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민심은 천심'임을 입증한 4.13 총선

새 날 2016. 4. 14.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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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4.13 총선의 뚜껑이 열렸다. 의외의 결과다.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율로 대변되는 현재의 정치 지형으로 보나, 60대 이상의 연령층이 여타의 유권자수를 크게 압도하는 현상으로 보나, 과반수를 여유있게 넘을 것으로 예측됐던 새누리당이 참패했다. 모든 권력을 장악하여 흡사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묘사되곤 하던 현 상황이거늘, 이런 여건에서 집권여당이 더불어민주당보다 의석수가 적게 나왔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인 결과라 할 만하다. 대다수의 언론은 새누리당의 공천 파동을 그 이유로 들고 있다. 물론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민심이 새누리당을 외면한 결정적인 이유는 다른 곳에서 찾는 게 보다 정확할 듯싶다.

 

한 마디로 박근혜 정권의 폭정과 실정에 대한 심판적 성격이 짙다. 박근혜 정권 3년은 국민들에게 있어 그야말로 고통의 연속이었다. 소통은 없고 오로지 일방적인 통치에 국민들은 극도의 피로감을 호소해왔다. 지속되고 있는 미증유의 경기 불황임에도 대기업과 재벌 위주의 정책이 주를 이뤄 서민들의 시름과 탄식은 나날이 커져만 간다. 국가 부채 및 가계 부채는 한없이 쌓여가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의 느낌처럼 조마조마하기만 하다. 줏대없는 외교는 그나마 남아있던 일말의 국민적 자존심마저 뭉개며 헛발질의 연속이다. 정치면 정치, 경제면 경제, 외교면 외교, 무엇 하나 올바로 돌아가는 게 없다. 한 마디로 나라꼴이 엉망이다.

 

꾹꾹 눌러가며 참아오던 민심이 총선 국면에서 봇물 터지듯 마침내 폭발하고 만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예상 외의 선전을 펼쳤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국민들이 야당이 잘했다고 생각하여 표를 던진 건 절대로 아니다. 집권여당의 실정에 분노하여 표를 던진 것뿐이다. 야당이 승리에 도취하여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이번 선거가 남긴 몇몇의 진기록은 자못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우선 16년만의 여소야대는,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17대 총선은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국면이라는 특수한 상황이었기에, 1968년 소선거구제가 도입된 이래 최초의 사례인 만큼, 이는 현 정권에 대한 민심 이반의 성격이 짙음을 의미한다.

 

지역주의에 기반하던 우리의 고질적인 정치 지형이 이번 선거를 통해 많이 누그러진 현상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새누리당이 호남에서 두 석을 차지하고 더불어민주당은 영남에서 그보다 훨씬 많은 의석을 가져오면서 견고하여 절대로 그 체계가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던 지역 구도를 일정 부분 허물었다는 사실은 그 의미가 제법 크게 다가온다. 물론 새누리당의 경우 야권 분열로 인한 어부지리적 성격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두 정당이 자신의 지역 기반을 넘어 교차 당선한 효과 자체는 절대로 무시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해 흔히들 야권의 승리라고 언급하지만 반드시 그렇게만 볼 수 없는 이유는, 정당 비례 대표의 결과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새누리당을 떠난 민심이 대거 국민의당을 향한 것으로 읽힌다. 즉, 새누리당 지지자들의 경우 그 성향상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일 테고, 그 틈을 국민의당이 비집고 들어오면서 많은 유권자들이 이를 지지한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을 앞서고 있는 매우 특이한 현상이 이러한 예측을 가능케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국민의당이 여권 지지층의 표심을 흔들며 일부 흡수하겠다는 애초의 전략이 일정 부분 성공을 거뒀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제4당으로 전락한 정의당은 국민의당 출현에 유탄을 맞으며, 이번 선거를 통해 세력을 확장하려던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이는 진보 진영에는 쓰디 쓴 결과다.

 

그렇다면 국민의당은 이번 선거의 또 다른 승리자라고 볼 수 있을까? 표면상 국회 교섭단체의 자격을 얻으며 제3당으로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될 것으로 보이는 이들은 대단한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이나 실은 더불어민주당 내 호남 지분을 갖고 있던 세력이 대거 이탈, 호남표를 끌어모아 얻어진 결과인 데다, 호남을 제외하고선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엄연히 한계로 다가온다. 결국 더불어민주당이 지니고 있던 호남당의 이미지를 빼앗아온 게 가장 큰 성과라면 성과다. 그러나 오히려 이로 인해 앞으로의 활동에 제약을 받게 되리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국민의당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는 이유이다.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대표는 이번 결과가 자신의 자질과 능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민심은 더불어민주당이 좋아 표를 던졌다기보다 박근혜 정권의 폭정에 지치고 야권 분열로 자칫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로 승리를 안길 것을 우려하던 이들이 대거 결집하여 표를 몰아준 성격이 짙다. 비례대표는 되레 국민의당에 밀린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다만, 더불어민주당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건, 민심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는 수도권에서 대성공을 거둔 데다, 과거엔 감히 엄두조차 낼 수 없었던 영남권에서 대거 표심을 얻었노라는 대목이다.

 

호남을 국민의당에 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불어민주당이 더욱 희망적으로 다가오는 건 호남색으로부터 벗어남과 동시에 영남권에 교두보를 마련하면서 이참에 비로소 제대로 된 전국 정당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불과 2년도 채 남지 않은 임기, 앞으로 박근혜 정권에 남은 건 권력 누수 현상밖에 없다. 새누리당 역시 미래 권력을 놓고 내분이 격화될 공산이 크다. 이번 선거로 분열된 야권 또한 앞길이 가시밭길이다. 호남 지분을 매개로 복잡한 정치공학적 셈법과 역학 관계가 얽히며 향후 어떠한 그림이 그려지게 될지 불투명하기만 하다.

 

이번 선거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다름아닌 '민심은 천심'이라는 사실이다. 그동안 국개론 등이 횡행해오고 자조 섞인 탄식을 내뱉으며 도저히 현 상황을 바꿀 수 없으리라 쉽게 판단하면서 자포자기적 성향마저 드러내온 경향이 짙었으나 결국 우리 국민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현명한 선택으로 현실적 어려움에 맞선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야당은 결코 승리에 도취해선 안 된다. 민심이 얼마나 무서운지 이번 선거를 통해 깨달았을 테니, 이를 기화로 진정 국민을 위한 정치를 향해 한 걸음 크게 내디뎠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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