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사보의 퇴조가 김영란법 때문이라고?

새 날 2016. 8. 23.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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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서울청사에서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관계부처 차관회의를 개최하고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 시행령의 가액 기준과 적용 대상 등을 논의하였으나 부처 간 이견이 팽팽히 맞선 끝에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말았다. 예상대로 이번 회의의 핵심 쟁점은 식대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비 10만 원에 준하는 가액 기준이었다. 그러나 법 시행을 불과 한 달 앞둔 시점에서 국민 여론조사 등 국민적 지지를 모아 신중히 결정한 기준 가액에 대해 변경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건 여러모로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부정부패의 관행을 뿌리뽑아야 한다는 국민적 여망을 뒤로 한 채 김영란법이 내수를 더욱 침체시킬 것이라며 지속적으로 국민 여론전을 펼쳐 온 일부 세력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이번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기 위해 또 다시 김영란법 흠집내기에 모든 역량을 쏟아붓고 있는 모양새다. 심지어 기업의 소식지 역할을 담당하던 사보 문화의 퇴조를 김영란법과 엮으려는 시도마저 읽힌다. 


삼성앤유 홈


최근 기업의 소식을 회사 안팎으로 전하는 전통적인 인쇄 형식의 종이 사보가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진 바 있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종이 인쇄물인 사보 역시 인터넷과 모바일을 기반으로 한 실시간 디지털 소식지 형태에 밀려 어쩔 수 없이 그 자리를 내주고 있는 셈이다. 삼성그룹도 이에 가세했다. 온라인 격주간지 형태로 발행해온 사내외 사보 '삼성앤유'의 발행을 중단키로 했다는 소식이 언론발로 전해진 것이다. 여타의 기업들 역시 종이 사보를 폐간하거나 다른 형태로 변모 중이다. 일종의 시대적 흐름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다수의 언론들은 이러한 결과마저도 김영란법 시행과 엮으려 하고 있다. 김영란법에 따르면 정기간행물 발행 업무를 담당하는 사보 임직원과 발행인 등은 언론인 범주에 포함된다. 그렇게 될 경우 사장이나 발행인은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이 되어 경영활동에 제약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게 그들의 한결 같은 주장이다. 하지만 사보 발행이 언론인 범주에 포함된다고 하여 과연 무엇 때문에 경영 활동에 제약을 준다는 것인지 나로선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김영란법 때문에 애꿎은 종이 사보가 고사하게 된다는 건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종이 사보는 이미 시대적 흐름에 뒤처져 당연히 사라져야 할 매체로 전락한 지 오래다. 100년 전통의 언론사조차도 하루 아침에 폐간을 선언하고 온라인 매체로 탈바꿈해야 하는 게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현실이다. 때문에 종이 매체인 사보의 퇴조는 종이 신문과 같은 아날로그 매체의 쇠락 현상과 그 궤를 함께한다. 더구나 그 어떤 매체보다 쌍방향의 소통이 중요하게 다가오는 사보는 외려 인쇄물보다 온라인 형태가 더욱 어울릴 법하다. 이런 상황에서 디지털 매체로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환경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시대적 흐름을 마치 김영란법 때문인 것처럼 호도하는 건 김영란법에 흠집을 내려는 시도가 아니면 과연 무얼까? 아니면 일종의 투정? 가뜩이나 김영란법과 관련하여 쏟아지고 있는 기사들 때문에 마뜩잖은 상황이지만, 더욱이 오늘 올라온 '5만원에 맞추다보니 뼈만 남은 한우세트'라는 제목의 기사는 지나치게 노골적이라 반감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해당 언론사는 선물 5만 원의 가액기준이 영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기사 내용은 더욱 가관이다. 


축산업계가 추석시장을 겨냥하여 4만9900원짜리 선물세트를 마련하였는데, 금액에 맞추다 보니 한우 부산물인 뼈만으로 구성됐다고 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고기의 양이야 어떻든 뼈를 빼고 금액에 맞춰 구성하면 될 일을 왜 뼈밖에 남지 않았다며 한탄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 술 더 떠 도저히 5만원 이하 선물 세트를 만들 수 없어 불고기용 한우와 돼지고기를 섞은 4만9900원짜리 불고기 세트를 내놓았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 모든 게 김영란법 때문이라는 푸념도 잊지 않고 있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한우와 한돈을 섞은 불고기 세트라, 다른 이들에겐 어떻게 비칠지 모르나 내겐 무척 창의적인 발상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결과야 말로 진짜 제대로 된 창조경제가 아닐까? 반면 축산업계가 앞서 늘어놓은 하소연들을 곱씹어 보니, 그동안 뇌물 등 부정 청탁을 위해 도대체 얼마짜리 상품이 오고갔길래, 5만 원짜리 상품을 구성할 수 없다며 푸념을 늘어놓는 것인지 가늠하기조차 쉽지가 않은 노릇이다. 


ⓒ연합뉴스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의 악습을 뿌리뽑고 이의 근본적인 처방을 위해 우리는 사회 구성원의 바람과 중지를 모아 김영란법을 어렵사리 통과시킨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산업의 이해를 들먹이며 내수 침체가 우려된다는 등의 이유로 자꾸만 이를 후퇴시키려 하거나 태클을 걸어 법의 근간을 훼손시키려는 시도는 부정부패의 일소를 바라는 다수 국민들의 부아를 치미게 하는 요소가 아닐 수 없다. 


법의 취지를 퇴색시키려는 온갖 시도와 음해 행위들을 꼼꼼이 살펴 보니 역으로 그동안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부정부패라는 관행에 젖은 채 무엇이 올바름인지조차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썩어 문드러졌었는가를 반증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가뜩이나 침체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우리 경제가 김영란법 때문에 치명적인 어려움에 처하는 일이 실제로 발생한다 하더라도, 칼자루를 뽑은 이상 이참에 향응 및 접대로부터 시작되는 청탁과 각종 부정부패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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