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언론과 포털의 언어 파괴 행위, 이의 있습니다

새 날 2016. 4. 25.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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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온라인 상에서 유독 쓰임새가 잦은 단어 하나를 엿볼 수 있다. 물론 그동안 젊은 계층의 축약성 언어와 네티즌들의 손을 거쳐 새롭게 탄생한 신조어가 떠돌아다니며 유행한 적이 많았던 터라 그다지 새롭게 받아들일 만한 사안은 아닐지도 모른다. 아울러 비록 언어 파괴 행위이니 뭐니 하며 뒷말이 무성하긴 해도, 어쨌든 이러한 형태의 단어들로부터는 톡톡 튀는 창의성이나 재기발랄함 그리고 개성 따위를 엿볼 수 있었던 게 엄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부터 언급하려는 특정 단어로부터는 무언가 독특하다거나 기발함 같은 것들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고, 오히려 왠지 모를 불편함과 어색함만 더하고 있는 형국이다. '넘나'라는 국적 불명의 단어가 바로 그에 해당한다. 혹시 생소한 분들이 계실지 모르기에 한 언론사의 기사 하나를 인용해볼까 한다. 어제 아침 기사다. '자네, 벌써 퇴근하려고?...넘나 어려운 칼퇴'라는 제하의 기사다.

 

SBS 인터넷 기사 캡쳐

 

'너무나 어려운 정시퇴근', 내겐 이렇게 해석이 된다. 그다지 잘못된 해석은 아니리라 판단된다. '너무나'라는 표준어를 놔두고 굳이 '넘나'라는 출처 불명의 단어를 사용한 건, 아마도 최근 트렌드를 최대한 따르려는 기자 나름의 의욕이 앞선 데다, 이의 적절성을 검토해야 할 책임자조차 특별히 문제 될 소지가 없으리라 판단한 때문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런 방식의 표현, 솔직히 '너무나' 눈에 거슬리는 데다 불편하기까지 하다. '너무'에서 파생된 부사인 해당 단어를 길면 또 얼마나 길다고 이렇듯 축약 표현한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이런 류의 표현이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는 배경에는 너 나 할 것 없이 동참하려는 유행 편승 행위가 기저에 깔려있음을 부인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노릇이다.

 

그래서 이의 유래를 온라인에서 찾아보았다. 여러 의견이 충돌하고 있었으나 그 중 ‘너무나’의 줄임말로 140자 글자 수 제한이 있는 트위터 에서 최대한 많은 말을 담기위해 사용된 것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해 보인다. 혹자는 근래 인기몰이했던 드라마에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유행이 됐다는 말도 있기는 하나, 세 글자를 굳이 두 글자로 줄인 형태를 보아하니 정황상 단문 메시지로 인해 글자수의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는 트위터가 그의 배후로 가장 유력한 것 같다.

 

 

언어란 유기체와 같아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모하기 마련이다. 이는 태어나고 성장하며 언젠간 반드시 사멸하는 생물체처럼 언어 역시 비슷한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국립국어원이 매년 표준어 개정을 통해 사회적 변화의 흐름을 우리말 속에 그때그때 담아내고 있는 것도 그의 일환 중 하나일 테다. 그러한 취지에서 보자면 해당 현상은 매우 자연스러운 산물로 바라볼 수도 있는 사안이다.

 

그러나 언론 매체와 언론에 준하는 포털 사이트의 지극히 의식적인 언어 파괴 행위를 과연 앞서 언급한 언어의 변천 과정 중 하나로 받아들여도 괜찮은 걸까? 여론을 형성해나가는 만큼 공적 기능을 담당하며 사회적 책무를 다해야 할 언론 매체가 우리말 파괴 행위에 앞장서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함이 과연 옳은 일일까? 물론 포털 사이트는 현행법상 언론 매체로 볼 수는 없다. 다만,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과 기능을 고려해볼 때 사실상 언론 매체로 봐야 함이 옳다는 게 중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적인 책임을 다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짙다.

 

모 포털 사이트는 유독 '넘나'라는 표현을 좋아하는 것 같다. 아니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 사랑한다는 표현이 더욱 적확할 것 같다. 블로거들의 포스팅 중 해당 포털 메인에 소개할 만한 것들을 추려 매일 이를 링크하는 코너가 있다. 포스팅의 원래 제목을 그대로 올리기보다 자체 편집하여 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작금의 문제는 바로 이로부터 파생한다. 해당 코너를 담당하는 편집진이 이 '넘나'라는 단어를 '너무나' 좋아하는 나머지 지나치게 남발하는 경향이 엿보인다. 솔직히 눈에 매우 거슬리는 상황이다. 어제 캡쳐한 화면에서는 그나마 해당 단어가 한 개만 눈에 띄었지만, 어떤 날에는 수 개가 동시에 쓰이는 경우도 있다.

 

포털 '줌'의 메인 화면 캡쳐

 

표준어란 한 국가의 규범이 되는 말로 인정된 언어를 일컫는다. 즉, '넘나' 따위의 변종이 존재하는 까닭에, 국민 간의 의사 소통에 불편 내지 문제가 발생하게 되고, 한 국가로서의 통일성을 유지하는 일에 방해가 되기 마련이거늘, 이러한 현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모든 국민이 지키고 따르도록 정한 말이 다름아닌 표준어다. 아울러 이는 규범에 대한 자각심을 일깨우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표준어는 국민이 모두 따르도록 만들어놓은 언어 규범이기에 다른 법을 지키듯이 우리 국민이라면 마땅히 이를 따르고 지켜야 한다. 

 

이러한 측면만으로도 일부 언론과 포털은 표준어를 지키기보다 되레 파괴하는 행위에 앞장섬으로써 그들 스스로 언어 규범 체계라는 법을 위반함과 동시에 국민들로 하여금 법 따위를 어겨도 전혀 문제가 없노라는 사실을 암암리에 퍼트리는 행위를 일삼고 있는 셈이다. 언론과 포털이 지닐 법한 공적 책무를 망각하고 가벼운 유행에 편승하려는 행위는 그동안 어뷰징과 선정성에 천착해오던 방식의 연장선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적어도 언론과 포털 매체라고 한다면, 인기 영합이나 유행만을 쫓기보다 자신들의 행동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좀 더 고민하고 그에 걸맞는 책임 있는 행동을 취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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