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정치인의 서민 코스프레가 불편한 이유

새 날 2016. 8. 6.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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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에게 있어 서민과의 접촉면을 넓히는 행위는 일종의 통과의례 중 하나다. 특히 대중 정치인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대권까지 노리는 인물이라면 더더욱 그들과의 친숙한 면을 최대한 부각시켜야 한다. 선거철만 다가오면 평소 행하지 않던 서민 코스프레 행위 따위가 부쩍 느는 건 다름아닌 그와 같은 이유 탓이다. 그런데 대다수의 정치인들, 특히 대중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인물일수록, 사실 서민의 삶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허다하다. 


때문에 유력 정치인들이 서민의 삶을 아는 척하거나 어설프게 흉내를 내다가 되레 비웃음을 자초하곤 한다. 과거 정몽준 전 의원의 경우 교통비 70원 발언 때문에 곤욕을 치른 기억이 있다. 허나 이러한 사례는 비단 우리만의 얘기가 아닌 것 같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간혹 벌어지곤 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우리보다 앞서 대선을 치르는 미국을 들 수 있겠다. 최근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서민 음식을 먹으며 친근한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다 되레 역풍을 맞았다는 소식이다. 


치킨을 칼과 포크로 먹고 있는 트럼프 ⓒ연합뉴스


트럼프는 지난 2일 자신의 전용기에서 치킨을 먹는, 일견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사진을 SNS에 올렸는데, 보통사람들처럼 손으로 뜯어먹는 게 아니라 손에 포크와 칼이 들려져 있는 등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영 부자연스럽고 어색한 모습을 연출하고 말았단다. 그러니까 이는 대중들이 시중에서 흔히 사먹곤 하는 치킨을 실제로 구입하여 먹어본 경험이 전혀 없음을 공공연하게 알리고 있는 셈이자 대중들의 삶과 그의 삶 사이에는 좁히기 힘든 커다란 간극이 존재함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만하다. SNS에는 어설픈 서민 흉내를 낸 트럼프를 향한 성토와 조롱의 글들이 쇄도하고 있다. 


비슷한 사례는 영국에서도 있었다. 지난해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가 모 가든 바비큐파티에서 핫도그를 포크와 칼을 이용해 먹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돼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대중들의 흔한 간식 중 하나인 핫도그는 보통 손으로 쥔 채 먹기 때문이다. 짐작컨대 서민들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을 그에게는 이러한 음식을 단 한 차례도 먹어볼 기회가 없었을 테니 핫도그 대신 포크와 칼을 손에 쥐게 된 건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런 행동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핫도그를 칼과 포크로 먹고 있는 캐머런 ⓒ연합뉴스


트럼프나 캐머런의 사례는 서민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며 문화적 환경적 차이로 인해 벌어진 해프닝 중 하나다. 일반 대중과 조금 더 친숙해지려는 시도가 외려 독으로 작용하게 된 사례다. 이는 단순히 대중들로부터의 지지를 얻기 위한 요량으로 서민 흉내를 내며 서민들의 문화에 익숙한 것처럼 행동하려던 그들을 머쓱하게 하거나 안쓰럽게 만들곤 한다. 대중들에게 인기 있는 정치인이 된다는 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입증하는 사례라 할 만하다.



이러한 사례를 접하다 보니 문득 국내 현역 정치인 한 사람이 떠오른다. 다름아닌 새누리당의 김무성 전 대표다. 그는 최근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누구나 짐작하고 있듯 내년으로 성큼 다가온 대선을 의식한 행보로 읽힌다. 지난 1일 김무성 전 대표는 팽목항을 찾았다. 현장에서 그는 “이 땅에 세월호의 비극이 없어야 합니다. 너무나 안타깝게 희생된 영령들을 위로하며 실종자 9인 모두 인양되기를 바랍니다”라는 글을 방명록에 남기기도 했다.


팽목항 찾은 김무성 전 대표


뿐만 아니다. 5일에는 그의 페이스북을 통해 근황이 올라왔는데,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 부근의 거제 대계마을 마을회관을 찾아 손빨래를 했다는 소식과 함께 여러 장의 사진이 공개됐다. 공개된 사진 속에는 속옷 차림으로 빨래판 위에 빨래를 올려놓은 채 손빨래를 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자연스러운 모습 같지만 실은 다분히, 그리고 고도로 연출된 장면이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빨래판은 어릴적 무궁화표 빨래비누와 함께 우리집 목욕탕 한 구석을 차지하던 생활용품 중 하나였으며, 인류 최고의 발명품인 세탁기가 대중화된 이래 사라진 대표적인 과거의 유물이기도 하다. 이를 부여잡고 있는 김무성 전 대표의 표정은 무념무상인 듯싶지만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래도 나름 훌륭하게 연출된 서민 흉내였노라는 측면에선 그를 인정해 주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적어도 트럼프나 캐머런과 같은 어설픈 황당함 따위는 없으니 말이다.


손빨래 중인 김무성 전 대표


그러나 난 그의 이러한 행보가 왠지 불편하다. 세월호 참사의 지지부진한 수습에 책임이 있는 이들 중 한 사람으로서 세월호에 대한 진실 규명 활동에 딴지를 걸거나, 진실을 밝혀달라는 유가족의 간절한 호소조차 철저히 외면한 채 배후론을 열심히 설파하던 게 불과 엇그제였고, 이제와서 뜬금없이 팽목항을 찾아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하고 있으니, 진정성이라곤 털끝만큼도 찾을 수 없는 그의 행보가 대권을 다분히 의식한 채 세월호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이미지 정치로 보이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민중의소리


김무성 대표의 민생투어와 관련한 최근 근황에 대해 네티즌들이 무수한 비난과 조롱을 쏟아내고 있는 건 그동안 그가 걸어 온 일관된 정치 이력 때문이다. 그는 늘 서민 등 약자보다는 강자의 편에 서서 정치를 해 왔고,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철저히 외면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권을 의식한 이미지 포장을 위해 선대의 정치인들이 그래왔듯 예의 서민 놀음에 열심히 앞장서고 있는 게 아닌가. 


물론 정치인들의 이미지 쇄신 행보에 대해 마냥 뭐라 할 수만은 없다. 다만, 대권 등 권력욕을 향한 수단의 하나로써 평소의 행동과 전혀 이질적인 모습을 대중들에게 자꾸만 비치는 진실성 없는 형식적이고 거짓된 행위로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코스프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탓에 이의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새누리당과 김무성 전 대표가 그동안 벌여온 반서민적 행위의 면면과 관련, 이러한 이미지 조작을 통해 과거의 흔적을 지울 수 있다면 다행이겠으나, 트럼프나 캐머런의 실소를 금할 수 없는 행동에서 보듯 진정성 없는 이미지 세탁 정치는 결국 어떤 식으로든 그 본질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대중들의 비아냥과 조롱은 바로 그에 대한 경고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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