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전기요금 폭탄이 과장이라고요?

새 날 2016. 8. 9.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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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계속되는 폭염 속에서 국민들의 전기요금체계에 대한 개편 요구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태도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특히 9일 세종청사에서 있었던 산업통상자원부 브리핑을 통해 드러난 관계자의 발언은, 가뜩이나 더위 때문에 혈압이 오르는 상황에서 화를 더욱 돋우고 있는 모양새다. 그는 전기요금 폭탄이 무서워서 에어컨조차 못 트는 가정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 "에어컨을 합리적으로 사용할 때도 요금 폭탄이 생긴다는 말은 과장됐다"며 "에어컨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찜통 더위 속에서도 우리 같은 일반 가정에서 에어컨을 가동하는 일이란 사실상 그림의 떡이 아닐 수 없다. 다음달이면 날아오게 될 전기요금 고지서에 대한 부담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소득이 충분한 가정이라면 혹시 모를까, 대다수의 가정은 그럴 형편이 못 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요금 폭탄이라는 형태의 후폭풍이 두려워 선뜻 에어컨 작동에 나설 수가 없는 처지이다. 


ⓒ연합뉴스


정부는 에어컨을 합리적으로 사용할 경우 요금 폭탄이란 표현은 과장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기후 변화를 겪으면서 더욱 독해지고 있는 한반도의 여름철 더위와 생활 및 소비 패턴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작금의 전기요금체계가 비합리적인 것일 뿐, 국민들의 에어컨 사용 패턴은 원래부터 지극히 합리적이었던 것으로 읽힌다. 다만 국민을 향해 대놓고 면박을 주는 정부의 패기가 그저 놀라울 따름이며, 비합리적인 행태로 다가올 뿐이다. 


그러니까 이번 논란의 핵심은 에어컨을 적절하게 사용할 줄 모르는 국민들의 아둔한(?) 생활 패턴을 탓할 게 아니라 비합리적인 전기요금체계와 국민들의 하소연에도 불구하고 이를 끝까지 고수하고 있는 정부의 융통성 없는 뻣뻣한 태도와 관련한 사안임을 다시금 상기시켜야 할 것 같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국제에너지기구인 IEA는 ‘핵심 전력 경향’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전체 전력소비에서 산업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4년 기준 53.3%에 달하고 있으나, 가정 부문의 비중은 12.9%에 불과하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산업용 전력소비 비중이 가정용의 4배 이상에 달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OECD 국가들의 평균적인 전력소비 행태와도 사뭇 다른 모습이다. OECD 국가 전체의 전력소비 경향을 보면 산업용 소비 비중은 32.0%, 가정용 31.3%로 엇비슷했다. 결과적으로 누진제가 적용되지 않는 산업용 전기요금이 오늘날의 이러한 비합리적이면서도 불균등한 구도를 만들어 놓은 게 아닌가 싶다. 


거리의 상점들은 하루종일 냉방을 한 채 문을 활짝 열어 놓기 일쑤다. 어찌나 에어컨을 세게 틀어놓았던지 점포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을 뿐인 데도 벌써부터 냉기가 느껴질 정도다. 회사 사무실은 또 어떤가. 강냉으로 틀어놓은 에어컨 냉기로 인해 냉방병 내지는 감기를 호소하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당장 이번 브리핑 발표에 나선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 또한 이 찜통 더위 속에서 긴팔의 자켓을 걸친 모습이 눈에 띈다. 자신들은 시원하게 냉방이 되는 사무실에서 하루종일 근무하고 있으니, 땀흘리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국민들의 모습이 제대로 눈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연합뉴스


국민들의 하소연은 누진제를 완전히 없애자는 얘기가 아니다. 합리적으로 개편하자는 취지일 뿐이다.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국민의 불편을 줄이고 고통을 완화시켜 주어야 하는 게 정부의 주요 역할과 책임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면 전기요금체계를 바꾸자는 국민의 요구를 묵살해서는 안 된다. 국민안전처는 연신 폭염 주의보 및 경보를 내보내면서 국민들더러 야외 활동을 자제하라 하고 있다. 그만큼 작금의 기온과 기후가 위협적으로 다가온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또 다른 정부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합리적인 에어컨 사용을 언급하며 이와 엇박자를 빚고 있다. 과연 어느 부처의 주장을 따라야 하는 걸까? 국민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삶의 질이 우선일까, 아니면 오롯이 개인의 희생을 통한 기업들의 안녕이 우선인 걸까?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하거나 심지어 목숨까지 위태롭게 만드는 기후 변화의 급박한 상황 속에서 정부가 언급하고 있는 합리적인 에어컨 사용이란 개념이 과연 가당키나 할까? 정부가 제시한 합리적인 기준이란, 벽걸이형 에어컨 한 대로 하루 4시간 내지 6시간 가량의 활용을 의미하는데, 대한민국 모든 가정이 1인 가정이 아닌 이상 이렇듯 천편일률적으로 이를 적용한다는 건 결국 억지 주장이 아닐 수 없는 데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주루룩 흐르는 최악의 기후 여건이거늘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합리'란 마치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작금의 전기요금체계처럼 되레 지극히 비합리적으로 다가올 뿐이다. 푹푹 찌는 찜통 더위만큼이나 융통성 없고 답답하기 짝이없는 우리 정부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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