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선관위 투표 독려 광고 논란, 왜 심각한가

새 날 2016. 4. 1.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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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까지만 해도 잠잠하던 거리가 갑자기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각 정당의 색깔로 곱게 단장한 유세 차량의 홍보와 선거운동원들의 선전전으로 거리는 연신 들썩거린다. 쩌렁쩌렁한 톤의 선거송이 울려 퍼지며 고막을 과하게 진동시킨다. 가히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나 비로소 총선이 임박했음을 피부로 느끼게 해 준다. 본격 선거 시즌의 개막을 알리고 있는 셈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직접 선거에 뛰어든 후보나 정당만 분주한 것 같지는 않다. 선거 사무를 담당하는 선관위 역시 투표율 제고를 위해 동시다발적인 캠페인에 돌입한 모양새다. 그런데 그 행동이 조금은 과했던 모양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4.13 총선을 앞두고 투표 독려 광고를 내보냈다가 선정성과 성차별 논란을 빚으며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선관위는 선거 관리의 공정성 보장을 위해 선거와 국민투표의 관리 및 정당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헌법기관이다. 아울러 사회 갈등 해소를 위한 선거 지원을 강화하고, 국민 기대에 부응하는 정치 문화 확산 등이 그들 스스로가 내세운 목표이기도 하다. 선관위의 입장에서는 이를 달성하기 위해 투표율을 한껏 끌어올려야 한다는 대전제를 떠안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3월 31일자로 본격 선거운동에 돌입한 이 시점에서 '어떡하든' 투표율을 높여보고자 온갖 묘안을 짜내며 심각하게 고민했을 그들의 입장을 전혀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특히 다른 어떤 계층보다 젊은층의 투표율이 워낙 저조하기에 이들의 눈과 귀를 한데 모아 관심을 집중시키는 방안을 모색했으리라 짐작되는 상황이기도 하다. 요즘 가장 핫한 가수 설현을 선관위의 공식 모델로 앞세운 것만 봐도 그들이 젊은이들의 감성과 문화적 코드에 맞추려 상당히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맡은 바 직무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고심하거나 노력한 흔적에 대해 인정해 주어야 하는 문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어떡하든'이라는 용어 속에 함의돼 있을 것만 같은 무리수에서 그 해답을 찾아 봐야 할 것 같다. 선관위가 투표율 제고라는 전술에 지나치게 매몰된 나머지 어쩌면 투표율보다 더욱 중요한 가치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 맞춰 내놓은 ‘알아들으면 최소 음란마귀’와 ‘설현의 아름다운 고백-화장품’, '엄마의 생신' 등 세 편의 광고 모두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알아들으면 최소 음란마귀' 광고의 경우 유권자들의 관심을 끄는 데는 확실하게 성공을 거두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누가 보더라도 지나치게 선정적인 메시지로 다가오는 까닭에 투표를 독려한다는 본래의 취지 내지 본질이 선정성에 가려져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될 수 없을 것만 같다. 아니 오히려 유권자로 하여금 불편하고 불유쾌한 감정만을 더욱 자극시킨 꼴이 아닐까 싶다. 조직 내에 이를 걸러내는 장치가 없다는 건 선관위로서도 심각한 결함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수 설현이 등장하는 '화장품'과 '엄마의 생신' 편은 투표에 참석하지 않는 유권자를 여성에 빗대어 논란으로 불거진 사례다. 언니는 에센스 하나도 이렇듯 꼼꼼하게 고르면서 정작 투표는 하지 않는다는 식의 메시지와, 바빠서 엄마의 생신에 참석하지 못하는 여동생을 투표에 참석하지 않는 몰지각한 유권자로 빗대 표현한 것이다. 이들 광고의 공통점은 투표를 하지 않는 유권자를 모두 여성이라는 특정 성별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당장 여성 단체들이 사과를 요구하고 나선 상황이다. 선관위 측은 이에 대해 해당 광고는 여성 단체가 주장하는 의도로 생각하고 만든 게 아니라며 반박하고 나섰으나, 엄마의 생신에 참석하지 않으려는 여동생을 오빠가 나무라는 장면은 흡사 여성이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개념 없는 유권자라는 인식을 부지불식 간에 심어줄 개연성이 높다는 여성 단체의 주장이 오히려 선관위의 반박보다 더욱 설득력을 갖춘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투표율을 높여 사회 갈등을 해소하는 토대를 마련하고, 국민이 기대하는 일정 수준의 정치 문화 확산에 부응코자 시도한 광고가 되레 갈등을 조장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걸맞는 정치 문화 확산은커녕 선정성과 성차별로 덧씌워진 채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를 더욱 멀어지게 하거나 혐오감만 잔뜩 부추기는 결과로 작용하지 않을까 싶어 심히 우려스럽다.

 

안타깝게도 젊은층이 투표장으로 나오지 않을 경우, 오히려 뒤에서 이를 반기며 미소지을 만한 정치 세력이 우리 사회에는 엄연히 존재한다. 선관위가 애초 이를 의도하지는 않았겠으나 결과적으로는 의도한 바와 진배없는 까닭에 이는 선관위의 존재 이유인 선거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크게 훼손시키는 결과물로 받아들여진다. 때문에 이번 광고 논란을 단순한 실수라거나 해프닝으로 여기고 그냥 넘어가기엔 그 예후가 자못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선거운동이 본격 시작됐다. 유권자들의 적극적인 한 표 행사는 무엇보다 중요한 명제다. 하지만 이를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관리해야 할 선관위의 신중한 판단과 행동 역시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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