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아르바이트생도 남의 집 귀한 자식이지 말입니다

새 날 2016. 4. 12.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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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의 갑질 논란은 마치 아무리 퍼내도 끊임 없이 샘솟는 마법의 샘물 같다. 갑질을 일삼는 부류도 재벌부터 사회 지도층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이 무척이나 광활한 데다 다양하기까지 하다. 영화나 드라마조차 이를 단골 소재로 다룬다는 건 그 만큼 종류 불문하고 사회 곳곳에 갑질이 만연돼있다는 방증이다. 아울러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불거지곤 하는 이러한 논란에 대해 대중들은 그때마다 온갖 비난을 쏟아내며 다소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정작 자신들 또한 일상 속에서 또 다른 갑질을 즐기는 듯한, 일견 모순된 행동 양식을 드러내곤 한다. 갑질을 비난할 자격이 과연 우리에게 있기는 한 걸까?

 

갑질은 또 다른 갑질을 낳는 법이다. 흡사 전염성이 유독 뛰어난 바이러스와도 같다. 이른바 내리갑질이다. 비단 앞서 언급한 계층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일상속 평범한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 갑질 아닌 갑질이 횡행해오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른바 사회 지도층이라 불리는 이들의 갑질이 이러한 내리갑질 현상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점 또한 주지의 사실이다. 앞에서는 다른 이들의 갑질을 욕하면서도 정작 뒤에서는 자신보다 약자의 처지에 놓인 이들에게 몹쓸 갑질을 해대는, 참으로 씁쓸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오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모 카페 아르바이트생의 유니폼 이야기로 연신 화제다. 한 회원이 우연히 카페를 들렀는데, 그곳에서 근무하던 아르바이트생의 유니폼 등짝에 '남의 집 귀한 자식'이라는 글귀가 큼지막하게 새겨져있더란다. 손님 눈에는 을에 불과한 하찮은 아르바이트생으로 비칠지 모르나 이들조차도 실은 남의 집 귀한 자식이니, 무턱대고 하대하지 말아달라는 일종의 읍소 전략으로 읽힌다. 참신하다면 참신한 발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접하며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다름아닌 평소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아르바이트생에게 얼마나 비인간적으로 대우하고 있길래 이렇게까지 할까 하는 점이다. 오죽하면 등짝에 다소 낯뜨거울 법한 글귀를 새겨놓아야만 했을까? 나 또한 그렇지만, 아마도 글귀 퍼포먼스가 무언가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왠지 모를 불편함을 동반하고 있음을 숨길 수 없는 노릇일 테다. 조폭 팔뚝에 '차카게 살자' 라고 새겨놓은, 어딘가 불균형적인 느낌의 문신이 이 글귀와 겹쳐 보인다면 다소 과장된 비유일까?

 

우리가 알게 모르게 행하는 갑질은 무척이나 다양하다. 물론 나 또한 이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전화 상담원 등 이른바 감정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갑질은 가히 폭력이나 희롱 수준에 가까우며, 음식점 및 카페 등에서 근무하는 아르바이트생은 갑질의 흔한 표적이 되곤 한다. 이쯤되면 우리의 일상에 온갖 갑질이 녹아들어있는 형국이다. 여기서의 갑질이란 물론, 인성 부족으로 인해 마구잡이로 생때를 부리는 진상짓과는 다소 구별되어야 하는 개념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상대를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보는 게 아닌, 한 단계, 아니 그보다 훨씬 못한 수준으로 깔아놓은 채 하대하려는 태도로부터 비롯된 행동 양식이기 때문이다. 

 

 

우린 흔히 외양만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또 그에 걸맞는 대접을 하곤 한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며 교과서를 통해 배우지만 막상 현실은 그와는 전혀 딴판인 경우가 허다하다. 상대적으로 자신보다 만만하다고 여겨지거나 경제적 혹은 사회적 지위가 훨씬 하위에 놓여있다고 판단되면 대부분 가차없다. 생각하는 만큼 행동으로 옮기기 일쑤다. 어쩌면 이러한 갑질은 자신을 특권층이라며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행하는 재벌이나 사회 지도층의 그것보다 그 수준이 상대적으로 미미해 보일지는 몰라도, 일상 속에서 자연스레 이뤄지는 까닭에 실제로는 더욱 몹쓸 짓일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에서의 갑질은 어느덧 일상의 여러 단면 중 하나로 받아들여진다. 그 만큼 흔하디 흔하다는 의미이다. 때문에 갑질 공화국이란 표현을 마냥 빈정 상한다며 하소연할 수만도 없는 처지이다. 갑질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배려 및 존중의 부족은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압축 성장기를 거쳐온 우리 사회만이 잉태할 법한 기형적인 현상 중 하나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이러한 갑질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물론 아르바이트생 유니폼의 등짝에 새겨진 글귀에 문제의 소지가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듯하다.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는 자칫 모든 손님을 잠재적인 갑질 내지 진상으로 둔갑시키는 느낌으로 다가올 법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우리 사회에 알게 모르게 만연돼있는 갑질 문화에 대한 일단의 경고 신호로 받아들여보는 건 어떨까? 무한경쟁 속에서 오직 앞만 바라보며 폭주하는 바람에 주변을 미처 챙기지 못해온 데다, 배려심마저 부족하여 상호 존중하는 문화가 여전히 싹트지 못한 우리 사회에, 이러한 생활속 작은 행동을 통해 갑질 문화가 조금이라도 희석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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