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이화여대 공권력 투입 사태에 대한 단상

새 날 2016. 7. 31.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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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학내에 대규모 공권력을 투입, 농성 중인 학생들을 강제 해산시킨 사건이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28일 학교 측은 본관에서 회의를 개최하고 '미래라이프대학' 신설과 관련한 학칙 개정안을 심의하려던 참이었는데, 본관에서 이에 반대하며 농성 중이던 학생들이 회의장으로 모여들면서 이의 개최가 무산되고 만 것이다. 이 바람에 평의회 위원 6명이 회의장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 작금의 사태로 불거지게 됐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학교 측은 해당 사업이 교육부의 '평생 교육단과대학 지원사업'의 하나로 특성화고 등 출신의 비정규직 여성과 사회적 소수자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고 사업을 확정할 시 지원 받게 되는 30억 원 가량의 금액이 학교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는 판단 때문에 이의 설립을 적극 추진 중이라고 한다. 


ⓒ뉴시스


반면, 학생들은 '미래라이프대학' 설립에 반대의 뜻을 분명히하고 있는 입장이다. 단과대학 설립이 학벌주의 조장과 전공 중첩 현상으로 인한 교육의 질 저하를 가져 올 가능성이 농후하고, 이번에 신설되는 전공이 단순히 산업 수요에 맞춰져 있는 까닭에 대학이 학문의 전당이라는 본질을 벗어나 취업 양성소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는 등의 이유 때문이다.


자세한 상황을 알기 어려운 제3자의 입장에서 현재까지 언론을 통해 알려진 수준의 양측 의견을 살펴보면, 학교와 학생들의 주장 모두 나름의 설득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결국 이를 어떤 방식으로 절충하여 접점을 찾느냐가 이번 사태 해결의 관건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학생들의 농성을 대규모 경찰력 투입을 통해 강제 해산시킴으로써 학교 측은 최악의 해법을 동원한 셈이 됐다. 


당시 학생들은 총장이 자신들과의 대화를 위해 곧 도착한다고 하여 이를 기다리고 있던 순간이었는데, 총장 대신 이들에게 배달된 건 무려 1600명에 달하는 대규모 경찰력이었다. 그러니까 총장과의 대화와 협의를 통해 작금의 문제를 해결하려던 학생들의 순수성을 대학 측에서는 총장이 곧 도착할 것이라는 거짓 정보를 흘림과 동시에 경찰력 투입이라는 꼼수를 동원하여 이를 짓밟은 셈이 된다. 참으로 치졸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경찰 투입 요청 과정도 석연치 않다. 학교에서는 경찰에 직접적으로 대규모 병력을 요청한 적이 없다고 언론에 주장했다가 사실은 경찰에 두 차례에 걸쳐 공문을 보냈고, 경찰 투입 직전에는 총장이 직접 경찰서 정보과장과 통화한 사실까지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혹여 학교 측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교직원들이 감금된 상태에서 신변에 위협을 느껴 구조를 요청할 만큼 긴박한 상황이었다손 쳐도, 이는 엄연히 학내 문제인 탓에 학내에서 해결해야 할 사안이거늘, 평화적으로 농성 중이던 여학생 200명을 해산시키기 위해 무려 1600명이라는 경찰력을 투입시킨 건 전형적인 공권력 남용이자 행정력의 낭비가 아니었나 싶다. 


학교 측의 행동이 미덥지 않은 구석은 또 있다. 농성 중인 학생들과 한 교수의 대화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오면서 화제가 됐다. 이른바 '학교 주인은 학생이 아니다' 라는 제목의 영상이다. 해당 영상에는 한 학생이 교수에게 '학교의 주인은 학생들' 이라고 말하자 해당 교수는 '학생이 주인이라고? 4년 있다가 졸업하는데?' 라고 웃으며 말하고 있다. 이 영상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하루종일 퍼나르기 되며 때아닌 학교 주인 논란까지 일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대학교를 생산과 소비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소비의 주축인 학생은 학교의 주인임이 명백하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학교의 재정과 운영에까지 일일이, 혹은 깊숙이 관여할 자격까지 부여된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다만, 학교 구성원의 한 축으로서 학교의 운영과 발전에 대한 방향 모색 등에 대해 학교 구성원의 또 다른 축인 교직원, 교수 등과 함께 머리를 맞댄 채 함께 숙고하며 고민할 수 있는 자격은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이번 건 또한 마찬가지다. 학교 입장에서 볼 때 단과대 신설이 사회적 기여도 측면에서나 재정 확보 등의 차원에서 절대로 놓칠 수 없는 매우 좋은 기회로 다가온다면, 이를 극구 반대하는 학생들의 처지를 헤아리고 그들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이며 어떡하든 설득시켜 켜켜이 쌓인 갈등을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해결하려는 노력이 뒷받침됐어야 함이 옳다. 


학생은 학교의 주인이 아니라는 뒤틀린 마인드가 다름아닌 보다 합리적인 방식과 절차를 통해 해결해도 충분한 사안을 학내에 대규모 경찰력까지 투입시키는 꼴불견과 무리수를 낳은 게 아닐까 싶어 심히 안타깝다.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학생들 역시 무조건 잘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학생들을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지식인으로 양성하여 사회에 내보낼 책무가 있는 학교 측의 자격 미달 행위로 볼 때 학교의 행동이 학생들의 그것보다 더더욱 잘못됐음이 명백하다. 어쩌면 이번 이화여대 사태는 기성세대의 가장 추한 이면을 아직 사회에 발조차 내딛지 않은 풋풋한 청년세대들에게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낸 결과물이 아닐까 싶어 더없이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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