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찜통더위속 우리집 에어컨은 여전히 애물단지

새 날 2016. 8. 8.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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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덥다. 시원한 곳에 있다가 약간의 이동만으로도 땀 한 바가지를 쏟아내기 일쑤다. 씻으면 조금 나아질 것 같으나, 이마저도 그때뿐이다. 금세 땀에 젖고 만다. 너무 더워서 몸둘 바를 모르겠다. 더위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이루니 늘 비몽사몽이고, 정신을 차리기가 도통 쉽지 않다. 괜시리 죄없는 조물주를 원망해 보기도 한다. 인간을 만들어 놓았으면 사람이 살 만한 환경을 제공해야 할 텐데, 요즘 같아선 도무지 그런 것 같지가 않으니 나도 모르는 사이 화가 난다,


집에 에어컨이 있지만, 장식품으로 전락한 지는 오래됐다. 요즘 말 많은 전기요금 누진제 탓이다. 더구나 대가족인 우리집은 누진제의 영향이 단촐한 가정보다 훨씬 크게 다가온다. 멋모르고 에어컨을 틀었다간 다음달 요금 폭탄을 맞기 일쑤다. 실제 경험했던 일이다. 이후로 우리집 에어컨은 값비싼 장식품으로 전락해 버렸다. 단계별로 격차가 너무 벌어지는 지극히 비합리적인 누진제도 자체도 그렇지만, 대가족이라고 하여 왜 더 많은 요금을 내야 하는 것인지는 도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YTN


지금은 사라졌지만, 학창시절 가정환경조사서를 작성할 때면 늘 항목 한 귀퉁이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던 게 다름아닌 에어컨의 보유 여부였는데, 세월이 흘러 이제 이는 사치품이 아닌 생활 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 격세지감이라 할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기요금이 무서운 나머지 그나마도 장식품으로 전락하기 일쑤다. 


지구는 갈수록 뜨거워지는 추세다. 2060년이면 한반도의 기온이 40도를 웃돌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와 있다. 물론 지구온난화의 영향일 수도 있겠으나 이에 대한 이견은 여전히 분분한 데다가 심지어 음모론까지 떠돌고 있는 마당이라 그보다는 어쩌면 그동안 지구에 빙하기가 수차례 반복돼 왔듯 기온이 올랐다가 내려가는 커다란 순환 중 특정 구간을 관통하고 있는 와중일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적어도 여름철의 기온이 점차 뜨거워지고 있는 것만큼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위도상 온대지역에 속하는 한반도지만, 이제는 아열대 기후에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 근해에서 잡히는 물고기도 저위도에서나 잡힐 법한 것들이 그물을 채우곤 한단다. 이렇듯 여름이면 뜨겁게 달궈지는 한반도에서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선 어느덧 에어컨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돼 버렸다. 



하지만 우리집을 비롯한 대다수의 가정에서는 이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가 없다. 에어컨을 살 돈이 없어서라기보다 전기요금이 무서워서다. 1970년대 1차 석유파동 당시 도입된 현재의 전기요금체계는 세월이 흐르고 기후와 전기 소비 패턴마저 크게 변모하고 있는 와중이건만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에어컨을 가정에서도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대중들의 아우성이 정부의 귀에는 일절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현재 6단계로 구성된 전기요금 체계 중 1단계(100㎾h)까지는 ㎾h당 60.7원으로 책정돼 있으나 500㎾h를 초과하는 6단계에 들어서면 ㎾h당 709.5원으로 급격히 올라 1단계의 11.7배가 된다. 최저구간과 최고구간에서 무려 11.7배의 차이가 생기는 셈이다. 이는 월평균 전력소비가 100kWh 이하에 해당하면 원가의 절반도 안되는 요금을 내게 되지만, 그와 달리 구간이 높아질수록 가격 또한 몇 배씩 뛰어오르는 이상한 구조다. 특히 우리집처럼 대가족일수록 더욱 많은 요금을 내도록 돼 있다. 이렇게 격차가 큰 전기요금 체계를 갖춘 곳은 현재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한다.


ⓒ서울신문


이참에 외국의 사례 하나를 들어보자. 중국 상해의 모 외국인학교에 다니는 학생 하나를 알고 있는데, 그곳의 기온은 우리보다 조금 더 더워 한여름이면 40도를 오르내린다고 한다. 습도라도 낮으면 다행일 텐데 안타깝게도 이 또한 우리보다 높은 편이다. 에어컨 없이는 생활을 할 수 없는 환경이다. 다행인 건 이곳에도 누진제가 있기는 하나 우리처럼 단계에 따른 요금 격차가 그리 크지가 않아 각 가정마다 에어컨을 틀어놓은 채 편하게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반도의 기후도 이젠 아열대의 그것에 못지 않다. 올 여름을 지나면서 반강제적으로 경험해야 했듯 선풍기만으로 이러한 기후에 견디며 버틴다는 건 터무니없는 노릇이자 무지한 행위에 불과하다. 한반도의 기후는 이미 그 수준을 훌쩍 넘어섰다. 에어컨 없이는 실내에서 도무지 생활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에 맞지 않는 이상한 제도 때문에 국민 다수는 이 찜통 더위 속에서도 에어컨을 켜지 못한 채 여전히 선풍기에 의지하며 삶의 질을 급격히 떨어뜨리고 있는 와중이다.


도심속 점포나 상점 그리고 기업들은 누진제가 적용되지 않아 에어컨을 마음껏 틀어놓으며 감기를 걱정해야 할 판국인데, 각 가정에서는 전기요금 폭탄이 두려워 멀쩡히 작동 가능한 에어컨을 정작 켜지도 못한 채 리모컨만 만지작거리다가 옆에 놓인 애꿎은 선풍기의 바람만 약풍에서 강풍으로 올렸다 내렸다만을 쉼없이 반복하곤 한다. 그도 아니면 더운 집을 피해 시원한 곳을 찾아 때 아닌 민족 대이동을 감행해야 할 처지이다. 그러나 정부는 전기요금제도의 개편 불가 입장을 거듭 피력하고 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시대가 변하고 기후 역시 변화한다면, 제도도 그에 걸맞게 바꿔나가야 하는 게 맞다. 국민들의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어주어야 하는 게 정부의 올바른 역할 아닐까? 산업용은 크게 우대하면서도 일반 가정용은 홀대하고 있는 걸 보아 하니 그동안 국민은 뒷전인 채 유독 기업들만 떠받들어 온 이번 정부의 정책기조가 전기요금제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 모양새다. 무조건 안 된다며 발뺌하기보다 국민 눈높이에 맞고 시대 조류에도 걸맞는 정책을 펴야 하지 않을까? 일부 시민들이 한전을 상대로 '전기요금 부당이득 반환청구' 소송을 내고 있는 건 이에 대한 강력한 반발 의사 표현 중 하나다. 전기요금체계, 이젠 현실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정치인들이 툭하면 운운하는 우리의 국격에 맞도록 삶의 질도 좀 높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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