 하는 요령을 배우는 게 우리 수학 교육의 현주소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문제를 접하다 보면 문제 자체의 난이도도 상당하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어떻게 하면 많은 아이들을 틀리게 할까를 고심했을 법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는 아이들에게 올바른 지식을 심어주려는 게 아닌 벌써부터 꼼수적 기법부터 가르치는 꼴이 아니면 무얼까? 


물론 왜 이러한 결과가 빚어지고 있는지 알 법도 하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따위의 교육적 현실과 맞닿아 있는 탓이다. 점점 어려워지고 난해해지는 수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사교육에 의존하게 되고, 공교육계 입장에서는 사교육에 단련된 아이들이 문제를 비교적 쉽게 해결 가능하다 보니 변별력을 고심하지 않을 수 없어 이를 높이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문제의 난이도를 갈수록 높이고 있는 셈이다.


ⓒ중앙일보


마치 사교육과 공교육의 자존심을 건 싸움이기라도 한 양 한쪽이 공략하면 다른 한쪽은 열심히 도망가기 바쁘고, 그 뒤를 쫓는 아이들은 연신 헉헉거리며 다수의 아이들을 수포자로 전락시키고 마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물론 일정 수준의 변별력을 유지해야 하는 교육계의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 이유 하나만으로 이 땅의 무수한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온통 수학이라는 교과에 매달린 채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며 무한 고통을 겪게 하는 건 국가적인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수월성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모두가 그를 쫓을 필요는 없다. 99%의 아이들에게는 수학교과의 일반적인 지식 수준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학습의 초점을 올바로 맞춰 작금의 사회적 낭비 요소를 모두 없애야 한다. 이는 여타의 경쟁 국가에 비해 행복도와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우리 아이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좋은 대안이 되게 할 수도 있을 테다. 초등학교 1, 2학년 수준부터 선행학습을 하지 않을 경우 따라가지 못할 정도의 수준이라면 앞으로도 수포자 양산은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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