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복장 두발 규제 없는 등굣길을 선사하자

새 날 2016. 3. 22.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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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급속도로 변모해 가고 있는데 유독 변하지 않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어디일까? 다름아닌 일선 학교 현장이다. 등교할 때면 선도부원들과 선생님들이 교문 앞에 서서 위압적인 눈길로 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교칙을 어긴 학생들과 실랑이를 벌이던 모습은, 수십 년이 흘러도 여전히 변할 줄을 모른다.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등교하는 아이들은 아침부터 이들의 기세에 눌려 표정이 일그러지거나 가뜩이나 무거운 발걸음을 한층 무겁게 만들기 일쑤이다.

 

각 교육청마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는 등 학생들의 인권 개선 노력은 끊임없이 진행돼 왔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과 별개로 일선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이 실제로 접하는 현실과 그것의 온도차는 여전하다. 특히 사립학교의 경우 학교 저마다 설립 이념에 근거한 규율이라는 이유 때문에 학칙 개정에 미온적이거나 개정을 하더라도 이를 따르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간혹 아이들의 입을 통해 듣게 되는 일선 학교의 만행(?)은 기가 막힐 정도다. 영하로 뚝 떨어져 어른들도 외투를 꽁꽁 싸맨 채 외출해야 할 정도로 추운 기온임에도 오로지 교복 위에 사제 외투를 걸쳐선 안 된다는 교칙에 따라 교복만 덜렁 걸친 채 덜덜 떨며 등교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곤 한다.

 

ⓒ인천 서운고

 

짐작컨대 선생님들은 실내온도가 따뜻하게 데워진 승용차를 타고 오거나 두툼한 겨울 외투로 완전무장한 채 출근할 정도로 몹시도 추운 날이거늘, 정작 학교의 주인인 아이들에게는 융통성이라곤 전혀 발휘되지 않고 있는 뜨악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두발에 대한 규제 역시 마찬가지다. 피부색이 저마다 다르듯 머리카락 색깔도 각기 다를 텐데, 갈색을 띠고 있다는 이유로 다음날까지 당장 검은색으로 염색해 오라는 학생주임 선생님의 불호령에 어쩔 수 없이 검게 염색하는 아이들을 간혹 보게 된다. 우리 교육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이처럼 구태로부터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채 여전히 과거를 배회하고 있는 모습이다.

 

물론 학교의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교육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야 할 테고, 학교 저마다의 질서도 있을 테며, 이러한 결과물이 결국 아이들의 학습권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될 수 있노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근래 교권 추락 문제와 교실 붕괴 현상이 심각하기에 학교 본연의 가치를 고려한 측면이라는 이유도 나름 설득력을 갖춘다. 하지만 규제는 최소한의 수준으로 그쳐야 하는 게 합당할 테고, 자율을 최대한 허용해 주는 방향이 오히려 아이들의 자각과 성찰을 돕고 스스로를 가꾸며 올바로 배울 수 있는 기회로 다가오게 하지 않을까 싶다. 학생들의 인권과 개성을 억누른 상황에서 무슨 인성이며 창의적 교육을 논할 수 있겠는가. 

 

 

사실 복장과 소지품, 두발 검사 등 정해진 규율 안에서 학생들을 엄격하게 지도하는 모습은 일본 제국주의가 식민 지배를 위해 우리 민족에게 강제했던 일제의 잔재 중 하나다. 아울러 우리 사회의 저변을 오랜 기간 억눌러 온 군사독재정권이 그들의 장기 집권 유지 수단으로 이를 활용해 온 측면 역시 강하다. 물론 굳이 이러한 과거의 악습 때문이라는 근거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교육만이 지니고 있을 법한 특수성이라는 명분 때문에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서 보장하는 아이들의 기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될 노릇이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다행스러운 건 비록 일부이긴 하나, 이러한 기존 행태에 아주 작은 변화의 조짐이 읽히고 있다는 점이다. 인천에 위치한 모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 등교 모습을 매의 눈초리로 매섭게 감시하던 선도부가 사라지고, 그 대신 최신 유행 가요가 울려퍼지는 상황에서 곰돌이 푸우 인형 탈을 쓴 학생이 율동을 하며 나타나 교문을 들어서는 학생을 껴안는 등 과거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모습이 펼쳐지고 있다. 일반 학생과 선도부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선도부 학생들이 권한을 지나치게 남용한다는 목소리가 비등해지자 인천시교육청은 지난해 12월 전국 최초로 선도부 폐지 권고를 내린 바 있다. 해당 학교가 이의 권고를 따르며 선도부를 전면 폐지한 것이 결국 계기가 된 셈이다.

 

ⓒ한국일보

 

변화는 놀랍다. 자유로운 아이들의 영혼만큼 복장이 이전보다 훨씬 편해졌고, 제재나 규제 없이 교문을 들어서는 학생들의 표정은 한없이 해맑다. “어두운 낯빛으로 등교하던 학생들의 얼굴이 눈에 띌 정도로 밝아졌고, 상당수 교사들이 수업 분위기가 더 좋아졌다고 느낀다. 자연스레 교사들 사이에서 복장이나 머리 등을 과도하게 규제할 필요가 있느냐는 인식이 많아졌다” 학생 생활 담당 선생님의 언급이다.

 

가뜩이나 경쟁 일변도의 환경에서 몸과 마음이 한없이 무겁고 처진 아이들에게 즐거운 등굣길을 선사한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이들 저마다의 꿈과 끼를 살리는 건 사실 아이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개성을 짓밟는 방식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결국 위압적인 분위기 조성이나 따끔한 지적보다 아이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온전하게 보장해 주는 길이 그의 온당한 해법이 아닐까 싶다.

 

근래 학생들의 인권 보장을 위한 노력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중고등학교의 과도한 복장 두발 규제와 강제 자율학습 규정 등 학생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큰 이른바 ‘불량학칙’을 대대적으로 정비하여 인권 친화적이고 민주적인 방향으로 바뀔 수 있도록 지도 감독 강화에 나선다는 소식이다. 이러한 변화들, 비록 작은 시작에 불과하나 웬만해서는 쉽게 변하지 않는 학교 현장의 구습에 일대 변화의 물꼬를 텄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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