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정부의 아동학대 정책, 왜 탁상공론인가

새 날 2016. 3. 29.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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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잇따라 불거진 아동 학대 사망 사건은 우리 사회를 충격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어른들 저마다는 학대를 당한 뒤 끝내 목숨을 잃은 아이들의 소식을 접하며 마치 자기 자식인 양 안타까움을 호소하고, 다시는 이와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정부도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서며 분주히 움직이는 모양새다. 일련의 사건들이 장기 결석 및 미취학 아동 조사 과정을 통해 밝혀지면서 아동 학대의 흔적을 가정과 교육기관 사이의 연결고리로부터 찾은 정부는 서둘러 관련 매뉴얼을 손질하여 일선 학교에 내려보내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 중이다.

 

이번에 만들어진 '미취학 및 무단결석 학생의 관리 대응 매뉴얼'의 내용은 기존의 초중등교육법에 명시된 그것보다 진일보한 결과물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정당한 사유 없이 7일 이상 무단결석한 학생 발생 시 등교를 독촉하거나 학부모에게 경고하고, 결석이 이어지면 주소지 읍면동 주민센터장에게 통보하게 돼 있던 것을, 취학 연령이 됐는데도 입학하지 않거나 무단결석 3일 이상 아동의 안전이 확인되지 않을 경우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수 있도록 한층 강화하고, 상황에 따른 대응 날짜도 대폭 축소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간 정부는 미취학, 미입학, 무단결석 학생의 보호자가 학교 면담 요청에 응하지 않을 경우 학교가 고발할 수 있도록 하고, 의무교육 과정에 자녀를 보내지 않으면 의무적으로 조사할 수 있도록 하는 관련 법령을 상반기 안에 개정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진다.

 

알다시피 아동 학대 사건은 시급을 다퉈야 할 만큼 촉박한 사안이다. 학대 당하는 아동의 현재 처한 상황에 따라 아주 짧은 시간만으로도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가정 내에서 은밀히 이뤄지는 특징을 보이는 아동 학대 범죄 행위에 대해 교육기관을 매개로 이를 찾거나 예방 가능토록 조치한 것은 비록 사후약방문이라는 비난을 들을지언정 반드시 필요한 대목이다. 때문에 정부가 서둘러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일선 학교에 배포토록 조치한 건 비교적 잘한 일이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은 이번에도 허점 투성이다. 아동 전문가들 역시 이번 정책에 대해 진작부터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선 바 있다. 지금 현재도 일선 학교의 교사들은 잡무가 많아 자신이 교사인지 행정 직원인지 모르겠다는 볼멘소리로 가득한 상황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본업이지만, 평소 각종 행정 업무 등 잡무에 시달리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동 학대 사건이 연일 빚어지며 한층 업그레이드된 매뉴얼이 마련되는 등 학생 관리가 대폭 강화되면서 교육 현장에서의 현실적인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양상이다.

 

 

이러한 고충을 호소하는 교사들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새 학기가 시작된 이래 교사들은 기존의 학사 운영 이외에 이른바 '의무교육학생 관리업무'로 몸살을 앓고 있단다. 무단 결석생 가정 방문이 의무화되면서 수업을 마친 뒤 지자체 담당 공무원과 별도로 시간을 내어 함께 해당 학생의 집을 방문하는 일이 잦고, 더구나 관리 대상 학생이 수시로 발생하는 데다 숫자도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라 기존 아이들 관리에 집중하기조차 어렵게 만든다고 토로한다.

 

물론 이러한 교사들의 노력이 아동 학대 예방에 일정 부분 기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이조차도 사후 관리에 가깝다. 아동 전문가들이 정부가 부랴부랴 내놓은 이번 대책에 대해 혹평을 늘어놓는 이유 중 하나도 다름아닌 해당 정책이 예방이 아닌 사후조치에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 사후조치조차도 새롭게 마련된 매뉴얼에 따라 제대로 운영이 되기 위해선 결국 모든 사안이 교사들의 손을 일일이 거쳐야만 하는 일이거늘, 정부는 그에 따른 현실적인 보완이나 대안 제시 없이 그저 일선 학교에 책임을 떠넘긴 채 생색만 내고 있는 입장이다.

 

ⓒ연합뉴스

 

안타까운 건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정부는 늘 특정 사안이 벌어진 뒤에야 뒷수습에 나서기 일쑤인 데다, 그나마도 땜질식 처방으로 일관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번 정책 역시 탁상공론이란 말이 어울릴 법한 이유는, 일선 학교와 교사들의 어려움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현실을 도외시한 채 그저 성난 국민 여론의 무마를 위한 행정 쇼를 선보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즉, 가뜩이나 아이들의 학습과 생활관리 그리고 온갖 잡무에 시달리는 일만으로도 교사들의 일상은 늘 버겁기 일쑤인데, 여기에 의무교육학생 관리업무마저 고스란히 가중시키고 있는 정부다. 현실 감각이 있기는 한 것인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교사들에 대한 과도한 책무 부여는, 결국 교육 소비자인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그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전가시킬 수밖에 없다. 학대가 의심되는 아동에 대한 교사들의 관심과 신경이 온통 집중되는 사이 나머지 대다수 아이들에 대한 관리가 상대적으로 소홀해질 수밖에 없음은 불 보듯 뻔하다. 결국 일선 학교에 아동 학대와 관련한 관리 전담 교사를 배치하는 등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다수의 일반 학생은 물론 아동 학대의 위험에 노출된 아이들까지, 모두가 피해자로 둔갑할 수밖에 없는 뜨악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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